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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May 05. 2021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채사장 <시민의 교양>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까, 아니면 잘하는 일을 하고 살아가야 할까?


오래된 질문이고 답도 없는 질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까지 한다면 그게 최선이다. 많이 좋아하진 않더라도 뛰어나게 잘하는 일이 있다면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다. 반대로 좋아하지만 재능이 부족해서 잘할 수 없는 일이라면 지속하기 어렵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이런 얘기를 듣고 자랐다. 그런데 정말일까? 아니. 이런 나름의 주장들이 맞거나 틀리다는 판단에 앞서서 애초에 이 질문은 제대로 된 질문이었던 걸까?


채사장은 그의 저서 <시민의 교양>에서 아니라고 말한다.


직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하게 되는 겁니다. 좋아하는 일이라거나 잘하는 일이라고나, 산업화 사회에 이르러서 그런 건 없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생산방식은 분업화되고 기계화됐다. 생산자와 최종 생산물 사이의 간극은 계속해서 벌어졌다. 오늘날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기술자가 "이 차는 내가 만들었다"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개개인은 최종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 극히 일부에만 관여할 뿐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조립에 들어가는 나사를 만들면서 성취와 보람을 느끼긴 어렵다. 그건 잘해서 하는 일도, 좋아서 하는 일도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저 생계유지를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예전에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근대 산업화 이전 손수 가죽구두를 만들던 기술자를 생각해보자. 장인일 수도 있다. 이 사람은 제품 생산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하고 직접 고객에게 최종 생산물을 전달한다. 어떤 구두를 얼마나 만들어 누구에게 팔지 모든 선택권은 오직 자기에게 있다. 이런 생산 방식은 많은 시간과 노동이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에 성취와 보람을 느끼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 구두는 나의 작품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데다 충분한 금전적 보상까지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런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드물다. 소수 투자가, 사업가, 전문직 종사자들이 그들이다.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임금 노동자들은 거대 생산 기계의 자그마한 부품으로써 기능할 뿐이다. 좋아서 또는 잘해서 부품이길 자처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저 사회 구조가 그들에게 내민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하나를 움켜잡았을 뿐이다.


생산수단에 고용된 노동자는 자신의 삶을 노동하는 데 사용하지만,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는 노동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자신의 삶을 찾게 되는 거죠.


더 중요하고 또 생산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투자가, 사업가, 전문직 종사자, 임금 노동자 중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 자본을 소유한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자본에 고용된 사람이 될 것인가?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고, 하루하루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일에서 행복을 찾는다던가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던가 하는 말들은 모두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말이다. 정작 자본가는 '노동'을 하지 않는다. 투자, 관리 같은 일은 하지만, 그건 자기 부를 위해 하는 일이지 다른 사람(자본가)의 부를 불려주기 위해 '임금 노동'을 하는 게 아니라서 차이가 크다. 우리는 남을 위해 일할지 자기를 위해 일하다 은퇴할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어느 한쪽이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후자가 스스로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기 더 좋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질문을 바꾼다고 바로 인생이 바뀌진 않는다.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진다고 모두가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잘못된 질문은 우리를 이유 없이 방황하게 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가 우리를 대신해 던져주는 많은 물음들을 항상 의심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질문하지 않으면 남이 던져 놓은 질문에 대한 답만 찾다가 생을 마무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남의 질문이란 것들은 이면에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을 공산이 크다. 그런 질문들의 답을 쫒는 건 우리가 아니라 그들에게만 득이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MBA 학위를 곧 마치고 또다시 임금 노동자로 돌아가는 시점에 스스로 질문해본다. 

나는 언제부터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일할 것인가? 지금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커버 이미지: Photo by carlos arand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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