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혁재 Jun 20. 2021

그까짓 몇천만 원

"그나저나 너 그쪽 회사에서 연봉은 얼마나 받기로 했어?"

내 연봉보다 다소 많을 거란 사실은 이미 알고 있지만, 둘의 차이가 얼마나 클지 궁금해서 내가 A에게 물었다.

"기본 연봉은 $XXX 받기로 했어. 아무한테도 말 안 했으니까 비밀이야."

"와, $XXX이나 준다고? 최고다. 역시 큰 회사는 달라. 좋겠다. 학자금 대출은 금방 갚고도 남겠네!"

나와 같은 회사에 입사하는 B도 옆에서 거들었다.

"너희 회사에서 일하는 다른 친구들도 몇 명 아는데, 그 정도로 많이 받지는 않던데. 너희 팀 엄청난데?"

"응. 같은 직급으로 입사하는 딴 사람들보다 내가 좀 많이 받게 된 것 같긴 해. 아마 팀 일이 힘들어서 그렇겠지."

"진짜 그런가 봐. IT 회사 들어간 친구들 중에 네 연봉이 제일 센 거 같은데? 좋겠다. 주식도 우리보다 두배나 받는데 짱이네. 나도 너희 회사로 이직해야겠다. 하하..."


지난여름에 함께 인턴쉽을 했던 친구들을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만났다. B는 한 달 뒤에 나와 함께 풀타임 근무를 시작하게 됐고, A는 다른 모 IT 대기업에 들어가게 됐다. 이 친구도 인턴쉽이 끝나고 우리 회사에서 풀타임 오퍼를 받았지만, 고민 끝에 다른 회사에서 준 오퍼를 수락했다.


원래는 1년 전에 이렇게 모였어야 하는 건데, 인턴쉽 시작을 코앞에 두고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는 바람에 이제야 만난 것. Pier 39에 위치한 그 유명한 Bubba Gump에서 새우를 음미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돈 얘기로 대화가 옮겨갔고, 서로의 연봉을 확인하는 단계까지 오게 된 것이다.


A의 연봉 커밍아웃에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내심 많이 놀랐다. 뱃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고 할까. 갑자기 맛있게 잘 먹고 있던 새우가 소화 안 되는 느낌이었달까. 당연한 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우리 연봉 차이가 커도 너무 컸으니까. 기본급이 3천만 원 넘게 차이 나다니. 차이가 2천만 원이었어도 이 정도로 박탈감이 들진 않았을 텐데. 3이라는 앞 숫자가 덜컥 맘에 걸려버렸다.


친구에겐 당연히 축하할 일이었지만 내겐 씁쓸한 소식일 다름이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비슷하고 업무 역량도 경력도 큰 차이가 없는데 내가 그만큼이나 적게 받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아직 입사하지도 않았는데 근로의욕이 꽤나 떨어져 버린 느낌이다. 이런 사실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감정에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 그냥 내가 지질한 걸까. 기분이 이상해졌다.


많은 인생 선배들이 그러더라. 졸업 직후에 몇 천만 원 많게 혹은 적게 번다는 사실에 전혀 신경 쓰지 말라고. 은퇴까지 이어질 앞으로의 커리어는 생각보다 길어서 단순히 몇 천만 원 더 주는 회사를 선택하는 것보다 성장 가능성이 큰 일을 찾는 데 집중하라고. 물론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 가는 얘기다. 심장과 소화기관이 이해를 거부할 뿐. 머리는 장차 빨리 승진해서 몸값을 올리면 된다고 말하지만, 심장은 귀를 막고 단지 눈 앞의 몇 천만 원에 벌렁거릴 뿐. 그냥 내가 지질한 게 맞는가 보다.


이 출발선상의 간극을 좁히는 데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나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입사가 딱 30일 남았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Alexander Mils on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