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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Sep 07. 2021

우리 회사라 너무 좋아요

I love working at Autodesk.


회사에서 이런저런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직급이나 직책에 상관없이 매일같이 듣는 말이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게 너무 좋다. 우리 제품들이 세상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 고객들의 성공을 도울 수 있어서 너무 보람차다 등등.


물론 미국인들 특유의 화법에 유의해서 들을 필요는 있다. 적어도 내가 겪어본 바로는, 많은 미국인들이 조그맣고 사소한 사실이나 감정을 풍선처럼 부풀려서 최대한 크게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내 생각엔 별것 아닌 일에도 크게 고마워하거나 눈시울을 붉히며 감동하는 등 감정표현에 적극적이다. 때론 이게 너무 심하게 느껴져서 진심인지 가식인지 의심이 갈 때도 많다. 영어로는 bullshitting이라고 하는데, 이런 문화는 미국인들이 링트인LinkedIn에 올리는 손발 오그라드는 포스팅들을 보면 저절로 이해가 되니 참고하면 좋겠다.


아무튼 자기가 일하는 회사나 업계, 또는 팀이 너무 좋아 죽겠다는(?) 이 사람들의 말은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거 꽤 만족스럽고 좋아요" 정도로 번역하면 무리가 없겠다. 정도의 차이일 뿐 어쨌든 결론은 좋다는 말이다.


미국에 오기 전에 내가 한국에서 알던 '애사심'은 신입사원들의 전유물이었다. 취업 준비과정에서 고생을 더 많이 했을수록, 회사 이름 앞에 '삼성'이라는 글자가 들어갈수록, 초봉이 높을수록, 안정적이라는(이게 뭔 소린지는 잘 모르겠지만) 공기업일수록 충성심은 커진다. 산속에 있는 연수원에 입사 동기들과 모여 회사의 역사와 창업주의 위대하신 업적에 대해 배우고, 팀을 나눠 마지막 날에 있을 경연을 준비하다 보면 애사심은 정점을 찍고, 앞으로 회사를 위해 이 한 몸 다 바쳐 일하겠다는 결심이 굳어진다. 이때부터 남은 건 내리막길뿐임을 깨닫기 시작하는 데에는 채 100일이 걸리지 않는 게 보통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곳 미국 실리콘밸리는 뭐가 그렇게 다르고 특별하길래 직급과 연차에 상관없이 애사심을 가지고 또 그걸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걸까? 돈을 많이 줘서일까? 복지제도가 뛰어나서일까? 자사주를 많이 나눠줘서일까? 워라밸이 좋아서일까? 그냥 문화 차이 때문일까?


예일대학이 업무 만족도에 대해 연구한 내용에 따르면 업종이나 직책을 불문하고 높은 업무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고 한다. 창의력(creativity), 자율성(control), 영향력(impact)이 그것이다. 창의적인 생각을 현실화할 수 있는 문화, 자기 업무를 상당 부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환경, 일의 결과물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보람이 업무 만족도를 결정한다는 설명이다.


나처럼 이런 결론에 동의한다면, "우리 회사라 너무 좋아요" 같은 말을 왜 이곳 실리콘밸리에서는 매일 들을 수 있고 한국에서는 그럴 수 없는지 설명할 수 있다. 회사가 싫고 일이 힘든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단순히 몇 백만 원의 월급 인상이나 마사지 복지 따위가 아니다. 창의적으로 자율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게 먼저다. 그런 문화 속에서 애사심이 싹튼다. 여기다 사회에 좋은 영향력까지 미칠 수 있다면 최고다. 그런 회사에서 일할 때 우리는 비로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회사 너무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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