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맥싱, AI 시대의 야근 문화

AI 사용량이 성과 지표가 되는 세상의 역설

by 최혁재

한 OpenAI 엔지니어가 한 주에 2,100억 개의 토큰을 소비했다. 위키피디아 전체를 33번 채울 수 있는 양이다. 회사 내부 리더보드에서 1위였다. 동료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됐다. 정작 그 토큰으로 만든 코드가 얼마나 배포됐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이게 토큰맥싱(tokenmaxxing)이다. AI 토큰 사용량을 극대화해 조직 내에서 "파워 유저" 지위를 획득하는 게임. 측정하기 위해 만든 지표가 어느새 목적이 된 세계다.



토큰 예산이 연봉이 되다


엔비디아(Nvidia) CEO 젠슨 황(Jensen Huang)은 엔지니어에게 연간 최대 25만 달러(약 3억 4천만 원)의 AI 컴퓨팅 예산을 급여처럼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이 아이디어 하나가 기업 문화에 불씨를 당겼다. 메타, 오픈AI, 앤트로픽 같은 기업들이 앞다퉈 토큰 소비 리더보드를 만들었다. 누가 AI를 더 많이 쓰는지가 성과 지표가 됐다.


표면적으로는 납득이 간다. AI 전환기에 누가 실제로 AI를 활용하는지 알고 싶은 건 당연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측정하는 순간 달라진다


경제학에 굿하트의 법칙(Goodhart's Law)이라는 게 있다. "어떤 측정 지표가 목표가 되는 순간, 그 지표는 좋은 측정값이기를 멈춘다." 영국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통제 수단으로 삼자 민간 은행들이 통화 정의 밖에서 돈을 만들기 시작한 데서 나온 개념이다.


토큰맥싱은 이 법칙의 AI 버전이다. 배포되지 않을 코드를 생성하고, 불필요하게 긴 컨텍스트를 끌고 다니고, 열 번 물어봐도 될 걸 백 번 물어보는 게 모두 "AI를 열심히 쓰는" 것으로 집계된다. 반면 시니어 엔지니어가 하는 설계 리뷰, 동료 멘토링, 아키텍처 판단 같은 고가치 작업은 토큰을 거의 쓰지 않는다. 리더보드에는 잡히지 않는다.


비평가들은 이걸 "생산성 연극(productivity theater)"이라고 부른다. 일하는 척하는 걸 일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새로운 방법이다.



문제는 또 있다


컨텍스트를 늘릴수록 모델 성능이 오히려 저하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매우 긴 시퀀스에서 정확도와 회상 능력이 불안정해지는 "컨텍스트 로트(context rot)" 현상이다. 더 많이 쓴다고 더 잘 되는 게 아니다. 어느 지점을 넘으면 오히려 나빠진다.



그럼 뭘 측정해야 하나


토큰맥싱의 대안으로 "시그널맥싱(signal maxxing)"이 제안되고 있다. 핵심만 남기고 노이즈를 제거하고, 작업에 맞는 모델을 선택하고, 코드가 실제로 배포됐는지, 고객 지원 품질이 올랐는지처럼 결과로 측정하는 방식이다.


나는 업무에 AI를 꽤 적극적으로 쓰는 편이다. 그런데 리더보드가 생긴다고 더 많이 쓸 것 같지는 않다. 정말 필요할 때, 명확한 이유로, 짧게 쓰는게 최적이기 때문이다. 그게 점수로 잡히지 않는 조직에서 나는 과연 "AI를 못 쓰는 사람"으로 분류될까. 그게 맞는 걸까.


AI를 얼마나 많이 쓰는지가 성과의 증거가 되는 세상에서, 정작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이 AI로 만든 것 중 실제로 쓸 만한 게 얼마나 됩니까.



참고 자료


- TechRound (2026.3): https://techround.co.uk/artificial-intelligence/meet-tokenmaxxing-the-ai-status-game-taking-over-big-tech/


- NewsNation (2026.3): https://www.newsnationnow.com/business/tech/tokenmaxxing-ai-status-game/


- Hard Fork 에피소드 (2026.3.20): https://opentools.ai/news/hard-fork-podcast-dives-into-ai-washing-llm-writing-struggles-and-tokenmaxxing-frenzy


- i-scoop.eu (2026.3): https://www.i-scoop.eu/tokenmaxxing/


- CareerAhead (2026.3): https://careeraheadonline.com/tech-workers-embrace-tokenmaxxing-a-new-ai-rival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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