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사다리 꼭대기가 아니라 첫 번째 칸을 없앴다

신입 자리의 소멸이 의미하는 것

by 최혁재

올해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들은 역대 가장 나쁜 시기에 취업 시장에 나왔다. 원인은 경기침체가 아니다. 전쟁도 아니다. AI다. 그런데 방식이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것과 다르다.


2023년부터 2024년 사이, 미국 기술 기업의 신입 채용 공고가 67% 감소했다 (CNBC, 2025). 전체 채용에서 신규 졸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7%에 불과하다. 반면 같은 기간 경력직 채용은 오히려 늘었다. AI가 고참 전문가를 위협한다는 기사는 매일 나오는데, 정작 일자리가 막힌 건 신입이다.



왜 하단부터 무너지나



AI가 가장 잘 처리하는 건 코드화된 업무(codified work)다. 반복되고, 규칙이 있고, 문서화할 수 있는 일. 데이터 정리, 회의록 요약, 리포트 초안, 포맷 작업. 이게 신입 사원이 주로 맡던 일이다. 반면 수년의 경험에서 축적된 맥락 판단, 이해관계자를 읽는 감각, 상황이 꼬일 때 방향을 잡는 능력은 아직 AI가 따라오지 못한다. 달라스 연방준비은행 연구(2026년 2월)는 이를 데이터로 보여준다. AI는 경험 있는 직원에게는 생산성 배율이 되고, 신입이 맡던 역할은 그냥 대체해버린다.


이 숫자가 불편한 건, 내가 현장에서 보는 패턴과 정확히 같기 때문이다.



그 자리는 일이 아니라 학교였다



내가 여의도 증권사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하루 대부분을 인터넷 리서치, 엑셀 데이터 정리와 선배 발표 자료 편집에 썼다. 대단한 업무가 아니었다. AI가 지금 더 빨리, 더 깔끔하게 해줄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나는 기관투자자들이 리포트에서 뭘 원하는지, 의사결정이 어떤 타이밍에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옆에서 목격하며 체득했다. AI가 그 일을 대신해줬다면 나는 더 효율적이었겠지만, 그 맥락들을 어디서 배웠을지는 알 수 없다.


신입 자리는 저렴한 노동력이 아니었다. 그건 경험을 축적하는 통로였고, 그 통로를 거치지 않고는 고참이 될 방법이 없었다.



현재 AI 에이전트가 투자은행, 컨설팅, 법률 같은 전문직 업무를 실전에서 한 번에 완수하는 비율은 25% 미만이다 (Mercor 벤치마크, 2026). 고참이 없어진 게 아니다. 고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첫 번째 칸만 빠진 것이다.



사다리는 그대로 있다. 첫 번째 칸만 없다. 지금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그 사다리를 어디서부터 올라야 하는지, 아직 아무도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참고 자료


CNBC: AI is not just ending entry-level jobs (https://www.cnbc.com/2025/09/07/ai-entry-level-jobs-hiring-careers.html)


Dallas Fed: AI is simultaneously aiding and replacing workers (https://www.dallasfed.org/research/economics/2026/0224)


Mercor AI Agent Benchmarks 2026 (https://mercor.com/blog/ai-agent-benchmarks-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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