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증권사 리서치센터 RA의 일과

by 최혁재

커버사진: Photo by Alex Shutin on Unsplash


2015년 7월, 나는 D 증권사 리서치센터에 RA(Research Assistant 또는 Research Associate)로 입사했다. RA는 애널리스트가 되기 위한 과정이다. 대2년~4년 1:1 도제식으로 일을 배우게 된다. 이 때문에 사수 애널리스트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RA들은 편차가 큰 업무 경험을 하게 된다. 다행히 내 사수는 뛰어난 실력으로 금융시장에서 이름이 유명했을 뿐만 아니라, 내 업무 스타일과 잘 맞는 분이었다. 완전한 자유방임 스타일이었는데, 둘이 같이 처음 식사를 한 게 입사 세 달 이후일 정도였다. 나는 이렇게 간섭 없는 게 너무 좋았다.


내가 증권사에 있던 2015~2017년은 주 52시간 업무 개념이 퍼져나가고 있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나는 흔히 주 80시간 넘게 근무했고, 토요일 일요일 출근도 기본이었다. 애널리스트라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내 사수는 심한 워커홀릭이어서 1년에 주말과 공휴일을 포함하더라도 10일을 쉴까 말까 한 분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일했다. 입사 후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했다. 그땐 재밌어서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긴 했지만, 다시 하라면 그렇게 까진 안 하고 싶다. 재밌어서 하는 일도 지나치면 부작용을 낳더라. 금방 질린다던지...


출근 시간은 기본 6시 반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지하철에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름 장점이 있다며 만족하고 다녔었다. 게다가 주 2회는 아침 회의 준비 때문에 6시에 출근했다. 비몽사몽 간에 아침 회의 준비를 마치고 나면 7시 30분에 회의에 들어간다. 보통 30분 정도 진행되고 8시엔 한 숨을 돌리면서 동료 RA와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 아침 샌드위치나 밥을 제공해주는 증권사도 일부 있는데, 내 회사는 아니었다. 그래서 회의 준비 때문에 고용계약에도 없는 6시 출근을 하면서도 내 돈으로 아침을 사 먹었다. 억울하다.


제대로 된 업무는 아침 먹고 커피 마시고 들어온 8시 반 전후로 시작했다. 9시에 금융시장이 열리기 때문에 관련해서 그날 이슈를 좀 살펴보고, 새벽에 나온 해외 뉴스들을 토대로 오늘 금융시장은 어떻게 펼쳐질지 가늠해보는 시간이다. 그리고 오전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금융정보 단말기를 통해 그날 시장 움직임을 관찰하고 이슈를 체크하면서 보낸다. 그 사이에 사수가 시키는 복사, 제본, 자료 정리 등을 생기는 대로 처리한다. 때론 언론사 기자들이 전화해서 물어보는 질문들에 답을 해주고, 영업지점에서 온 문의를 처리하기도 한다.


오후 업무는 내 맘이다. 애널리스트는 buy-side, 즉 보험사나 자산운용사 같이 자금을 운용하는(금융 상품을 사고파는) 주체들을 만나 금융시장분석 내용을 전달/설득하는 일이 주업무이기 때문에 외근이 절반 이상이다. 물론 RA는 아직 그럴 능력도, 고객도 없기 때문에 회사에 박혀있다. 내 사수도 오후 종일 외근을 다녔기 때문에, 나는 매일 오후가 자유로웠다. 사수와 RA를 한 팀으로 개인플레이하는 구조가 조직도 상의 팀 개념에 앞서기 때문에 사수 외에 다른 상급자들이 내게 일을 시키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오후에 절반 정도는 빨리 애널리스트가 되기 위해 스스로 필요한 금융 공부와, 사수가 던지고 간 숙제를 하는 데 썼다. 남는 시간에는 커피를 마시거나, 휴게실에 가서 쪽잠을 자거나 하는 땡땡이를 쳤다. 나도 처음 몇 달은 대상 없는 눈치를 혼자 봤었지만, 적응한 후에는 여기저기 잘 날아다녔다. 2년 차부터는 허리가 아파와서 운동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차피 퇴근시간이 보통 밤 10시였기 때문에 헬스장도 웬만하면 이 오후 남는 시간을 빼서 다니곤 했다.


이처럼 높은 업무 자율성이 애널리스트의 유일한(?)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전에는 높은 연봉도 장점이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과거의 영광일 뿐) 은행, 병원, 심지어 나처럼 운동을 간다고 휴가를 내거나 눈치를 볼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은행은 오전에 사람 없는 시간에 다녀오면 그만이다. 팀장님한테 말하고 간 적도 없다. 할 일 잘하고 조용히 다니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하루 15시간씩 일하는데 그런 걸 신경 쓴다면 그게 넌센스긴 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