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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아웃소싱할 것인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읽기 (8/9)

핵심 역량만 남기고 저부가가치 영역은 모두 아웃소싱으로 돌려라라는 얘기를 흔히 합니다. 문제는 핵심 역량이 상황에 따라 변모한다는 점입니다.


1980년대 IBM은 운영체제(OS)와 프로세서 칩을 외주로 돌리기로 결정했을 때, 엄청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마이크로소프트(OS)와 인텔(프로세서 칩)이 해당 산업에서 고성장을 구가하며 이익의 대부분을 빼앗아갔고, IBM은 쇠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특정 산업의 초기 단계,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이 아직 충분히 좋지 않을 때는 통합이 필수적입니다. 이 때는 아웃소싱을 최소화하고 인재를 육성하고 프로세스를 유기적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제품 성능이 일반 소비자의 필요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개선됩니다. 이때는 더욱 유연한 제품을 더욱 빠르게 선보이고, 맞춤화를 통해 틈새시장에 속한 고객들의 필요를 충족해야 합니다. 데스크톱 산업에서 초반에 IBM이 힘을 발휘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Dell이 빛을 발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입니다.


통합으로 접근할 것인지, 아웃소싱을 할 것인지는 경쟁력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입니다. 예를 들어 콘텐츠 업계에서 번역은 흔히 아웃소싱의 영역으로 간주됩니다. 번역 업체가 산재해 있고, 상대적 저부가가치 영역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는 아이유노 또는 다양한 업체를 써서 번역하고 있고, 한국에 들어와 있는 대부분 OTT 업체는 아웃소싱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즈니 플러스가 2021년 한국에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 형편없는 번역은 전체적인 서비스 품질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고, 마블의 '어벤저스: 인피니티워'의 오역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실수일 정도로 번역은 콘텐츠의 품질에 절대적 영향을 끼칩니다. 웹툰에서도 번역은 얼핏 보면 완전히 별개의 업무로 이해되기 쉬우나 작가의 의도, 캐릭터 간의 관계, 효과음 등의 번역이 원작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만 하는 고난도 작업입니다. 따라서 콘텐츠 업계에서 번역은 기존 업무 프로세스와 연계도가 높아 통합을 하거나 또는 통합에 준하는 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합니다.


한편, 아웃소싱은 해당 영역의 성능이 고객의 니즈를 넘어서는 시점에 고려 가능합니다. 더 이상 성능/품질/기능이 차별화 요소가 되지 못하고 원가만이 핵심 고려 사항으로 남게 되면, 최대한 모듈화 하고 이를 전문으로 하는 아웃소싱 업체를 발굴해 이양하는 것이 원가 절감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때도 지분관계가 없는 외부 회사에 맡길 것인지, 전문성 있는 별도 회사를 두되 지분관계를 통해 여전히 내재화를 할지는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 완성차 업체들이 제조와 조립 기능만 두고 핵심 부품들을 모두 모듈화 하여 아웃소싱을 하더라도 1차 벤더는 자회사 관계로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기업이 존속 기술의 프리미엄화에 집중하는 것은 현명한 행보입니다. 시장에 표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전문가도 많지 않은 경우 자원을 투입해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며 경쟁사가 쉽게 따라오기도 어렵게 만듭니다. 다만, 그렇지 않은 사업 또는 영역을 완전히 매각하거나 아웃소싱으로 처리하는 것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시장 상황에 따라 중요치 않았던 영역이 갑자기 중요해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필요에 따라 연결하거나 분리할 수 있는 유연성이 중요합니다.


대기업이 취할 수 있는 최악의 의사결정은 중요치 않다고 판단하여 아웃소싱한 영역에서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 기존 사업을 잠식해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특정 사업 모델을 통해 많은 수익을 내고 있더라도 매력적인 수익원이 언제 어떻게 변화할지 지속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유연하게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Clayton M. Christensen, Michael E. Raynor, and Matthew Verlinden, "Skate to Where the Money Will Be", Harvard Business Review (November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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