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이 아니라 프랑스·영국·이스라엘과의 경쟁입니다
2025년 스탠포드 AI 인덱스에 따르면 한국은 AI 글로벌 역량 중견국입니다. 한국보가 앞서면서 경쟁하는 국가는 미국, 중국 외에 프랑스, 영국, 캐나다, 이스라엘 등입니다.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며 G3의 자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1,090억 유로를 AI 인프라에 투입하며 유럽 패권을 노리고 있습니다. 영국은 AI Safety Summit을 주최하고 Inspect를 오픈소스로 공개했습니다. 캐나다는 생태계와 윤리 인프라에 24억 캐나다 달러를 배정했고, 이스라엘은 전체 노동 인구의 2%가 AI 직군에 종사합니다. 이들은 기술, 정책, 인재 각 축에서 확실한 차별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한국은 디지털 인프라, 시민 수용성, 정책 거버넌스에서 상위권입니다. AI 활용에 대한 국민 인식은 아시아 최고 수준이고, 공공 데이터 개방 정책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습니다. 실험할 수 있는 조건은 이미 갖춰져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 소비에 머무는 한 주도권은 다른 국가에 돌아갈 것입니다.
한국이 AI G3에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다섯 가지입니다.
(1) 세계 수준의 AI 모델을 최소 3개 이상 보유할 것
(2) 민간 중심의 투자 규모를 5배 이상 확대할 것
(3) 책임 있는 AI 정책을 국제 표준과 연결해 주도할 것
(4) 인재의 양과 질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
(5) 정부는 조정자가 아니라 설계자이자 실행자가 될 것
(1) 기술력은 일정 수준까지 축적됐지만, 주요 AI 모델 수에서는 여전히 후발 주자입니다. 미국은 40개, 중국 15개, 프랑스 3개, 이스라엘 1개를 배출했고, 한국은 2024년 ‘엑사원 딥’ 1개가 처음 포함됐습니다. 엑사원 딥 32B는 320억 파라미터를 탑재하여 경쟁 모델 대비 파리미터 크기에서는 열위에 있습니다. 하지만, LLM 모델의 경쟁력은 크기 자체보다 생태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한국은 ‘작지만 강한 모델’ 전략에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엑사원 딥처럼 한국어·수학·과학 특화 모델은 틈새를 정밀하게 공략합니다. 프랑스는 다국어, 이스라엘은 보안 특화 모델로 차별화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행정, 교육, 헬스케어 등에서 로컬 수요가 강한 영역을 공략할 수 있습니다. 크기보다 정밀도, 범용성보다 실용성이 경쟁력입니다.
논문과 특허에서는 분명한 강점이 있습니다. 인구 10만 명당 AI 특허 수에서 한국은 세계 1위를 기록했고, AI 논문 수는 세계 4위권입니다. ‘연구는 하는 나라’로서의 위상은 분명합니다. 이제 이 성과를 모델과 생태계로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 기초 체력은 충분합니다.
(2) 투자 격차는 여전히 큽니다. 미국은 AI 민간 투자만 1,091억 달러에 달하고, 프랑스는 170조 원 규모의 투자를 선언했습니다. 한국은 1조 8천억 원 수준으로 프랑스의 1/90에도 못 미칩니다. 캐나다는 스타트업을 위한 안전성 검증·생산성 향상 프로그램을 병행합니다. 생태계는 투자로 자랍니다.
(3) 책임 있는 AI 분야는 프랑스, 영국, 캐나다가 선도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Inspect 툴을, 유럽은 AI 법안을, 캐나다는 Safety Institute를 중심으로 신뢰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AI 서울 서밋을 통해 글로벌 대화에 참여했지만, 아직 규범을 설계하는 주도권은 부족합니다. 신뢰를 설계하는 나라만이 플랫폼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4) 인재 격차는 기술 격차보다 깊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체 인력의 2.0%, 캐나다는 1.44%, 한국은 1.13%만이 AI 분야에 종사합니다. 미국은 산업-학계 회로를 완성했고, 영국은 조기 AI 교육을 제도화했습니다. 한국도 디지털 인재 100만 양성을 선언했지만, 산업과 연결된 설계는 부족합니다. 교육은 콘텐츠보다 구조가 먼저 설계되어야 합니다.
(5) 정부는 이제 지원자나 규제자가 아니라, 설계자로 나서야 합니다. 프랑스는 인프라에, 캐나다는 윤리 시스템에, 인도는 GPU와 데이터센터에 국가 역량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보조금과 공공조달로 시장을 만듭니다. 한국은 AI 서울 서밋으로 무대를 만들었지만, 생태계를 연결하는 브릿지는 여전히 약합니다. 정부는 선을 그어주는 존재에서, 생태계를 그리는 존재로 전환해야 합니다.
AI 생태계는 기술 축적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기술은 엔지니어가 만들지만, 생태계는 사회 전체가 설계합니다. 데이터 주권은 시민의 신뢰 위에서 작동하고, 플랫폼은 공공성과 호환되어야 지속가능합니다. AI 기준은 국제 공감대 속에서 정립돼야 하며, 교육·노동·복지까지 포괄해야 진짜 설계가 됩니다. AI는 기술이 아니라,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작동 원리입니다.
AI G3 진입은 기술 순위가 아니라 전략적 선택의 문제입니다. 기술을 수입해 쓰는 나라가 아니라, 기술 구조를 설계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스탠포드는 한국을 7위로 평가했지만, 우리는 그 너머를 설계할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남은 건 선택이 아니라 실행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한국이 설계자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