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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I 로스팅

AI가 만든 생산성 증가의 역설

생산성은 올라갔지만, 노동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입니다.

by 경영로스팅 강정구

요즘은 AI 덕분에 글을 훨씬 자주 씁니다. Perplexity로 정보의 깊이를 넓히고, ChatGPT나 Claude로 초안과 구조를 빠르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글 하나를 이틀 붙잡던 시절에 비하면, 이제는 한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조직 안에서도 생산성은 분명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빠름이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는 않습니다. 기술은 사람을 돕는 동시에, 사람 사이에 조용한 경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분명 생산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속도는 빨라졌고, 반복 업무도 줄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효율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았습니다. 일은 줄지 않았고, 여유는 사라졌으며, 기회는 늘었지만 격차는 더 벌어졌습니다. AI는 (1) 생산성을 높이되, (2) 인간의 시간과 책임을 다시 쓰고, (3) 익숙한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의 간극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1) 생산성 지표만 보면 AI는 성공한 기술입니다. PwC에 따르면, AI를 도입한 산업의 생산성 증가율은 비도입 산업보다 4.8배 높습니다. MIT 실험에서는 산출량이 34% 증가한 사례도 확인됩니다. 하지만 Stanford AI Index 2025에 따르면, AI 도입 이후 77%의 근로자가 업무 부담이 늘었다고 답했습니다.

기술은 업무 시간을 줄였습니다. 하지만 줄어든 시간은 곧 더 많은 기대와 더 빠른 결과로 되돌아옵니다. 보고서는 더 빨리, 이메일은 더 정확하게, 회의 정리는 자동으로 이루어지길 기대받습니다. 기술이 가능하게 만든 속도는, 곧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가능성이 곧 의무가 되는 시대입니다.

골드만삭스는 AI에 투자한 기업들이 평균 18개월 만에 11%의 수익률 향상을 경험했다고 분석합니다. 이는 기술의 효과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그러나 같은 보고서에서 기업의 절반가량이 AI와 기존 프로세스의 통합에 실패했다고 답했습니다. 기술의 잠재력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는 조직의 방식과 문화를 함께 재설계해야 합니다.

(2) 하지만, MIT의 실험은 역설적인 결과를 보여줍니다. AI 도구 사용자의 의사결정 시간이 22% 더 길어진 것입니다. 생성형 AI는 답을 보여주지만, 그 과정은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은 불안해집니다. 사용자는 결국 검토하고, 비교하며, 책임을 스스로 감당하게 됩니다. 기술은 속도를 주었지만, 판단의 무게까지 덜어주지는 않았습니다.

Stanford AI Index는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검토하고 수정하는 데 전체 업무 시간의 평균 18%가 쓰이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이는 새로운 유형의 노동입니다. 내가 만들지 않았지만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결과물, 이는 정서적 부담과 윤리적 판단을 동반합니다. 기술은 반복을 줄였지만, 책임과 감정의 소모는 늘렸습니다.

AI는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동시에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남겼습니다. 도구에 익숙한 사람은 기회를 얻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위축됩니다. 학습 속도와 적응력이 곧 영향력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기술은 효율만 높이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존재감을 더 세밀하게 분리하기 시작했습니다.

(3) 노동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습니다. PwC는 AI 관련 직무가 평균보다 25% 높은 임금 프리미엄을 가진다고 분석합니다. AI에 익숙한 사람은 더 많은 권한과 보상을 얻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점차 주변화됩니다. 기술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실제로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은 불평등합니다. 평등한 도구 위에 불균등한 기회가 놓여 있습니다.

같은 산업 안에서도 기술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콘텐츠, 디자인, 번역처럼 자동화가 빠르게 확산된 영역에서는 AI 도입 여부가 생존을 가르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기술은 시장 전체를 평평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부의 격차를 더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Stanford AI Index는 25~34세 근로자의 AI 기술 활용률이 55세 이상보다 3.1배 높다고 보고합니다. 젊은 세대는 학습과 실험에 익숙하며, 도구에 대한 장벽도 낮습니다. 반면 중장년층은 어디서부터 배워야 할지조차 막막하다고 말합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기술 숙련도를 넘어, 조직 내 권한과 신뢰의 구조를 바꾸고 있습니다.

기업의 58%는 AI 도구를 도입하면서도 직원 교육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이로 인해 연간 1,200억 달러 규모의 생산성 손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도구는 준비됐지만, 사람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기술의 속도가 교육과 문화의 속도를 압도할 때, 조직은 그 속도에 스스로 짓눌릴 수 있습니다.

AI는 일을 빠르게 만들었고, 가능성을 넓혔습니다. 그러나 그 속도는 누구에게나 같지 않았고, 그 가능성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았습니다. 생산성은 올라갔지만, 여유는 줄었고, 기회는 늘었지만 평등은 후퇴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기술이 만든 이 빠름 속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더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그리고 그 방향은 결국 사람이 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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