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초 숏폼이 콘텐츠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에서 시작된 짧은 영상의 물결은 사용자의 감각과 집중 방식을 바꾸어놓았다. 알고리즘은 감정을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사람들은 한 번의 스와이프로 더 자극적인 장면을 찾아 이동한다. 2024년, 한국인의 유튜브 월평균 사용 시간은 40시간에 이르렀고, 틱톡은 17시간 16분으로 넷플릭스보다 2.7배 길었다.
우리는 이미 이야기를 ‘읽는’ 시대에서 ‘훑어보는’ 시대로 옮겨왔다. 그러나 그 격변 속에서도 K콘텐츠는 세계 무대에서 빛났다. <기생충>은 아카데미를 석권했고, <오징어 게임>은 공개 28일 만에 1억 1,100만 계정이 시청하며 글로벌 대중문화의 흐름을 다시 썼다. K콘텐츠는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었고, 그 성공은 하나의 시대정신처럼 공유되었다.
하지만 콘텐츠의 성공은 콘텐츠만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찾아내고, 소비하게 만들고, 회자되도록 만든 것은 플랫폼이었다. 우리는 그 영향력에 감탄했지만, 그것이 어떤 구조 위에서 작동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무대는 보지 않은 채, 무대 위의 배우만 바라본 셈이다.
플랫폼은 단순한 유통 경로가 아니다. 그것은 콘텐츠의 생명력을 설계하고, 시장의 질서를 조율하며, 산업의 방향을 결정짓는 구조다. 어떤 콘텐츠가 성공했느냐보다, 그 성공이 어떤 플랫폼 위에서 가능했느냐가 더 중요한 질문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것은 바로 그 구조의 균열이다.
2022년 고금리 기조가 시작된 이후, 콘텐츠 산업은 외형을 유지했지만 내면에서는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넷플릭스는 자본과 기술을 무기로 한국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고, 토종 OTT는 수백억 원대의 적자를 감내하며 버티는 중이다. 콘텐츠는 쏟아졌지만, 그것을 안정적으로 떠받칠 생태계는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도 비슷한 경로를 걷고 있다. 멜론은 2022년 49%였던 점유율이 2024년 35%로 하락했고, 유튜브 뮤직은 42%로 국내 1위를 차지했다. 스포티파이와 유튜브는 단순한 기술 기업이 아니라, 생태계를 다시 설계하는 플레이어가 되었다. 유튜브 프리미엄과 뮤직의 결합 전략은 번들링을 넘어 음악 시장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웹툰 플랫폼의 현실도 녹록지 않다. 네이버웹툰은 글로벌 확장을 이어가고 있지만, 연간 1,0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카카오웹툰은 매출 감소 속에서 점유율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웹툰은 세계의 표준 포맷이 되었지만, 그 기반이 되는 플랫폼의 수익 구조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콘텐츠는 확장되었지만, 플랫폼은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왜 K플랫폼은 취약해졌을까. 국내 사업자라는 이유로 각종 규제의 정면에 서 있었고, 수익 배분 구조나 계약 관행은 곧장 ‘갑질’이라는 프레임으로 확산되었다. 반면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은 본사가 해외에 있다는 이유로 국내 규제를 비껴가며, 훨씬 더 구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도 상대적으로 조명을 피했다.
모두가 K콘텐츠 플랫폼을 비판했지만 정작 플랫폼이 무너지고 있는 지금, 그 콘텐츠의 경쟁력마저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이 구조를 독점해가는 사이, K플랫폼은 점점 힘을 잃었고, 결국 콘텐츠의 지속 가능성까지 위협받고 있다. 이제는 이야기의 힘뿐 아니라, 그 이야기가 흘러가는 구조와, 그 구조를 설계하는 힘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이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어떤 콘텐츠가 떴느냐가 아니라, 어떤 구조 안에서 떴느냐를 물어야 한다. 플랫폼은 콘텐츠를 전달하는 경로가 아니라, 시장의 권력과 기회의 지도를 설계하는 시스템이다. K콘텐츠의 미래는 K플랫폼 위에서 결정된다.
감탄보다 숫자가 더 많은 진실을 말해준다. 매출, MAU, ARPU, 전환율, 수익성, 수익배분율 같은 지표는 산업의 본질을 숨기지 않는다. 구조는 데이터로 기록되고, 시장은 숫자로 평가된다. 이 브런치북은 그 숫자들을 통해 K콘텐츠 플랫폼의 빛과 그림자를 해부하고자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은 해방 후, 우리가 닮고 싶은 나라는 군사강국도 경제강국도 아닌 ‘문화강국’이라 강조했다. 세계가 우리를 두려워하게 하기보다, 존경하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 문화의 힘은 단지 좋은 이야기를 많이 만드는 데서 오지 않는다. 이야기의 주체성과 그것을 전할 수 있는 구조가 함께 있어야 가능하다. K플랫폼이 무너지고 글로벌 플랫폼이 시장을 주도한다면, 결국 우리는 이야기의 권리를 가진 채 이야기의 권력을 잃을 수도 있다.
이 브런치북은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K콘텐츠는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K플랫폼은 무엇을 가능하게 해왔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구조 속에서 이야기의 주체로 남을 수 있는가. 이 글은 그 현실을 숫자로 직시하고, 그 땅에 발을 딛고 다음을 설계하려는 시도다. 질문은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