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을 더 이상 찾지 않는 이유
잠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는 한때 내게 특별한 장소였다. 퇴근 후 무심코 발걸음을 옮겨도 늘 열려 있었고, 어떤 영화든 '극장'이란 이유만으로 충분히 볼 만했다. 주말에는 항상 관객으로 북적였고, 예매 없이 가면 뒷자리 하나 구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미션 임파서블'이나 '오펜하이머' 같은 대형 액션 영화가 아니면, 나도 굳이 극장을 찾지 않는다. 대부분의 영화는 기다렸다가 OTT로 본다.
내가 변한 걸까, 극장이 변한 걸까. 아마 둘 다 변했을 것이다. 팬데믹은 우리의 일상을 바꾸었고, 영화관이라는 공간의 의미도 함께 바뀌었다. 예전처럼 개봉일에 맞춰 극장을 찾는 일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제 그것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시대적 전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변화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2019년, 한국인의 연평균 영화 관람 횟수는 4.37회였다. 한 해 2억 2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그러나 2024년에는 그 수치가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티켓 가격은 꾸준히 올라 이제 주말 기준 1만 5천 원에 이른다. 같은 금액이면 한 달 동안 OTT에서 수십 편의 콘텐츠를 볼 수 있다. 관객이 극장을 떠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렇다고 극장의 장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거대한 화면과 울림 있는 음향, 어둡고 조용한 공간에서의 집중력은 집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액션 블록버스터만큼은 여전히 극장에서 본다. 반면, 잔잔한 드라마나 독립 영화는 OTT로 본다. 시간과 비용, 선택의 여유가 그런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개인의 선택은 산업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팬데믹 이후 영화 제작은 위축되었고, 배급 구조는 더욱 경직되었다. 상영관 수와 마케팅 비용이 성패를 좌우하는 시장에서는, 중소 제작사의 작품이 쉽게 밀려난다. 창의성보다 유통력이 앞서는 구조가 굳어졌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극장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 극장 산업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3강 체제로 고착돼 있다. 이들 기업은 상영 시간표부터 티켓 가격까지 사실상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다. 선택지는 많아졌지만, 실제로 선택 가능한 영화는 줄어들었다.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은 자연스럽게 OTT를 선택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25년 5월,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는 합병을 발표했다. 외형상으로는 사업 확장이지만, 실제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한 구조조정이다. 중복된 상권을 정리하고, 운영 효율을 높이려는 전략이 추진되고 있다. 제작과 배급을 동시에 갖춘 통합 모델을 만들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그러나 이 합병이 영화 생태계의 다양성을 더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처럼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극장들은 생존을 위해 '차별화된 관람 경험'에 집중하고 있다. IMAX, 4DX, 돌비시네마 같은 특별관은 집에서는 구현하기 어렵다. CGV의 ScreenX는 3면 스크린으로 270도 화면을 구현하고,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의 슈퍼플렉스관은 34m 와이드 스크린과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로 유명하다. 4DX 상영은 의자 진동, 바람, 향기 효과 등을 결합해 관객의 오감을 자극한다. 최근에는 메타버스와 연동되는 몰입형 상영관, VR·AR 콘텐츠도 도입되고 있으며, 게임과 영화를 결합한 새로운 콘텐츠도 시도되고 있다.
관람 경험의 확장은 콘텐츠의 성격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콘서트 실황, 스포츠 중계, 드라마 단체 관람 이벤트 같은 새로운 콘텐츠도 등장하고 있다. CGV는 BTS 슈가 콘서트 실황을 전석 매진시키며 14억 원 매출을 기록했고, 롯데시네마는 NBA 결승전 상영에서 일반 영화보다 3배 이상 높은 식음료 매출을 올렸다. BL 웹툰 원작 콘텐츠, 드라마 선상영회 등 팬덤 기반 콘텐츠는 20대 여성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이와 같은 흐름은 공간의 전환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 지점은 극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CGV 신촌아트레온점은 상영관 일부를 클라이밍짐과 방탈출 카페로 전환해 월 7,800만 원의 부가 수익을 창출했다.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점은 체험형 롤플레잉 공간으로 재편해 개장 3개월 만에 1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극장은 점점 콘텐츠 소비 공간에서 경험 판매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내가 자주 찾는 잠실 월드타워의 상영관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전히 크고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지만, 대작이 아닌 영화는 빈자리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과거에는 좌석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붐볐지만, 이제는 절반 이상이 비어 있는 경우도 많다. 같은 장소에 있지만, 분위기와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다.
결국 영화관은 더 이상 '당연히 가는 곳'이 아니다. "왜 굳이 극장에서 봐야 하는가"에 설득력 있게 답하지 못하면 관객은 돌아오지 않는다. 콘텐츠는 넘쳐나고, 선택지는 이미 손안에 들어와 있다. 관객에게는 장소가 아니라 설득력 있는 이유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도 극장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제는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아쉬운 영화'가 있어야만 발걸음을 옮긴다. 극장이 다시 관객을 설득하려면, 그 공간에서만 가능한 몰입과 만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 산업이 회복해야 할 것은 단순한 티켓 판매량이 아니라,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명확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