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멈추어야 할 때다.
본 글은 2018년 11월 6일자 홍콩 Asia Times 오피니언 섹션에 실린 제 칼럼 <Time to put an end to South Korea’s ‘gapjil’ culture>을 번역한 글입니다.
바라보기가 불편하다. 한국 부자들의 갑질 추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언론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갑질을 알아가는 것도 새롭지 않다. 그런데도 여전히 바라보기가 불편하다. 필자는 며칠 전 또 하나의 새로운 갑질을 하나 배웠다. 부하직원들에게 닭을 도살하게 강요하고, 머리의 염색을 강요하고, 그리고 술을 강요하며 소변을 참게 하는 새로운 형태의 갑질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직원뿐만 아니라, 어느 대학의 교수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들여 가래침을 강제로 먹게 한 혐의도 받고 있다. 나에게 이런 새로운 ‘갑질 스킬’을 가르쳐 준 ‘선생’은 바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회장이다. 양진호 회장의 재산은 약 1,000억 원대로 추산된다.
바라보기가 몹시 불편하다. 저런 리더를 바라보기가 불편하다. 양진호는 전형적으로 공감능력이 결여된 리더이다. 직원들을 이끌어 기업을 운영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그에게 동료와 부하는 없었다. 대신, 자신을 위해 기꺼이 장난감이 되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장난감이 맘에 들지 않으면, 새로운 장난감을 사면 그만이었다. 그 장난이 재미있어서, 그는 더욱 엽기적인 행각을 일삼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장난감이 그와 동등한 인격체를 갖춘 ‘사람’이었다는 데에 있다. ‘너가 좋으면 나도 좋고, 너가 싫으면 나도 싫다.’라는 그 평범한 인간관계의 진리를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에게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품격과 도덕성을 논하기에는 이 지면이 아깝다. 그는 리더로서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리더이기 이전에, 그가 먼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기를 바랄 뿐이다.
바라보기가 몹시 불편할 것 같다. 얼마 뒤, 대한민국 사법부가 양진호에게 가벼운 처벌을 내린다는 소식을 미디어를 통해 접할 것 같아 몹시 불편하다. 대한민국 국민들 역시, 그 소식을 듣고 불편해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재벌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대한민국 사법부의 결정들은 국민들의 기대에 턱 없이 미치지 못했다. 법원이 재벌들에게 부과하는 적은 벌금과 형량은 늘 우리 사회의 논쟁거리였다. 모든 사건을 일반화시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 법원은 유독 재벌들의 횡포와 범죄에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국민들과의 공감이 결여된 처벌 수위가 양진호 회장에게 내려질까 염려된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법원의 형량이라는 것은, 국민감정이 아닌 법리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맞는 이야기이다.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시대정신이 변함에 따라 법리 역시 이와 함께 개선될 필요는 있다. 국회에서 그 논의의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국회가 그것을 개선시킬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창구이다.
과거 ‘갑질 사건’들을 돌이켜보면,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 중 일부는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을 자신의 ‘노예’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오로지 돈을 위해 살아가는 그들에게 ‘노예’란, 그저 말 잘 듣는 장난감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과 공감 능력은 애초부터 그들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만일 이러한 개념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그들에게 가르쳐주면 된다. 돈과 권력은 결코 인간의 존엄성 위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이 간단한 명제는 우리 국민들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을 해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하고 적극적인 법의 잣대를 적용시켜야 한다. 재벌이라고 예외는 없어야 한다.
한 번만 더 이야기하겠다. 인간의 존엄성을 해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하고 적극적인 법의 잣대를 적용시켜야 한다. 재벌이라고 예외는 없어야 한다. 그들이 대한민국 경제에 공헌한 바와, 인간의 존엄성을 해하는 범죄는 별도로 구분하여 논의되어야 한다.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그 평범한 진리를 입증해 주어야만, 국민들이 더 이상 불편해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재벌들의 갑질과, 이에 따른 대한민국 사법부의 최종 판단은 필자를 여전히 불편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