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을 것 같았지만 잊고 살았던 것들에 대하여

토이스토리 3(Toy Story 3, 2010)

by 두부

글 특성상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는 독자분들께서는 감상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해당 영화를 먼저 감상 후 읽어주시면 더욱 깊게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린 시절 누구에게나 아끼던 장난감이 하나쯤은, (꼭 장난감이 아니더라도) 있었을 것이다.



매일 가지고 놀고, 외출할 때도 손에 꼭 쥐고 나가고, 놀다 지쳐 잠이 들 때에는 나의 머리맡을 지켜주었던 그런 장난감이.



그 시절 그것은 단순한 장난감의 의미를 넘어 언제나 함께하는, 앞으로도 쭉 함께일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한 살 두 살 나이가 늘어나고, 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렇게 성인이 된 내가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던 도중에 만난 영화가

바로 토이스토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토이스토리 3(Toy Story 3, 2010)였다.





지금은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IPTV에서 구매를 하거나, 다운로드해서 볼 수 있는 여러 플랫폼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영화관에서 내려간 영화는 기다렸다가 비디오 대여점 같은 곳에서 대여해서 볼 수 있었다. 어린아이였던 나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지는 못했고, 비디오로 빌려서 영화를 봤는데, 내가 처음 본 픽사 애니메이션이 바로 토이스토리 1,2편이었다.



토이스토리 3편과 다르게 1편과 2편은, 아이들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뜻밖의 사고로 앤디와 헤어진 장난감,


돌아가는 길에 펼쳐지는 모험


그 중간에 만난 악당은 벌을 받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앤디와 재회


마무리.



장난감, 모험, 권선징악(?), 3D 애니메이션, 우리말 더빙까지. 어린이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모든 요소가 있었던 이 영화를 나는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장난감을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토이스토리라는 영화도 기억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이 시리즈를 재미있게 봤던 어린아이였던 나는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고, 잊혀 가던 시리즈물인 토이스토리의 신작 개봉 소식이 들려왔다.




큰 기대를 하고 영화를 보러 가진 않았다. 그저 예전에 보았던 토이스토리에 대한 기억이 좋았기에 별생각 없이 찾아간 영화관에서, 나는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코를 훌쩍거리며 울었다.
작정하고 눈물을 뽑아내려 의도된 신파가 아닌,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옛 추억이 뒤섞여 전해지는 순수한 감동에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토이스토리 3 은 나의 인생 영화가 되었고, 지금도 누가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토이스토리 3이라고 대답한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우리들


영화의 시작은 전작들이 그래 왔듯 앤디와 장난감들이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여준다. 흘러나오는 배경음악도 마치 이런 꿈같은 시간들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흥겨운 멜로디를 띄고 있다. 그리고 노래의 마지막 한 소절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그 가사가 뜻하는 바가 무색하게도 분위기는 반전되어 쓸쓸하게 흘러간다.

이어지는 장면은 방금 전까지 보여줬던 장면과는 전혀 상반된 분위기이다.



어느새 훌쩍 자라 대학생이 된 앤디


앤디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장난감들의 노력


낡은 상자에 아무렇게나 쌓인 앤디가 아끼던 장난감들


이어지는 장난감들의 쓸쓸한 대화.



어느새 어릴 적 앤디만큼 자란 앤디의 여동생도, 장난감보다는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에 더 관심이 있고,

입학 준비로 바빠진 앤디가 더 이상 장난감에 전만큼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언행들이 더해진다,

이제 예전과 같지 않음을, 앤디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이는 장난감들.


앤디가 가장 아끼는 장난감인 우디는 희망적인 말로 친구들을 위로하려 노력하지만, 우디도 속으로는 알고 있었고, 옛 생각에 잠겨 가려진 사진 속 앤디를 아련하게 쳐다본다.



이런 식으로 영화의 도입부는 전작과는 다르게, 장난감들을 완전히 정리하는 분위기로 흘러간다.
그 과정에서 오해가 쌓여 갈등이 생기면서, 여러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은 전작들과 같이 재밌게 볼 수 있었다.
사연 있는 악역, 개성 있는 캐릭터들, 시리즈 사상 가장 긴 러닝타임을 가진 탈출극. 디즈니 픽사 특유의 위트 있는 연출과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고 흘러간다.

그 중간 과정도 매우 흥미롭지만, 자세한 내용은 직접 영화를 보면서 확인하기로 하자. 무엇보다 내가 이 글을 쓰도록 결심하게 한 핵심은 바로 이 영화의 마무리에 있다.




우디와 장난감 친구들은 이미 알고 있다. 앤디에게 돌아간다고 해도 기다리는 건 정해진 이별임을,

우디는 앤디와 함께 대학에 가지만, 나머지 장난감들은 다락에 보관되거나 기부하기로 정해진 상황.
간신히 모두 함께 앤디의 집에 돌아오는 것에 성공하지만, 우디는 친구들과의 이별을 준비한다.



이거 작별인사 아니야.


아쉬움, 그리움, 후련함 등등.. 여러 복잡한 마음을 정리한 친구들은 "다락"과 "대학"이라고 쓰려진 서로의 상자에 들어가 앤디를 기다린다.


그런데 그때, "대학"이라고 쓰인 상자에 들어가 있던 우디의 눈에 낯익은 사진이 보인다.


바로 영화의 시작 부분에 잠깐 등장했던 그 사진.



우디는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같은 사진을 바라보지만, 시선이 머무르는 곳이 다르다. 처음에는 앤디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우디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앤디가 아닌 장난감 친구들이 있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윽고 어떤 결심을 한 우디는, 상자에서 박차고 나와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간다.


얘네들을 아주 잘 보살펴줄 친구가 필요해.


우디가 적어놓은 메모를 발견한 앤디는, 나머지 장난감들을 따로 처리하지 않고 보니에게 그 장난감들을 가지고 가게 된다. 상자를 열어 장난감들을 하나하나 보니에게 소개해주는 앤디. 모든 소개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상자 안에 장난감이 하나 더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대학에 가져가려고 집에 놓고 왔을 터인 우디가 거기에 있었다.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의아해하고 있는 앤디에게서 보니가 우디를 가져가려고 하자. 앤디는 흠칫하며 뒤로 물러나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우디가 결심을 했던 것처럼, 앤디도 무언가를 결심하고 보니에게 우디를 넘겨준다.


얜 널 포기 안 해. 절대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너의 곁에 있을 거야.



앞서 다른 장난감들을 소개할 때와 달리, 우디를 소개할 때는 사뭇 다른 감정이 느껴진다. 담담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앤디의 모습에서, 우디를 평범한 장난감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구나라는 감정이 화면을 넘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소개를 마치고, 앤디는 보니와 함께 마지막으로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장난감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놀기 시작한다,




모든 시간이 끝나고, 이제 정말로 이별할 시간. 멀리서 우디를 바라보는 앤디의 눈에서는 후회, 미안함, 아쉬움 등의 복잡한 심정이 드러난다. 한참을 바라보던 앤디가 마지막 순간 나지막이 뱉은 한마디는


고마웠어




이별의 순간 복잡한 머릿속에서 앤디가 선택한 말, 최종적으로 그가 느낀 감정은 그 무엇도 아닌 고마움이었다.


너무나도 소중했으나 잠시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친구에 대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에 대한,


그저 단순한 장난감으로 그치지 않은 서로의 유대에 대한


관련한 그 모든 것에 대한..



그때, 멀어져 가는 앤디의 뒷모습을 보며 우디가 대답한다.


잘 가 파트너


당연하게도 그들의 목소리는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 하지만 닿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유대는 당연한 것이 아니기에. 오랜 시간 서로의 곁을 지켜왔던 파트너이기에...






이처럼 영화는 시리즈 최초로 감격의 재회가 아닌 감동의 이별로써 그 끝을 맺는다.

작중 앤디가 자란 것처럼 우리도 자랐다. 그 과정에서 여러 경험을 하게 되고. 우선순위를 두는 가치가 달라지게 된다.
그리고, 많은 이별을 겪는다.
그렇게 점점 어른이 되어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얻고, 또 그만큼 많은 것을 잃어간다.
지금 당장 영원할 것 같은 관계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도 멀지 않은 미래에 바뀌고 희석될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가, 아이보다 어른에게 더 와 닿는 이유는 앤디의 모습이 그러한 우리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 때문은 아닐까?

꼭 장난감이 아니더라도,


너무나도 소중해서 잊지 않을 것 같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잊고 살았던 것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을 완전히 떠나보내야 할 때에, 나는 미소 지으며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