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부터 39등에게 전하는 이야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모범생이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 나를 묘사하는 단어들을 봐도 나는 모범생이 맞다. 지금와서도 생각해보고 다시 생각해봤던 것을 굳이 알려드리는 이유는 스스로를 모범생이라고 표현하는게 얼마나 재수없어 보일지 알기 때문이다.
모범생이란 하나의 명사를 수식하는 보편적인 형용사 들과 같이 나는 성실하고 착실하고 선생님 말씀 잘듣고 교우관계도 원만하며, 공부도 그럭저럭 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반의 40명이 있다면 40명의 비애가 있기 마련이며, 나에게는 모범생의 비애가 있었다.
내 비애는 내가 모범생이라는 애매한 희망을 쥐고 있는 데에서 시작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나는 전교에서 1~2등을 하지 않았고 반에서 3~5등 정도를 오가는 모범생이었다. (지금은 전교 등수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라떼는 전교 등수를 공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반에 성적순대로 앉을수도 있는 야만적인 시대였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전교에서 1~2등을 오가고 얼굴도 예쁘고, 전교회장을 할만큼 인기좋은 하이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행운은 잘 오지 않기 때문에 드라마에 존재하고 우리가 열광하는 것이다.
한 반에 40명(내 고등학교 졸업 연식이 나오는데 정확히는 한 반에 38명 정도였다.) 정도가 있으면 그 하이틴 드라마의 주인공은 앞에서 한명, 뒤에서 한명 단 두 명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예쁘고, 잘생기고, 사고를 치거나, 반항아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어느 분야에 천재적 재능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주인공이 한 명인 경우도 많다.) 그 사이 2등부터 39등까지는 선생님의 기억에도, 서로의 기억에도 잘 남지 않는 착실하게 졸업한 아이들이 되고 나도 그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그래도 40명을 절반으로 나누고, 거기서 다시 절반씩 나눈다고 했을 때 40등 주인공 쪽보다는 1등 주인공 쪽에 조금 더 가까이 있던 탓에 (혹은 덕분에), 뒤로 가는 것 보다 앞으로 가서 주인공을 차지하는게 빠르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아가게 되었던 것이 나의 비애이자, 인생을 관통하여 드라이브 모드로 주구장창 가게 된 시발점이지 않나 싶다.
(시발점과 시작점과 출발점, 세 단어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였다.)
그렇게 시-발된 나의 학창시절은 지금 생각하면 심심하기 짝이 없었다. 가장 큰 일탈이래봐야 남중-남고-여중-여고에 대학교까지 같이 있는 학원 재단의 넓은 운동장을 치마 교복안에 보라색 츄리닝을 입고 교내 슬리퍼 신고 나갔다가 학생주임 선생님한테 걸려 30cm자로 등짝 좀 후둘겨 맞은 일일 정도였다. 거기에 태생적으로 소심하고, 바쁜 맞벌이 부모님 슬하 막내로 자란 탓에 여기저기 놀아달라고 눈치보는게 어렸을 때부터의 일이었던 나에게 지방 사립 여자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서슬퍼런 눈을 피해 놀 배짱따위는 없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삽질만 가득했던 나의 학창시절에 스스로 관 뚜껑을 덮고 눕는 마음으로 고백하자면, 나는 내 인생에서 고등학교 때 제일 못생기고 뚱.. 아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질량으로 지구에 존재하였다.
그런 내가 할게 무엇이 있나. 부모님도 하라고 하고, 선생님도 하라고 하고, 주변 친구들도 다 하고 있는 공부나 해야지. 여고-남고가 붙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애에 눈 돌리지 않고(못하고) 3년 내내 미욱스럽다시피 아침 7:40분에 시작된 0교시 자습부터 10시 야간자율 학습까지 단 한 번의 결석 없이 해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미련하게 공부하는게 먹히던 때였고 두 번 다시 없을 천운도 좀 따라주었다. 이 천운은 주인공들에게 발생할 법한 드라마틱한 운이었는데, 역시 조연의 주제 파악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할까 하여 나에게는 고3 때 한번 나타나주고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아마도 19년 주기 쯤으로 발생하는 정도의 강력한 운이었다. (운도 사람을 가리는지 주인공들은 회차 당 75분 내에 한 번씩 턱턱 발생하는 천운인데, 역시 조연에게는 야박하다). 하지만 나 역시 내 주제를 알기에 2등부터 39등 사이의 조연들 중에서는 그래도 주인공들과 말도 좀 섞어 볼 수 있고, 때때로 극에 적절한 긴장감도 불어 넣을 수 있을 정도의 비중까지는 갈 수 있는 매우 운 좋은 케이스였던 것에 지금도 감사하며 살고 있다.
이쯤에서 독자 여러분께 실망감을 좀 안겨드리자면 결과적으로 나는 천운으로 서울대에 진학했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의 기대감도 좀 충족시켜드리자면 과는 내 적성과 자아실현 등은 일도 고려하지 않은 점수에 맞춘 과로 진학하여 뒤늦은 사춘기를 대학생 때 겪게 되며 결론적으로 대학 4년 동안 배운 것들은 하나도 써먹지 않는 커리어를 쌓아 나가게 된다.
* 그래도 점수에 맞춰 들어간 전공이 도움이 될 때가 있었으니, 프롤로그에 있어보이게 인용한 논어 정도가 내 전공 공부의 최대 아웃풋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