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백, 버팔로윙의 짜릿한 추억

by Jay

부모님은 집안에서 처음으로 서울대에 진학한 딸이 자랑스럽고, 서울애들 사이에서 기죽지 말란 의미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두둑한 용돈을 챙겨 주었다. 그리고 모교에서 서울대 갔다고 플랜카드까지 걸었던 그 딸은 서울대 입구역에서 2월 말 칼바람을 헤치며 서울대 입구역에서 내려 서울대 정문을 거쳐 단과대까지 걸어가는 용맹함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서울대학교의 내 단과대는 서울대 입구역보다 낙성대역이 가깝다. 서울대 입구역에서 서울대 정문을 거쳐 내 단과대까지의 거리는 3km이고, 낙성대 역에서부터 거리는 2.5km 이다. 하지만 애초에 누가 더 머냐와 상관없이, 두 길 모두 한 겨울 칼바람을 헤치고 걸어갈 만한 오르막 길들이 아니기 때문에, 서울대학교의 셔틀버스와 마을버스들이 운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 딸은 서울아이들이 간다는, 비싸서 가지 못했던 아웃백 서울대점을 용감하게 들어가 [버팔로 윙]세트를 시키게 되었고 샐러리의 익숙치 않은 향과, 윙봉의 미제 짠맛을 버티지 못해 반도 먹지 못한채 이만원에 가까운 거금을 할인카드도 없이 현금 지불한! 누가 뛰어가면서 보아도 변명의 여지없는 촌년이 되었다.


아직도 억울하기 짝이 없는게 왜 광고에서 샐러리에 마요네즈 찍어먹는 사람들은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것인가. 나는 왜 오이도 먹지 못하는 사람인데 무슨 멋을 내겠다고 향 강한 샐러리를 시킨 것인가. 차라리 자축하면서 멋있고, 맛있게 돈 쓸거였다면 스테이크라도 시켜서 멋지게 칼질해 버릴 것이지 가격표만 보다 에피타이저 섹션에 있던 것 중에 시켰던가.


이만원이면 500원짜리 컵 떡볶이가 몇 개며, 치킨 2마리 가격인데. 토실토실한 닭다리도 아닌 윙&봉 몇 쪼가리에, 그리고 입도 못 덴 풀떼기에 그 돈을 썼다는 것은 아직도 치욕스런 수많은 과거 기억들 중 순위권에 들어가 있다.


그리하여 술먹어도 되고, 담배를 펴도 되고, 수업을 째도 되는 20살 대학생이 되었지만, 돈이 있어도 쓰지 못하고, 시간이 주어져도 제대로 놀지 못하던 나는 2등부터 39등 사이에서 모범생이었던 나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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