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감비아 지사에서 전합니다

by Jay

스타벅스에서 IT 업계 종사자 답게(안타깝게 IT종사자 답지 않은 일도 잘한다.) 사이렌오더로 오전을 버틸 생명수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멍하니 픽업대에서 내 닉네임이 뜨길 기다리다 무심코 직원분의 [Monica]라는 명찰을 보며, 내가 3년 반 동안 시간을 보냈던 그 곳의 기억이 떠올랐다.

"Jay님, 이거 확인해 보셨어요?"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도입한 영어이름에, 끝끝내 버리지 못한 촌스러움이 남아 '님'을 붙인 것과 같이 내가 다니던 글로벌 IT회사는 IT 회사 뒤에 괄호 치고 한국지사라고 넣고, 괄호를 닫은 촌스러움이 남아있는 회사였다. 생각해 보면 친구네 IT 회사는 영어 이름 뒤 님에 그치지 않고, 직책까지 넣어 '올리비아 부장님'이 되었다던데, 이 정도면 외국계 회사의 느낌을 남겨두는 정도라 만족해야지 싶었다. 하지만 우리도 외부 고객사를 만날 땐 직책이 필요하단 주장으로 명함에는 [@@@ 팀장]이라고 적었으니 개낀도낀이다 싶다.


밖에서 봤을 땐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한, 잘나가는, 자유로운, 온갖 좋은 수식어를 붙여도 아깝지 않고 포지션 공고를 내면 지원자가 넘쳐나서 골라 뽑을 수 있는 전 직장 글로벌 IT 회사는 나에게 인생에 중립 기어를 넣고 브레이크를 잡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흔히 국내 대기업을 흉보는 이야기로 [사람을 기계 부품 다루듯 한다] [업무의 자율성이 없다].. 등등을 이야기 한다. 국내 대기업과 외국계 IT회사를 각각 단 한 곳씩 만 다녀본 오로지 나만의 편협하고, 뒤돌아보지 않는 생각은 [내가 얼마나 할 수 있는게 없는 사람인지 자괴감이 들고 싶으면 글로벌 IT회사를 가라]. 더 정확하게는 멋있는 글로벌 IT회사의 지사를 가라 일 것이다.


하나의 유기체같이 국적없이 변화하는 글로벌 IT 프로그래머들은 미천한 지사 직원들에게 알려줄 틈 없이 Up-grade를 하거나(업데이트를 가장한 에러, 버그, Down-grade 역시 포함되어 있다), 연례 한번 있는 큰 행사에서 발표한 기능의 출시 국가에서 한국을 빼놓곤 한다. (제발 한국에 출시 안할거면 보도자료도 뿌리지 말라고)


그런 상황들을 종종, 왕왕, 심심치않게 겪어본 한국의 지사 직원들은 몸빵을 하다 하다 지칠 때면 자조적으로 "그래 우리는 삼성전자의 감비아 지사 직원이야"라고 내뱉고, 좀비 같이 모니터를 보며 영혼이 담길법한, 그럴듯한 단어들 예를 들면 [최선을 다해], [파악 중이며], [업데이트가 있는 경우 바로], [양해를 부탁드리며]를 조합해가며 메일을 쓰곤했다.

(삼성전자의 감비아 지사를 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이질감이 느껴지는 삼성전자,감비아,지사 세 단어가 한 문장에 담김으로써 느껴지는 무기력함을 조금 과장하여 표현하고 싶을 뿐이다. 참고로 글쓰는 현재 구글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 삼성 전자에는 감비아 지사가 없다. 그리고 읽어주시는 분들의 편의를 위해 말씀드리자면 감비아는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충청도보다 작은 나라다)


이런 일들이 잊지 않고 바뀌는 계절과 같이 분기, 반기, 연간으로 뒷감당 해야하는 사이즈까지 강약 중간약 조절해 주며 발생하기 때문에, [하루는 더럽게 가질 않는데, 왜 지나고 나면 분기 반기는 훌쩍훌쩍 가 있는 거냐]란 말들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오곤 했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적응의 동물이고, 겪다보면 이런일도 종류만 다를 뿐이지 사실 어느 직장에서든 있을 법한 시시껄렁한 일 중의 하나가 되어간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리만치 이러한 종류의 일들에 익숙해 지지 않았다. 왜 무던무던한 사람들이라도, 건드리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포인트들 중 하나가 있는데 나에게는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 사과해야 하는 종류의 것들이 그러했다.

그런 종류의 사과는 사실 전 회사에서도 많이 했는데, 왜 그때들어 그게 못견딜 만큼 싫어졌을까.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사고를 친 사람들의 얼굴도 모른다는게 크지 않았을까 싶다. 국내 대기업은 내가 잘못하지 않은 것들을 사과해도, 어차피 그게 우리 팀일이고, 우리 인턴 잘못이고, 대부분은 내가 아는 선에서 사과할 일들이 발생한다. 하지만 글로벌 회사는 그야말로 자다가 뺨맞을 때가 많다보니 정말로 억울하다란 느낌이 들고 그것들이 쌓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 삼성전자 감비아 지사 사람들도 휴대폰 안터지면 '한국 본사놈들'이라고 욕하겠지, 나도 그냥 '미국 본사놈들'이라고 욕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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