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립과 불혹 그 중간 어디쯤에서
요즘 세대들이 누구 이야기가 맞을지 모르겠을 때, 판단을 보류하고 잠시 멈추어서 상황을 살펴볼 때 [중립기어를 넣는다고 한다]고 표현한다고 한다. 듣자 마자 무릎을 탁 쳤다('맞다 케토톱'도 외치고 싶었지만, 그러면 중립이 아니라 후진기어를 넣는 셈이 될까하여 참았다). 왜냐하면 국내 IT 대기업 4.3개월(인턴, 계약직 포함하면 5년), 글로벌 IT 대기업 3.3개월의 근속을 마치고 잠시 숨고르기 하려던 '놀아요', '잠시 쉬고 있어요', 어머니의 표현에 따르면 '저게 고장났다'인 나의 상태를 표현해 줄 수 있는 근사한 문구로 들렸기 때문이다.
또 주차모드와 중립기어 모드는 엄연히 다른데 내 상태는, 조금 더 솔직하게는 내가 나의 상태를 묘사하고 싶은 단어로 정차지에 도착해 차에서 내릴 때 사용하는 주차모드 보다는, 시동을 켜둔 채 언제든 다시 출발할 수 있는 중립기어 모드를 쓰고 싶었다.
내가 이제 30대 중반인데, 나는 아직 내릴 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30살을 기점으로 많은 것들이 변화한다고 하는데, 내 인생은 30살을 넘어 30대 중반을 거치고 있고, 30대 후반을 향해 가고 있는데도 그다지 많은 것이 변화하지 않았다. 내가 길을 선택하기 보단 주어진 길을 열심히 살아오며, 삶을 관통할 만한 깨달음을 얻지도 않았고, 주입식 교육을 착실하게 받아온 인생 답게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대한민국 30대 중반 여성의 정규분포 그래프의 평균에 가깝게 있지도 않는다. 이런 삶이 좋고 나쁘다는 가치판단을 하려는게 아니다. 문제는 내가 이 삶을 만족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논어에서 30대는 혼자 설 수 있는 이립의 나이이고, 40대는 흔들리지 않는 불혹이라고 하였으니 지금 내 나이는 혼자서서 흔들리지 않기 위한 뿌리를 내리는 중간즈음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흔들리고 있으니 이래도 괜찮나 싶다.
나는 29세가 되는 1월달부터 불안했다.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인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도 멈추지는 않았다. 오히려 불안할 수록 엑셀을 꾹 밟고, 마치 내가 지금 삶에 최선을 다하지 않아 벌로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처럼 달려왔다. 몇 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때 중립기어를 넣고 내가 가야 하는 길에 대해 찾아보고, 차에는 문제가 없는지 살펴봤어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 인생 뿐만 아니라 누구나의 인생에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한번씩은 할 거 같다. 누구나에게도 인생의 굴곡은 있는거니까. 하지만 모두가 고장날 정도로 무식하게 드라이브 모드로만 달리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이 인생이라는 굴곡진 길에서, 한번도 중립 기어를 넣어본적이 없다. 있다 해도 잠시 자의가 아닌 긴 신호에 걸려 어쩔수 없이 중립기어에 넣었을 뿐이고 그 와중에 브레이크를 꽉 잡아 내리막길로 생각되는(실제 아닐수도 있는) 굴곡에 따라 떠내려 가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을 뿐이다.
겁이 많던 나는 돈을 열심히 벌지만 어디다가 딱히 쓰지도 않은 채 직장생활을 근 10년을 채우고 고장나서 퍼지기 직전 상태의 차로 중립기어를 넣었다. 미리 알고 중립기어를 넣었다면 좋았겠지만, 매연도 좀 시꺼멓게 나는 것 같고, 고속으로 달리면 덜덜거리고, 연비도 안나오는 것 같아서, 더는 달리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잠시 멈추어 섰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기로 결심했다.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도 어디가 고장나 있는지 차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어디로 달려갈지도 좀 찾아보기 위해서다. 무엇보다도 뭉뚱그려진 원인들을 좀 풀어 헤쳐 보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잠깐 멈추자는 결정을 내린 내가 좋다. 아직 시동을 끄진 않았으니까. 언제든 드라이브 모드로 기어를 바꿔 갈수 있다. 그리고 필요하면 주차하고 잠시 내릴 수도 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다시 출발 못할 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