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운동이라도 할 걸 그랬나 보오
운빨로 들어간 나의 대학과 학과는, 처음으로 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온전히 나에게 맡겨졌던 대학교 1학년은 그대로 나에게 돌아왔다. 어머님, 아버님 두분이 그렇게 잔소리 하던 더 큰 자유에는 더 큰 책임이 따른다가 이런 말이었습니까(사실 우리 부모님이 하신 말씀이 아닌 것 같지만 넘어가기로 하자)
나의 대학생 2학년 1학기의 서막은 우선 지역 학생들을 위한 지역장학 기숙사에서 부터 쫓겨나는 것으로부터 올라간다. 지금도 그렇지만 지방 학생들이 서울 소재의 대학교에 진학한 경우 경제적 지원을 위한 기숙사들이 존재하였다. 각 대학교마다 있던 기숙사들이 지방에서 올라온 신입생들을 다 수용하지 못하던 터라, 저렴한 가격으로 삼시 세끼와 잠자리까지 제공하는 학숙의 입소 경쟁율은 치열했다. 나는 그 학숙을 대기번호로 1학년 2학기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는데, 한 학기 만에 아침 체조 점수 미달로 쫓겨난 [최단기간 퇴소 1학년 여학생]이 되었다. 최단기간, 1학년, 여학생 셋 중에 하나만 제외해도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있었는데 하필 세 개의 교집합의 첫 사례가 나여서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어 다소 억울하긴 하지만 이 역시 넘어가도록 하자.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서울대 빨이 남아 있던 터라, 부모님은 내 편을 들어 주었다.
[그래, 대학생이 공부도 하고 동기들이랑 술도 한잔 하고 하면 아침 체조 좀 빠질 수 있지. 대학생이 6:30 아침 체조를 어떻게 다 하고 다녀] 라고 해주셨다. 부모님의 따뜻한 말씀에 나는 아침 체조를 빠졌던 것이 아니라 술먹느라 저녁 11시 통금을 못지켜서 기숙사에 아예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1학년 때 있었던 기숙사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풀린 나는 가관이었다. 그때부터 방탕한 생활엔 가속도가 붙어 학교를 다니지만 학교를 다닌다고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내 2학년 1학기 성적표엔 여지 없이 [학.사.경.고]가 뜨게 되었다.
[학사 경고 기준 : 성적이 일정 기준에 미달한 자에 대하여 대학에서 수강학점을 제한하는 것
- 대상자 : 학사과정 학생으로서 한 학기 성적 평점 평균이 1.7에 미달된 자
- 3교과목 이상 또는 6학점 이상이 'F'인 자
여러분, 생각보다 학사경고가 어렵습니다.
특히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을 다 봤는데 F를 받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너무 얼빠진 상태라 성적표 수신 주소도 바꾸지 못했던 나의 성적표를 보고, 안타깝게도 2살 터울 오빠(놈)이 있어 학사 경고가 얼마나 받기 어려운 것을 아셨던 부모님은 날 보고 진지하게 물어보셨다.
[너 데모하니?] 2008년 한창 광우병 시위로 대학가가 떠들석 했던 때였다.
[어머님, 아버님. 소녀 그렇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니옵고]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니]
[그걸 저도 모르겠어요]
정말로 나는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었다. 공부에 집중하라고 어렵게 돈 벌어서 서울로 송금해 주시는 부모님이 있었고, 고등학교 내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가고 싶은 대학에 왔는데 나는 무엇이 문제인 걸까. 길을 잃은 정도가 아니라 내가 길 위에 있는지를 모르겠다.
차라리 누군가처럼 뜨겁게 사랑하고, 나이트다 헌팅이다 놀아봤으면 지금이라도 자랑처럼 어디 이야기 할수나 있지.
그 때 나의 일상은 새벽 6시까지 컴퓨터를 하고, 폐인처럼 있다가 중간에 있는 수업들을 지각, 결석하며 오후 4시부터 커피 전문점 아르바이트를 다녀오고, 돌아와서 불법 컨텐츠 사이트에 들어가서 철지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다시 새벽 6시까지 보는 일상이었다.
그때도 비록 학고를 맞았을지언정 휴학이라는 것은 나에게 있을 수 없어 꾸역꾸역 버텼을 뿐이다.
그때의 나는 1학년 때 대학 신입생이 주던 자유가, 마음 나눌 친구도 가족도 없는 외로움이 되어 돌아왔고
서울대에 들어갔다는 자부심이, 나보다 잘난 동기들을 향한 못난 열등감이 되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