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련 명상 이야기
좀 남사스럽지만 마음수련 명상을 시작한 지 올해로 20년이에요. 명상한 이력에 대해서는 입 딱 다물까 생각도 했죠. 20년이나 했는데 아직? 그러실까봐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만 시간의 법칙을 봐도 이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저 때문에 마음수련 명상이 욕 먹을까 봐 주저되기도 했지만 솔직하게 까놓기로 했어요. 저처럼 마음을 부수기가 힘든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얼마나 아까운 인생인데...
사실 저만 이렇게 힘든 건 아니라 생각해요. 스님들도 장좌불와 용맹정진하시면서 엄청 고생하시잖아요. 막말로 답은 이미 오래 전에 다 나와있죠. 뜰 앞에 잣나무도 부처님이고 뒷간에 똥 막대기도 부처님인데 고민할 게 뭐 있겠어요. 삼라만상이 다 부처라는데 끝난 거지. 단지 내가 인정이 안되고, 그래서 무슨 말인지 와 닿지는 않고, 잣나무처럼 살아지지도 않으니까 동안거, 하안거를 반복하시는 거죠. 수행하시는 분을 폄훼할 생각은 아니에요. 저는 그보다 못한 사람이니까요. 단지 사람 마음이 그만큼 지독하다는 말입니다. 특히나 저처럼 격동기를 겪으며 살았던 세대는 독한 마음이 많아요.
그럼 저 같은 사람은 명상을 해봤자 꽝일까요? 저처럼 산전수전 겪은 늙은이는 가망이 없을까요? 아니죠. 저 같은 사람의 실패를 교훈 삼으시면 되죠^^ 그러라고 함께 모여 사는 거 아닐까요 ㅎㅎ
마음을 버리기 전에 먼저 자기를 돌아봐야 하는데요. 자기 성찰의 과정에서 많은 감정이 해소되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잘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죠. '내가 뭘 잘못했는데?'는 생각을 고수한다면 아무 마음도 버려지지 않고 달라지는 것도 없을 겁니다.
명상하기로 돈독하게 마음을 먹고 자리에 앉으면 그 때부터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되죠. 대개는 시간이 흐르면 적응합니다만 마음의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수업이 어려우면 딴짓을 시작하듯이 말입니다. 감이 안잡히고 몸도 힘들어지면 평생 부렸던 마음이 슬슬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기를 버리기 싫고, 익숙한 자기를 고수하고 싶어서 발목을 걸어오는 것이죠. 참 이상하죠? 노숙하는 사람은 지붕이 불편해서 쉼터에 가지 않는다 해요. 길거리가 더 익숙해진 거죠.
"야! 하던 대로 하고 살아." "하지 마, 제발!" "나 힘들어! 그만해, 커피 한 잔 마시고 올까? 산책은 어때? 집에 갈까? " 새로운 시도를 방해하는 것은 남이 아니라 자신입니다. 익숙한 자기.
이런 마음의 갈등은 다양하게 표출됩니다. 경험에 비춰 알려드릴께요. 흐르는 물처럼 수월하게 가시는 분은 읽지 마세요. 난관이 많은 분들이 읽고 도움이 되길 바래요. 마음의 술수에 넘어가지 마시라고 말이죠^^
1.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요.
의외로 이런 분이 많습니다. 일종의 병목현상이죠. 차가 갑자기 몰리면 엉겨서 서로 꼼짝 못하는 도로 현상 말입니다. 아무리 엉겨있어도 교통순경의 수신호에 따라 하나하나 풀면 어느 순간 도로가 뚫리잖아요. 마음도 그럴 때가 많아요.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하잖아요. 뭔가가 꽉 차있어서 그래요. 막힌 유형에 따라 이유와 해법은 조금씩 다르겠죠.
첫째, 일시적으로 생각이 안 나서 답답해하는 경우입니다. 성급할 뿐, 그런 분은 곧 문제를 풀어 나가십니다. 풀려는 마음이 있으니까 답답하신 거죠. 흔히 목욕탕에 비유하는데요. 목욕탕 들어가자마자 때를 밀 수는 없습니다. 생때를 벗기면 상처만 나게 되죠. 실타래가 엉기면 무슨 수로 푸나 싶어도 한올씩 찾다 보면 어느 순간 풀리는 것처럼 욕심을 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방법대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나이 순서대로 생각나면 나는대로, 안나면 안나는대로 반복하는거죠. 나지않는 기억을 억지로 짜낼 필요는 없습니다. 목욕탕에서 때를 불리듯이 시간이 되면 때는 밀려나오기 시작합니다.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둘째,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저는 마음도 없고, 버릴 것도 없습니다."고 우기는 분이 있습니다.
"나는 이미 마음수련 많~이 하고 살아왔어요."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분은 보통 주변 사람이 골병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무관심하고 무지한 만큼 주변 사람도 그리 대할테니까요. 무관심하고 독선적인 남편 옆에서 뒷감당하는 처자식은 죽어나는 법이죠. 이런 분은 세상을 무시하고 안 보고 안 듣고 살았던 자신을 많이 돌아보면 크게 깨우치는 바가 있을 겁니다. 어쩌면, 너무 감당하기 힘들어서 외면하고 회피했던 오래된 상처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한국 최고의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마음수련 메인센터에 왔습니다. 이 똘똘하고 잘생기기까지 한 여학생이 말했습니다. "저는 돌아볼 게 없는데요?" 마음이 없으면 행복해야 될 텐데 그것도 아니고... 마음도 힘들고 세상도 힘들어서 왔는데 어떤 스토리도 어떤 사람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핸드폰 주소록에 저장된 사람이 누가 있냐 물었습니다. 기억을 떠올릴 단서가 될까 해서 물은 것이죠. 놀랍게도 주소록에 아무도 없다고 했습니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하고 살 만큼 엄청난 트라우마를 묻어두고 살아온 것이죠. 어린 여학생이 극약처방으로 버티고 살았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남들이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그녀는 많이 불행했습니다. 그녀를 아끼고 걱정하는 부모님도 있었지만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요. 무슨 사연인지는 그녀만이 알 수 있고 그녀만이 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알려주고 기다려주는 수밖에 없었지요.
자기 마음을 회피하거나 부정하고 싶은 것은 감정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실제처럼 싸우고 지지고 볶고 울고 불고 난리지만 그것은 영화입니다. 실제가 아니죠. 그렇듯이 그 감정이 허상임을 인식하면 감정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감정 없이 객관적으로 봐지는 게 신기할 때가 반드시 옵니다. 소위 관조가 되는 것이죠.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 됩니다. 알기 때문에 마음이 꽉 막혀도 당황하지 않고 명상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2. 너무 생각이 많이 나요.
1) 잡생각이 너무 많아요
이생각 저생각이 끝도 없이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잡생각, 밑도 끝도 없는 망상 때문에 미치는 것이죠. 생각은 곧 마음입니다. 내 기억 속에 저장된 만큼 저장된 것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남의 뇌에 저장된 것이 떠오를 리는 없잖아요. 행동보다는 생각하고 고민하는 습관이 많아서 그런 것입니다. 인지를 못했을 뿐 나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 경우 두 가지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탓을 하는 겁니다. "나는 명상을 잘하고 싶은데, 이놈의 잡념 때문에 도저히 못하겠다."라고 핑계를 대는 것이죠. 그리고는 뛰쳐나갑니다. "너무 힘들어요." 아니면 "저는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이 명상은 저하고 안 맞는 것 같습니다." 하면서 짐을 싸죠. 위기가 오면 자기는 항상 이런 식으로 문제를 피해왔다는 사실을 반드시 돌아봐야 합니다.
둘째는 고맙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많이 드러나니까 많이 버릴 수도 있겠다." "이렇게 생각이 많은데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버릴 수가 있어서 너무 고맙다." "정말 쓸데없는 생각에 인생을 소비하며 살았구나. 지금이라도 알게되어 천만다행이다."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긍정적인 태도입니다. 긍정적인 것은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고요. 수용하는 마음은 넓은 마음입니다. 안 되는 것이 없는 마음이죠. 부정적인 마음은 안 되는 마음이지만 긍정적인 마음은 되게 하는 마음입니다.
아무리 생각이 많아도 뭐든지 긍정적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해결해가면 됩니다. 이렇게 명상을 했던 태도를 분명히 뇌는 기억하고 저장합니다. 삶의 어떤 순간에 이러한 태도를 소환하게될 것입니다. 명상과 삶은 둘이 아니기 때문이죠.
2) 한꺼번에 많은 생각이 떠올라서 뭘 버려야 될지 어느 것부터 봐야 될지 몰라서 마음만 급하고 우왕좌왕하는 경우입니다. 어쩌면 늘 이런 식으로 살았을지도 모르죠. 저도 학창 시절에 시험 날짜가 가까워오면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것도 봐야 하고 저 문제도 풀어야 하고 허둥거리다 결국 날치기로 공부하는 거죠. 제가 좋아하는 과목이나 잘하는 과목은 이딴 식으로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면서 성적은 잘 받고 싶은 때였다고 생각돼요. 노력은 하지 않고 좋은 결과만 바라던 삶의 습관이 아닐까 해요.
마음수련 명상도 한방에 다 버리고 싶은 욕심으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욕심을 먹는 순간 마음은 막힙니다. 그럴수록 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나이 순서대로 하나하나 떠올리면 됩니다. 그래도 뒤죽박죽 엉키면 또다시 나이 순서대로 되짚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말이죠. 이것이 반복되고 조금씩 버려지다 보면 원인이 알아지면서 그런 마음도 없어집니다. 노력보다는 결과를 먼저 바라던 삶을 집중적으로 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마음이 버려지면서 이런 삶의 태도도 버려지게 됩니다.
3. 분하고 억울해서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마음을 버리다 보면 어떤 사건에 확 꽂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너무 분한 사건이죠. 몸은 눈감고 앉아 있는데 마음은 과거의 사건 속에 들어가 그 인간들과 싸우고 있는 거죠. "니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하면서 말이죠. 명상이고 나발이고 싸우고 씩씩거리는데 몇 시간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건드리는 사람 하나 없는데 혼자 화가 올라와서 목이 벌겋게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만큼 해결되지 못한 억울한 감정이 많이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감정을 직시하기가 힘들어서 회피해봤자 언젠가는 복병처럼 나타날 마음입니다. 자다가 분해서 벌떡 일어나고, 꿈속에서 싸우다 깨게 되는 등 저도 많이 경험했죠. 저희 세대는 정말 많이 참고 살았거든요. 마음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고, 대신 참을 인자 셋이면 어쩌고 하면서 인내를 엄청 가르쳐댔죠.
감정이 많으면 감정에 매몰됩니다. 그 감정이 폭발하면 싸워도 병이 되고 안 싸우고 꾹 참으면 더 큰 병이 됩니다. 명상하며 나타나는 현상들은 모두가 공부거리입니다. 씩씩거리다가 다시 강의를 들으면 사람 마음이 어떤지를 정말 깨닫게 됩니다. "야~정말 그렇네. 사람이 참 우습게 살고 있구나." 그 다음 명상 시간에는 심기일전하여 다시 보게 되죠.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마음이 버려지고 이치가 알아지고 철이 드는 것입니다.
분하고 억울할수록 입장 전환이 필요합니다. 마음수련 명상은 그 방법을 가지고 있으며 끊임없이 일깨워 줍니다. 떠오르는 기억은 그저 영화 필름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무섭고 슬픈 영화가 웃기는 영화보다 감정의 소비가 많은 것처럼 조금 더 힘이 들뿐입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면 조금 쉬면서 전문가와 상담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말을 하다 보면 감정이 빠져나가기도 하고 자기 모습이 보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상담이나 조언으로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얻은 자기 마음의 힘이 아닙니다. 진정한 마음의 힘은 그 마음을 버려 비워진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담을 받아도 안되고 책을 봐도 안되며 유튜브로도 안 되는 이유입니다. 마음수련 명상을 자기가 해야하는 이유입니다.
4. 어지럽고 메스꺼워요, 감기 기운 있어요, 몸살이 나요, 두통이 생겨요, 잠이 쏟아져요
마음이 버려지다 보면 몸으로도 많은 변화가 옵니다. 이를 명현 반응이라 합니다. 그러나 명현 현상이라고 무조건 참고 견디면 안됩니다. 그런 어리석음은 명상과는 거리가 먼 마음입니다. 그건 자기 욕심을 이루려는 아집이지 명상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잠이 오면 자면 됩니다. 그만큼 힘이 들었던 것이니 쉬고 싶은 겁니다. 내버려 둬도 끝까지 주무시는 분은 없습니다. 명상을 하러 왔다는 사실은 본인이 제일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일어나 앉게 됩니다. 푹 쉬고나면 명상에 더 잘 집중하게 됩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물론 끝까지 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명상만 시작되면 꾸벅꾸벅 졸죠.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 습관처럼 몸에 밴 것이라 여겨집니다. 특히 정신과 질환을 가진 분들에게서 많이 보입니다. 자기 힘으로 감당이 안되어서 피하는 것이니 굳이 깨우고 괴롭힐 필요도 없습니다. 병원 치료를 받도록 도와주는 편이 낫지요.
그외 여기저기 아프다는 호소를 하기도 합니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기 마련입니다. 화를 많이 내면 간이 나빠지고, 생각이 많으면 위가 나빠지듯이 말이죠. 그렇듯이 마음이 빠져나가는 과정에서도 여러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몸으로 오는 현상은 병원에도 가서 치료를 받고 쉬기도 하고 전문가와 상담도 하면서 잘 달래어 가면 됩니다. 감기 기운 있으면 병원 가서 의사 선생님이 주는 약 먹고 쉬어야 합니다. 마음이 버려지면 더 건강해지고 언제 그랬냐 할 때가 분명히 옵니다. 아무런 증상 없이 평탄하게 가는 사람도 물론 아주 많습니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보편타당한 생활태도만으로도 고집과 만용과 허황한 욕심은 많이 버려집니다. 명상하는 과정의 모든 현상은 나를 돌아보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리고 명상하는 과정의 모든 언행도 나를 버려나가는 과정입니다.
5. 문제가 있을 때 전문가 대신 옆사람과 상담하면 망한다
문제가 있으면 꼭 안내해주는 도우미와 상담하라고 첫 시간부터 당부합니다. 그런데 같은 방 룸메이트나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더 귀담아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도우미에게 자기 속내를 얘기하는 것이 주저되기는 할 겁니다. 옆사람 얘기가 더 솔깃한 법이고요. 그러나 자기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 명상입니다. 그걸 이제 공부하는 사람에게 맡기면 곤란하죠. 그 사람도 자기 마음을 버리기도 바쁜데 남의 인생사 듣고 있으면 방해만 되기도 하고요.
학교 공부는 팀티칭이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눈높이가 같으니까 알아듣기가 쉽고 와닿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공부는 성질이 좀 다릅니다. 마음은 살아온 경험이 다른 만큼 버려지면서 겪는 것도 다 다릅니다. 남의 말을 듣고 흉내를 내거나, 나는 왜 그렇지 않나 비교하게 되면 삼천포로 빠지게 됩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충분히 알고 있는, 혹은 명상의 핵심을 잘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와 상담해야 합니다.
남의 조언에 기대고 쉽게 동화되는 것도 자기 삶의 모습입니다. 또래집단의 말이 더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기가 있었듯이 미성숙함의 징표일지도 모릅니다. 귀가 얇은 것은 그만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약한 것이기도 합니다. 또는 자기 성찰은 힘이 드니, 남의 얘기를 듣고 쉽게 답을 구하는 태도일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명상을 하면 아는 소리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자신의 참모습은 볼 수가 없게 됩니다.
명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못난 자기에게 속지 말고 바른 길을 걸어 모두가 행복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