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안 보신 분은 절대 절대 이 글을 읽지 마시라
대개의 갈매기들에게 중요한 것은 비행이 아니라 먹이다. 하지만 조나단에게 중요한 것은 먹이가 아니라 비행이었다. <갈매기의 꿈> 리처드 바크 / 현문미디어, 2015
반복되는 일상이 주는 안락함이 있다. 그 안정감 때문일지 사람은 변화를 싫어한다. 아니 변화를 두려워한다. 현실 속의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갈등은 항상 존재했고 인간은 수시로 불안했다. 속고 살 것인가, 아니면 알을 깨고 나갈 것인가.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그 불안한 빈틈을 놓치지 않는 것 같다.
영화 <트루먼 쇼> 소개
트루먼쇼 The Truman Show는 1998년 개봉되었다. 감독은 죽은 시인의 사회(1989)를 만든 피터위어다.
주인공 트루먼은 달에서도 보이는 거대한 세트장 씨헤이븐 Seahaven에서 삶을 시작한다. 세트장에서 본 하늘과 바다와 사람들이 그가 본 세상의 전부다. 그것이 세트장임을 꿈에도 모르는 트루먼의 일생을 중계한다는 설정이다.
영화의 시작은 트루먼 생후 10909일째부터다. 그는 30세의 보험회사 직원이다. 부모와 아내와 친구까지도 고용된 엑스트라다. 반복되는 일상은 각본이다. 내리는 비와 풍랑과 해와 달빛 내리는 바다와 행인과 사람들의 대화 하나까지 모두 가짜다. 그의 삶에 등장하는 상품은 광고다. 그리고 이 방송을 220개국 17억 인구가 5천대의 카메라로 지켜본다.
트루먼 버뱅크 Truman Burbank
방송국이 그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다. 방송 날짜에 맞춰 태어난 아기라는 것. 짐 캐리가 연기한 트루먼은 밝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그는 이웃들에게 늘 유쾌하게 인사했다. "굿모닝, 못 볼지도 모르니 미리 인사하죠. 굿 애프터눈, 굿이브닝, 굿나이트" 그리고 이것은 트루먼의 고별인사가 되기도 했다.
크리스토프 Christof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방송국, 221층의 루나 룸에서 트루먼쇼를 기획, 지휘한다. 크리스토프 역시 30년 동안 트루먼의 인생만 보고 생각하며 살아온 셈이다. 그에게는 트루먼이 곧 자신이고 전부다. "난 트루먼에게 특별한 삶을 살 기회를 줬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역겨운 곳이지. 씨헤이븐은 천국이야." 그는 이곳이 트루먼을 위한 천국이라 믿는다. 내 부모가 최선이라 생각하며 집과 가족과 인생을 나에게 던져주었듯이. 혹은 수많은 국가가, 사회가, 이념이, 제도가 그렇게 주어졌듯이.
자식에게는 집을 떠나는 것이 일생일대의 모험이었고 용기를 필요로 한 것이다. 부모는 떠나려는 자식을 불안해했고, 부모 손안에 있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 생각했으며 구속했다. 그러나 젊은 시절, 우리는 기꺼이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집을 떠나고 부모를 떠났다. 자유와 독립에 대한 갈망은 모든 두려움을 넘어서게 만들었다. 트루먼도 그렇게 크리스토프를 떠났다.
친구 말론 Marion, 어떤 순간에도 맥주 광고를 잊지 않았다
"널 위해 달리는 차에도 뛰어들 수 있어. 너한테만은 절대 거짓말 안 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믿어줘야 해. 난 널 속이지 않아.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라고 말했던 말론. 그러나 이 말조차도 크리스토프가 지시한 대사였다.
그는 친구가 절박했던 순간에도 맥주 광고를 잊지 않았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순응주의자였다. 말론도 괴로웠다. 그러나 끝내 진실을 말해주지는 못했다. 그에게 자유의지는 없었다.
사랑하지 않지만 아기를 갖자 말하는 아내, 메릴 버뱅크 Meryl Burbank
메릴은 말한다. 트루먼쇼는 곧 자신의 삶이며, 자신에게는 사생활과 사회생활의 구분이 없다고. 그리고 트루먼쇼가 담아내는 인생은 숭고하고 축복받은 것이라 믿고 있었다. 타인이 정리해주는 삶 속에서, 타인의 가치를 수용하며, 타인이 던져주는 감정을 연기하는 것이 그녀의 삶이다. 이름은 '트루먼쇼'지만 그녀는 진실에 무감각하다.
그녀가 가장 열성을 보인 일은 광고였다. 도대체 누구에게 말하는 거냐고 트루먼이 절규해도 메릴은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 나온 코코아를 마셔보겠냐며 광고를 한다. 트루먼이 모두를 의심하기 시작하자 " 더 이상 못해먹겠다." 고 실토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혹은 첫사랑에게, 혹은 신념에게, 또는 죽기 살기로 몰두하던 일을 내던지며 " 더 이상은 못해먹겠다"는 말을 내던지던 우리처럼 말이다.
실비아 Sylvia, 그에게 진실을 말한 유일한 사람
실비아는 캠퍼스에서 만난 트루먼의 첫사랑이다. 그녀는 방송국의 지시를 어긴다. 그리고 절규했다. "거짓말이야. 트루먼, 내 말을 믿어줘. 이것도 가짜야. 다 너 때문에 만든 거야. 이건 세트야, TV프로라고, 쇼란 말이야. 다들 널 보고 있어. 이 사람 얘기 듣지 마. 다 거짓말이야. 여기서 나와서 날 찾아." 그러나 방송국은 그녀를 정신분열증 환자로 몰며 강제로 차에 태워 가버린다.
트루먼은 여성잡지를 사서 실비아의 눈코입을 찾아 찢어낸다. 그가 탈출할 때 주머니 속에서 꺼내 든 것은 그렇게 만들어진 실비아의 얼굴이다. 세트장 너머에 있는 실비아가 그에게는 약속의 땅이고 희망이다. 실비아는 그의 자발적인 선택이었고 그들과 한 패가 아닌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방송
예능 프로에서 더러 '방송국 놈들'이라는 자조 섞인 자막이 나오곤 한다. 트루먼의 희로애락의 순간과 탄생과 죽음의 순간에 방송국 사람들, 그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당연히 시청률과 광고다.
트루먼이 죽을 수도 있지만 쇼의 성공을 위해 최악의 기상조건을 만든다. 엔지니어는 물론 망설였지만 곧 지시를 따른다. 지시에 따르면 죄책감이 면제된다.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아이히만의 탄원서는 이를 증명한다. 아이히만은 전범 재판에서 자신은 하수인에 불과하니 살려달라 호소했다. 가상의 삶을 지휘하는 방송국도 모순과 조작과 기만과 착각, 그리고 합리화로 가득 찬 세계다. 진실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트루먼의 삶을 소비했던 애청자들
그들은 트루먼과 함께 웃고 울고 응원하고 환호한다. 그러나 언제라도 채널을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관객이다. 언제라도 돌아서고 잊었던 우리처럼. 트루먼이 탈출에 성공하고 화면이 꺼지자 트루먼과 함께 환호하고 기뻐하던 사람들은 일상으로 복귀한다. " 다른 데는 뭐하지? TV가이드 어딨어?"
트루먼이 카메라를 피해 사라졌을 때였다. 엑스트라들이 총동원되어서 트루먼을 찾아 나섰다. 이빨을 드러낸 개를 끌고 가던 한 사나이는 말한다. "트루먼을 찾으면 꽉 물어버려!"
내가 소비할 것이 있으면 환호하지만, 나를 불편하게 하면 건드리는 너를 물어버린다. 돌변하고 물어뜯는 것, 쓰고 버리는 것, 흔히 겪는 일 아닌가? 타인은, 군중은, 대중은 이런 것이다. 정해진 얼굴이 없다. 익명이니까. 우리가 인정받고 싶고 확인받고 싶어하는, 두려워하고 의식하며 사는 타인의 시선은 이런 것이다.
트루먼은 그들과 미련 없이 작별했다. 우아하게.
"굿모닝, 못 볼지도 모르니 미리 인사하죠. 굿 애프터눈, 굿이브닝, 굿나이트"
의심하고 깨어나기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서 조명기구가 떨어지고, 바다에 빠져 죽은 아버지를 길거리에서 만나고, 규칙적인 일상을 벗어나면 갑자기 사고가 나며, 그가 돌발적인 행동을 하면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당황한다.
그가 여행을 떠나겠다고 말하자 TV 진행자는 갑자기 '집에 가는 길'이라는 고전 영화를 소개한다. 진행자는 말한다. "인생 공부차 집을 떠나려던 주인공은 사랑하는 존재와 집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죠. 웃음과 사랑, 슬픔과 고통이 가득한 고전을 통해 모든 시름을 잊어버리세요."
트루먼은 그의 삶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의심을 시작했을 때 비로소 퍼즐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곳곳의 카메라와 공모한 사람들과 한패거리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트루먼은 이곳을 떠나기로 한다. 피지행 비행기표를 구입하러 여행사에 갔다. 사무실에는 당신도 사고당할 수 있다는 협박용 포스터가 붙어있었으며, 비행기 티켓은 살 수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시카고행 버스를 탄다. 버스는 고장이 난다. 차를 몰고 나가면 도로가 막히고, 간신히 다리를 건넜는데 산불로 길이 막힌다. 원자력 누출사고까지 일으켜 기어이 그를 주저앉힌다. "상황종결" 이라는 단어가 모니터에 뜬다.
두려움 이겨내기
어린 트루먼이 마젤란처럼 모험을 하고 싶다 말하면 선생님은 "탐험할 땅이 없다."라고 가르쳤다. 바다 너머를 동경하자 물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줬다. 아버지가 풍랑에 휩쓸려 죽게 되고, 트루먼은 바닷물을 보면 벌벌 떨게 되었다.
그런 그에게 아내는 말한다.
"그 봐요. 떠나려니 두렵죠. 당신은 이 다리 못 건너요. 그만 보금자리로 돌아가요."
소설 <갈매기의 꿈>에서 갈매기 조나단이 현실에 굴복하는 대목이 있다. "다른 갈매기들과 똑같은 갈매기가 되겠다고 결심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이제 그를 배움으로 몰아 대던 힘과 아무런 관계도 없을 테고, 더 이상은 도전도 없고 실패도 없을 터였다. " 그러나 갈매기 조나단은 다시 비상했다. 그렇듯이 트루먼도 다리를 건넜고, 배를 타고 풍랑을 이겨냈으며, 세트장의 마지막 문을 열고 나갔다.
두려움은 수시로 나의 삶에 개입하는 장애물이다. 실체도 없는 허상이지만 우리 부모는 두려움에 도전하지 않고 굴복하길 원했다. 현실에 순응하고 주저앉으면 부모는 안심을 하였다.
자발적 탈출
살인적인 풍랑이 잦아들고 트루먼이 탄 보트는 거대한 세트장의 가장자리에 닿았다. 배가 부딪치자 하늘에 구멍이 났다. 트루먼은 절망과 분노로 고통스러워했으나 담담하게 수평선을 걸어 계단을 오른다.
출구에 다다른 그를 향해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크리스토프 : 트루먼, 얘기하게. 다 들리니까.
트루먼 : 누구죠?
크리스토프 : 난 수백만 명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프로를 만들지.
트루먼 : 난 누구죠?
크리스토프 : 자넨 스타야.
트루먼 : 전부 가짜였군요.
크리스토프 : 자넨 진짜야.
크리스토프 : 이 세상에는 진실이 없지만... 내가 만든 그곳은 다르지. 이 세상은 거짓말과... 속임수뿐이지만 내가 만든 세상에선... 두려워할 게 없어. 난 누구보다 자넬 잘 알아. 두렵지? 그래서 떠날 수 없지. 괜찮네. 다 이해해. 난 자네 인생을 지켜봤어.... 자넨 떠나지 못해. 자넨 여기 속해 있어. 내 세상에.
그러나 트루먼은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더 위험할 수도 있고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으며 불안하기 짝이 없는 미지의 세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루먼은 떠났다.
세트장 밖의 트루먼
세트장과 세트장 밖의 세상은 대비된다. 세트장은 안전하고 예견할 수 있는 사회다. 크리스토프의 지시를 거역하지만 않는다면 그의 말처럼 파라다이스일지도 모른다.
반면 세트장 밖으로 향한 문은 좁은 문이고 칠흑 같은 어둠의 문이다. 아무것도 알 수 없고, 불안하고 두렵기 짝이 없으며,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았고, 경험한 적이 없는 미지의 세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주는 공포감은 대단한 것이다. 깜깜한 시골길에서 불빛 없이 운전해보라.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데는 1초면 충분하다. 깜깜한 지하실 계단 앞에서 한걸음만 옮겨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지 아는 데는 한 걸음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질문한다. 세트장 밖의 트루먼은 행복했을까?
믿었던 실비아와 헤어졌을 수도 있고, 기자들 등쌀에 진저리를 쳤을 수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더 작은 섬으로 숨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트루먼에게는 자기의 삶이 생겼고 살아갈 이유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그 삶은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삶이며 스스로 성장하는 삶이다.
트루먼에게는 작은 불빛 하나, 실비아가 전부였다. 실비아는 True의 상징이다. 지금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면 그다음도 마찬가지다. 트루먼은 작은 불빛 하나를 찾아가는 기쁨을 배웠다. 그래서 세트장 밖의 트루먼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겪을지라도 당연히 행복했을 것이라 믿어진다. 인간다워지려고 했을 때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이니까, 인간으로 태어난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