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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담자 P Mar 19. 2020

내담자의 생각 '상담선생님이 내 맘을 진짜 이해할까?'

생각 많은 내담자의 심리상담일기

내담자들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을 거다.


'선생님이 내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실까? 경험하지 않아도 공감은 할 수 있다지만, 정말 내 상황이 되어보지 않는 한 모르실 거야.'


같은 공간에 마주 보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따로 노는 이런 느낌을 언제 느끼게 될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내 입장에서는 대략 이런 때였던 것 같다.



1) 아직 상담자와 내담자 간에 신뢰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단계일 때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마음이다.

'내 마음을 보여도 될까? 이해받을 수 있을까? 이 사람도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지 않을까? 상담 선생님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일까? 내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했다가 도리어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경계심, 불신, 외로움, 두려움 등이 한데 섞인 마음. '내 문제는 내가 처리해야 한다.' '남에게 기대어서는 안 된다'같은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굳어져버린 당위적 사고가 본드 역할을 한다. 그렇게, 한데 뭉쳐져 굳어진 딱딱하고 거칠어진 마음이 말랑말랑 부드러워지기까지는 꽤 시간이 필요했다.



2) 상담자를 지나치게 이상화하거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판단할 때


나는 너무 연약하고 서투르고 모르는 것 투성이인데, 내 앞에 앉은 상담자는 늘 침착하고 나보다 현명한 것 같고 대단히 전문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나는 문제 있는 사람, 선생님은 문제없이 완벽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선생님의 과거는 그래도 나보단 해피했을 거라고, 선생님은 절대 나 같은 일 겪은 적 없을 거라고 혼자서 착각하기도 한다. 


어제도 얘기했었다. 

"선생님이 상담자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래도 막연히 이렇게 생각할 때가 많았어요. '그래도 선생님은 상담자니까, 가족관계든 인간관계든 자녀 양육이든..., 삶의 여러 문제를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현명하게 대처할 거고 어려운 일들도 잘 이겨내시지 않았을까? 남들보단 걱정과 불안이 적지 않을까?' 이렇게요."

지금 다시 쓰면서 생각하는 건데 어제까지도 난 참 순진했구나. 오늘은 좀 더 똑똑해진 걸로 생각하자.



3) 내게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인데 선생님이 너무 가볍게/이성적으로 처리할 때

(언어적으로든, 비언어적으로든)

상담 선생님과의 관계에서는 경험을 해본 적이 많지 않아 예를 들긴 어렵지만,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이런 마음을 가진 순간은 아래와 같을 때였다.


* 언어적

- 그 사람의 경험과 판단으로 내 경험에 대해 마음대로 단정 짓는 것 같을 때

- 불편한 진실이나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을 갑작스럽게 직면시킬 때

- 그 말이 맞기는 한데, 너무 툭 던지듯이 말하거나 답을 내려버릴 때

- 공감 없이 상황을 분석하고 요약부터 하는 것

- 마음 알아주기 전에 해결책부터 내기


* 비언어적

- 건성으로 듣거나 딴짓을 하거나 지루하다는 표정

-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갸우뚱한 표정 또는 다른 세계의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

- 이해되는 듯이 끄덕이는데 '도저히 이해 안 된다'는 속마음이 비칠 때

(이해 안 되면 차라리 안 된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위에 분명히 말했음에도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상담 선생님이 저렇다고?" 

맹세코 절대 그렇지 않다. 그저 내가 그동안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며 이럴 때 서운했다는 예를 든 것뿐이다. 실제로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겪었던 건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을 갑작스럽게 직면한 것'. 이게 좀 타격이 컸고, 나머진 특별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파헤쳐보면 더 나오긴 하겠지만 지금은 크게 중요치 않다.)



요즘은 신뢰관계가 꽤 단단해진 편이고, 선생님은 언어적으로나 비언어적으로나 나에게 꽉 찬 공감을 보여주시기에 마음이 따로 논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나를 보는 선생님의 눈빛을 보면, 안타까움이 섞인 그 목소리를 들으면, 답답함이 가득 찬 동동거림과, 안도하는 한숨... 그런 걸 보면 그냥,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어떤 작은 서운함도 끼어들 틈 없이 꽉 안겨있는 그런 느낌이라서.


거기에 하나를 더 해보자면... 선생님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선생님이 해주시는 말씀에 대한 믿음이 좀 더 실리는 것 같다.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도 된다.


나는 어제 상담실에서 처음으로 울고 싶은 만큼 충분히 울 수 있었다. (사실 울었다기보다 질질 짰다) 어쨌든 그것 또한 '여기서는 울어도 돼.', '선생님 앞에서는 울어도 괜찮아. 선생님은 그런 내 마음까지라도 다 이해해주실 거야.' 이런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 같아서 내게는 꽤 의미 있는 회기였다. 물론, 울고 나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버려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는 느낌이었지만.


202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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