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공모했던 우울증 극복수기 내용을 브런치에도 올립니다. 분량이 꽤 기니 천천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정신과에 갈 거라고는, 그리고 심리상담을 받게 될 거라고는 평생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정신과 진료나 심리상담은 상태가 엄청 심각한 사람들이나 받는 거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 정도로 심각한 사람은 아니라고 여겼다.
사실 살면서 힘든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다. 예민하고 여린 성격이라 다른 사람들이 툭 던지는 말에도 혼자서 속앓이를 하며 아파했다. 감당하기 힘든 사건이 닥칠 때면 내 마음은 한없이 무너지곤 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나는 나를 질책하고 다그쳤다.
'남들도 그 정도 일은 다 겪어. 더 이 악물고 버텨. 그렇게 약해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려고 그래?’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우울하고 속상한 감정에 빠져 있는 내 모습이 의지박약인 것처럼 느껴졌다. '일이 바쁠 땐 우울도 사치야.' 그렇게 내 감정들을 업무의 방해물 정도로 취급하고 무시해버렸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주룩주룩 흐를 땐,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며 얼른 잠을 청하곤 했다.
생각해보면 난 늘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무게를 짊어져왔다. 어렸을 때부터 일찍 철이 들어서 떼를 쓰거나 투정을 부리지 않고 늘 엄마 말에 고분고분 따랐다. 나 때문에 엄마가 더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일을 하면서 우리를 키우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늘 고달프게 사는 엄마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부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악착같이 공부를 했다.
중고등학생 때부터는 후배나 동생들을 열심히 챙기고 보살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그렇게 해서 그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도 늘 친구와 후배들의 고민상담을 들어주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도움이 되어야... 그들과 오래오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반응이나 감정에 민감해졌다. 사람들이 내게 보이는 태도와 반응에 따라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변하곤 했다. 그 안에 '나'는 없었다. 내 선택도, 나에 대한 존중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타인의 세계'라는 사막에서 '인정'이라는 오아시스를 찾아 비틀거리며 오랫동안을 헤매었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고부터는 회사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힘썼다. 밤낮없이 늘 일에 몰두해서 지냈고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워커홀릭이었다. 출퇴근을 하면서도 늘 스마트폰을 붙잡고 업무에 도움이 되는 글들을 읽기 바빴다. 충분한 잠이나 휴식, 취미생활은 나에게 사치였다. ‘그럴 시간에 다른 일을 하나라도 더 끝내는 게 낫지!’ 라는 생각이었다.
주말이면 여러가지 모임을 열어서 많은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이 즐겁게 모임에 참여하고 돌아갈 때면 그렇게 마음이 뿌듯하고 기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고 나를 필요로 하는 게 너무 기뻤다.
맡겨진 일도 잘 해내고 주변 사람들까지 잘 챙기다보니 늘 평판이 좋았고 내 주변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눈 앞의 일만을, 내 곁의 사람들만을 전부로 여기며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갔다.
그래도 나름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알뜰살뜰 돌보면서도 정작 나를 돌볼 줄은 몰랐다. 휴식을 뒤로한 채 스스로를 끝없이 몰아붙여왔기에 달리는 나를 멈추는 방법도 몰랐다.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소진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두통이 찾아왔다. 몸이 안 좋은가 싶어 며칠 잠을 늘려보았지만 두통은 계속 이어졌다. 깨질 듯한 통증으로 도저히 견디기가 힘든 날에도 책임감으로 버텨서 겨우 겨우 업무를 마치곤 했다. 급기야 현기증까지 나타났다. 점점 어지러움이 심해져서 계단을 걷다가 넘어질 뻔한 적도 여러 번이었고 나중에는 가볍게 걷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내 몸에 문제가 있다, 확인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어 부랴부랴 신경과를 찾았고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혈액 수치도 정상이었다. 의사선생님은 마음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으니 스트레스를 좀 줄여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내가 맡고 있는 여러가지 일을 내려놓을 수 없으니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진통제를 먹으며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언제부턴가는 일요일 밤만 되면 몸에 열이 오르고 온 몸이 무겁게 추욱 늘어졌다. 어떻게든 출근해보려고 해도 도저히 몸이 가눠지지 않았다. 월요일 결근이 잦아졌고 근태는 점점 나빠졌다. 때로는 퇴근 길에 속이 미식거려 구토를 하기도 했다. 진통제를 먹으면 두통과 현기증은 조금 나아졌지만 뚝뚝 떨어져가는 의욕은 잡을 수가 없었다. 모두들 바쁘게 일하는 사무실에서 나 혼자만 멈춰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
"나 이제 어떻게 해... 나 이제 여기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그저 눈물만 줄줄 흘렸다.
일은 해야 하는데 의욕은 없는 매일매일이 계속됐다.
‘내가 책임지고 있는 일도 많고 당장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하지? 혹시 사람들이 내가 우울증인 걸 알게 되면 어쩌지?’
내 상태를 들킬까봐 두려운 마음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아무와도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고 누구도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지인들의 연락에도 답장을 하지 않고 핑계를 대서 모임에도 불참했다. 이전처럼 남들의 기분을 맞춰주며 함께 웃고 떠들 자신이 없었다.
사람들은 달라진 나의 태도에 걱정과 함께 서운함을 표했다. “요즘 왜 그래. 뭐가 많이 힘들어? 너 원래 안 그랬잖아. 낯설다. 빨리 예전처럼 돌아와줘.”
예전과는 너무나도 달라진 내 모습에 나조차도 혼란스러웠다. ‘원래 내가 사람을 싫어하는 성격이었나? 지금의 내가 진짜일까? 아니면 과거의 내가 진짜일까?’ 온갖 의문 속에 인터넷에 이리저리 검색을 해보다가 발견한 단어, '번아웃 증후군'.
증상을 찾아보니 지금의 내 상태와 거의 일치했다. 그제서야 신경과 의사의 말이 떠올랐고 나의 지난 날을 돌아보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다. 늘 나를 다그치고 더 열심히 하라고 재촉하기만 했다. ‘마음을 돌봐주지 못하니 참다 못해 몸의 통증으로 소리를 친 건 아닐까?’내 마음에게 많이 미안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마음의 상태를 제대로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단순히 진통제를 먹어서 되는 게 아니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던 날, 병원 간판이 보일 때부터 심장이 엄청 뛰었다. 의사 선생님은 물어보셨다. "어떤 게 힘들어서 오셨을까요?"
뭐부터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매사 노력하면서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다 지치고 무기력해져서... 그래서 왔어요. 하고 있는 일도, 맡고 있는 책임도 너무 많은데 이제는 다 내려놓고 싶어요. 그냥 누워만 있고 싶어요."
정신과 의사는 심리검사 결과지를 보며 만성우울과 불안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항우울제를 처방받고 씁쓸한 마음으로 병원을 나왔다. 내 상태를 알고 싶어 찾았던 병원이었지만 막상 진단명을 듣고나니 마음이 한없이 속상해졌다. 진작 나를 잘 돌봤으면 이 지경까진 안 왔을텐데 그동안 스스로에 대해서 너무 맘대로 지레짐작을 해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이 우울하고 지쳐가는데도 그걸 부정하려 애썼다. 쇼핑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풀면 될 줄 알았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전문가를 찾아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게 너무 어리석게 느껴졌다.
그래도 부모님께는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았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엄마는 상당한 충격을 받으셨다.
“왜 굳이 그런 약까지 먹니? 일상 속에서 감사한 일을 찾으면 우울할 틈이 없어.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해봐.”
예상은 했지만 엄마의 반응을 막상 듣고 나니 마음이 너무 슬퍼서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엄마에게 이런 말이 듣고 싶었다. '그동안 참고 지내느라 애썼어.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니?' 나를 포근히 안아주는 말. 얼마나 아팠냐고 물어봐주는 말. 그게 필요했다.
방으로 돌아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울었다. 정말로 사무치게 외로운 밤이었다.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도 어려웠다. 이야기한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늘 밝고 활기차고 열정 넘치던 내가 갑자기 무기력해져서는 모든 걸 내려놓으려 한다는 것 자체가 당황스럽게 느껴질 테니까.
실제로 사람들은 내가 원래의 모습으로 어서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나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했다. 이미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결국 사람들을 더 멀리하게 되었고 내 힘든 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힘든 순간이 찾아왔다. 모든 걸 다 포기하고 퇴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도저히 나 혼자서는 이 불안과 우울, 무기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이 마음을 누군가에게 빨리 털어놓고 제발 어떤 도움이라도 받고 싶었다. 절박한 마음으로 회사 근처 심리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내 상태를 설명한 후 가장 빠른 날짜로 예약을 잡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막상 당일이 되자 마음이 너무 떨리고 초조해졌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반대로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마음을 알아준 적이 별로 없었다.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나의 고민이나 속마음은 아예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낯선 상담자에게 내 얘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왔으니...몸도 마음도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 마디, 두 마디 말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과 외롭고 슬펐던 순간들을 선생님 앞에 와르르 쏟아놓았다.
그 이후의 상담에서도 나는 참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내 안에 쌓아둔게 이렇게나 많았나 싶을 정도였다. 상담실에서 나는 말과 표정과 눈빛과 온 몸으로 내 이야기를 토해냈다. 선생님은 내 말 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몸짓까지 들어주시고 바라봐주셨다. 긴장해서 움츠러든 목과 어깨, 자꾸만 빨라지는 호흡, 이리저리 흔들리는 불안한 시선, 울음이 터질까봐 앙다무는 입술까지.
내가 살아온 삶과 그 속에 켜켜이 녹아든 아픔, 그리고 그 아픔을 이제야 토해내는 '오늘의 나'까지도 선생님은 공감 어린 따뜻한 시선으로 묵묵히 바라봐주셨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힘들게 할까봐, 나를 귀찮아할까봐 그동안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모든 이야기를 특별하게 여겨주시며 정성껏 귀담아 들어주셨다. 그렇게 내 안에 가지고 있던 무거운 것들을 50여분 동안 풀어내고 비워내면 마음에 생긴 틈으로는 산들산들 바람이 불어오고, 곧이어 마음 속 비워진 자리에는 낯설지만 기분 좋은 행복감이 차올랐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는 그대로 이해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위로를 주는지를 처음으로 느꼈다.
생각해보면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힘들 때 내 손을 잡아줄 사람, 내 편이 되어줄 사람, 내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기울여줄 사람 말이다. 철저히 혼자가 된 시점에 심리상담을 시작하고 선생님을 만났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졌다.
상담을 받으면서 알게 된 것인데, 내 안에는 “해야 돼"와 "그러면 안 돼"라는 원칙이 참 많았다. “사람들에게 네가 먼저 배려해야 해,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해, 쉬면 안 돼, 잘해야 돼, 완벽해야 돼” 그런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둔 채로 참기만 하면서 살아온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 불쌍해서 참 많이 울었다.
계속 상담을 이어나가면서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애쓰고 노력하며 살았는지도 되돌아보게 됐다. 그냥... 사랑이 부족해서였다. 엄마, 아빠에게 내가 원하는만큼 충분히 사랑을 받지 못해서, 그래서 그랬던 거였다. 사랑받고 싶어서 아등바등했을, 어리고 조그맣던 '과거의 나'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 어릴 적의 나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건넸다.
"너 정말 많이 힘들었겠다. 이제야 내가 토닥토닥해주네. 미안해. 너 그동안 많이 아팠는데 너무 늦게 알아서 미안해." 말을 하면서도 눈물이 너무 많이 났다. 한번도 하지 못했던 나 자신과의 화해를 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시간을 가지고 나니 지금의 나에게 조금이라도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를 사랑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됐다. 일단 선생님께 약속한 대로 나를 위한 선물을 하루에 하나씩 주기 위해 노력했다. 직장동료와 카페에 가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셔보기도 했다. 이전에는 거의 안 했던 일이다. 용기 내서 아빠와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아빠와 단둘이 외출은 거의 20년만이었다. 휴일을 나를 위한 시간으로 온전히 사용하기도 했다.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약을 먹고 상담을 시작했으니 한두 달 정도면 깨끗하게 나을 줄 알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여러가지 종류의 항우울제 중에서 나에게 맞는 약을 찾는 과정부터가 쉽지 않았다. 부작용이 나타나서 두통과 현기증이 더 심해지거나, 견딜 수 없이 졸음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에게 맞는 약을 찾아나갔다. 알람 설정까지 해가며 약을 꾸준히 챙겨 먹었고, 심리 상담도 매주 열심히 받았다. 낫게만 해준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절박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무기력과 우울은 여전히 나와 함께였다. 흩날리는 벚꽃을 봐도 아무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웃으려 해도 웃음조차 나지 않아 회사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억지로 미소 짓는 연습을 하곤 했다. 기쁨이나 행복이라는 감정은 어느새 사라진 것 같았다. 그런 나를 볼 때마다 불안하고 초조했다. 남들은 총천연색 세상을 보는 것 같은데 내 세상만 점점 흑백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이대로 영영 이런 삶을 살게 될까 봐 무서웠다.
잠자리에 들기 전 간절히 기도하곤 했다. "제발 내일은 무기력하지 않게 해주세요. 제발 빨리 나아지게 해주세요." 어떻게든 이 무기력과 우울을 극복하고 원래대로, 정상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내 기대만큼 빨리 좋아지지 않는 것 같아서 많이 속상하고 답답했다.
어느 날 나는 상담선생님께 그런 마음을 털어놓았다. “제가 너무 지지부진한 것 같고 이런 제 모습이 싫어요. 빨리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하셨다.
“지금까지 지지부진해본 적 없으시죠? 그렇게 최선을 다 해서 살아왔으니 지지부진함을 이렇게 겪어보는 것도 소중한 경험일 거예요. 이 지지부진함을 삶의 한 색깔로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봐요. 지지부진함을 마음껏, 얼마든지 보여주셔도 괜찮아요.”
'늘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 어딘가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라는 원칙을 가지고 살아왔던 내게 선생님의 말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렇구나. 지지부진해도 되는 거구나.'
단단했던 내 생각이 깨지고 난 후, 이상하게도 좀 더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이후부터 내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면 스스로에게 이야기했다. “그럴 수도 있지. 좀 느릴 수도 있지.” 선생님에게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받고 이해받으면서 나도 나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었다.
늘 억누르기만 했던 감정도 상담실에서 조금씩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슬픔, 속상함,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타인에게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배우며 자라왔다.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힘든 티를 전혀 내지 않고 늘 씩씩하고 밝게 지내왔지만 속은 썩어 들어갔다.
마음이 힘들고 괴로울 때도 맘 놓고 울 곳이 없어서 차들이 쌩쌩 달리는 대로변 옆을 걸으며 엉엉 울곤 했다. 그러다가도 집이 가까워져 오면 거짓말처럼 눈물이 멈췄다.
'울면 안 돼. 우는 모습을 보이면 안 돼.'
그래서일까, 상담을 받으면서도 눈물이 날 때면 서둘러 닦아내고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 상담 선생님은 이렇게 말해주셨다.
"급하게 가지 말고 지금 이 감정에 머물러봐요, 우리."
그 말이 정말 좋았다. 마음이 편안해져서 좀 더 울고 싶은 만큼 울 수 있었다. 눈물을 흘린 후에 이렇게 마음이 편안하고 새하얘질 수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눈물이 날 때, 슬픔을 삼키지 않고 맘껏 울 수 있게 되면서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고 자유로워졌다.
상담이 깊어져가며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도 하나씩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원칙을 나에게 적용했었다.
"뭐든지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해. 잘 해야 해. 사람들을 실망시키면 관계가 끝날지도 몰라.", "항상 꿋꿋하고 강인해야 해.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돼.", "힘든 감정을 드러내서 걱정을 끼치는 건 소중한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일이야."
신기하게도 상담 선생님은 항상 내 말과는 반대로 이야기하셨다.
“꼭 어떤 변화나 성과가 없었어도 괜찮아요. 그냥 편하게 오세요.”, “아플 때도 있고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함께 걸어가 봐요.”, “지금 이대로도 OO씨는 충분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요.”
선생님은 여러 가지 수많은 다른 표현으로 중요한 부분들을 반복적으로 알려주셨다.
처음에는 나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게 너무 힘들고 막막했다. 너무 오래도록 '변화, 개선, 성장'만을 추구하며 살았던 나라서, '이대로도 괜찮다'는 생각이 낯설었던 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가지고 있었던 단단하고 완고한 기준들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게 느껴졌다.
지나치게 높게 설정했던 기준들을 덜어내고 나니, 나는 있는 그대로도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굳이 더 몰아붙이고 채찍질하면서까지 더 나아지길 강요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되면서 하루하루가 훨씬 더 편안해졌다.
모니터 옆에 이부러 이런 글귀를 붙여두기도 했다. “실수해도 괜찮아. 조금 서툴러도 괜찮고, 느려도 괜찮아.”, “오늘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대로 품어안아주자. 하루 아침에 좋아질 수 없는 게 당연해. 벽돌을 쌓아올리듯 천천히 가는 거야.” 예전의 나라면 이런 생각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힘든 일이 닥쳐도,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방식으로 생각을 하게 된 것도 큰 변화이다. 나는 항상 미리부터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조바심을 치곤 했다. 하던 일이 조금만 막히고 꼬여도, 일이 완전히 망할 것 같다는 생각에 불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사소한 일이라도 내 기대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속상해졌다. 삶이 행복할리 없었다.
상담을 통해 내 사고의 흐름을 선생님과 함께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게 되면서, 그런 생각이 들 때, 잠깐 멈춰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힘이 조금씩 생겼다. 마음의 근육이 길러지고 나니, 그 생각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버티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생각들을 의식적으로 내몰게 되었다. 덕분에 요즘은 힘든 일이 닥쳐도,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방식으로 생각을 하려고 한다. 이런 변화가 그저 놀랍기만 하다.
흑백이었던 세상이 다시금 색으로 조금씩 물들고, 어두웠던 방 안에 작은 촛불이 하나씩 켜졌다. 때때로 우울하고 무기력한 순간들이 찾아오지만 그런 내 모습을 답답해하며 질책하지 않고,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라며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나 자신에게 과도하게 높은 기준을 강요하며 채찍질하기 바빴다. 자기 비하도 정말 많이 했다. 서투르고 약해빠진 내 모습이 보이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연약한 모습마저도 좀 더 있는 그대로 품어줄 수 있는 관대함이 생겼다.
일상 속에서도 내 마음의 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마음이 아프고 속상할 때는 스스로를 다그치기보다 따뜻한 위로를 건네게 됐다. 휴식과 여유가 왜 필요한지를 조금 더 알게 됐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 스스로에게 여러 가지 선물을 하거나 재미있는 일을 찾아서 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고 익숙한 것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낯선 일들이기에 이것이 매우 의미 있고 소중한 변화다.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연습, 그리고 내 마음을 상대에게 표현하는 법을 점차 익혀나가면서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조금씩 내 속마음과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서운하고 힘들었던 부분들을 이야기하자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이 많이 놀라고 당황하기도 해서 죄책감이 들었다. 내 마음을 이야기해서 조용한 호수에 돌을 던지고 괜히 더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를 해보니 정말 많은 게 바뀌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이 내게 진심으로 사과를 했고, 가까운 사람들도 이제는 내 맘을 조금 더 알아준다. 늘 나에게 강인하고 초연할 것을 기대했던 엄마조차도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었다.
“네가 참 많이 힘들었겠다. 엄마가 정말 미안해. 네 마음 몰라줘서 너무 미안해.”
사실 '남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나를 먼저 바꿔라'라는 말을 알긴 했지만 그 말은 내게 너무 매정하게만 들렸다. 그동안은 타인에 대한 원망의 마음만 컸고, 타인이 먼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길 바랐다. 하지만 내가 용기를 내서 조금 다른 시도를 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고, 가족관계도 훨씬 화목해졌다. 이렇게 주변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 우울증의 극복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벽돌을 다시 쌓아올려가다보니 다른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내 모습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칭찬을 건네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챙겨주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적극적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지금은 이전과 달리 힘들거나 원망스럽지 않다. 즐겁고 기쁘다. 왜냐하면 그 누구보다 나를 먼저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에도 의무감이나 책임감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지를 먼저 물어봐주게 되었다.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고 나를 좀 더 믿어주게 된 것이다.
'누군가를 돕거나 그를 기쁘게 하는 일'.
겉으로 보기에는 같아 보일지 몰라도 그 일을 내가 진정으로 원해서 하는지, 반대로 해야만 해서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하는지에 따라 내가 느끼는 감정은 판이하게 달랐다. '내가 진정으로 원해서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일'은 내게 큰 기쁨을 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를 돌보지 않은 채 의무감으로 타인을 사랑하면 소진되기 쉽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나는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너무 벅찬 삶을 살아왔고, 나 자신은 정작 뒷전으로 여겼다. 사실은 사랑이 너무 필요했던 거다. 그래서 사랑받고 싶은 만큼 누군가에게 베풀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랑이 언젠가는 내게도 언젠가 돌아오길 바라면서.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기대하기 전에, 내가 나를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사랑해줘야 하는 거였다. 그걸 놓쳤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외로웠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중요한 건, 누구와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내가 나일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나를 감추고 숨기고 좋은 모습만 보이려 하면 사람들도 나의 힘듦을 모르고, 나조차도 나를 돌보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른 사람의 기준에 따라 맞춰진 삶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삶을 살게 된 것 또한 내가 받은 귀중한 선물 중 하나이다.
심리상담을 받고 약물치료를 한다고 해서 짧은 기간에 엄청난 변화가 나타나거나 한 순간에 우울증이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겠다는, 결코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내가 지금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각자의 마음 안에 떠오르는 답이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을 조금만 알아주자.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도 팍팍한 세상에, 나라도 나를 아껴주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날 돌봐주겠는가.
다른 누구에게 맡기지 말고,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좋으니 나를 아낀다는 제스처를 취해보자. 우울증의 극복은 그 태도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를 소중하게 대해주는 것, 나답게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 꿈꿔보는 것. 그것부터 해보자.
지금 우울하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우울할 거라는 건 내 착각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불행하다고 해서 앞으로도 평생 불행하리라는 법은 없다.
어떤 진단이 내려진다고 하더라도 그게 부끄러운 일은 절대 아니다. 천식이나 당뇨가 있다고 해서 환자가 자신을 자책하지는 않는다. 몸에 대해서 관대하듯, 마음에 대해서도 좀 더 관대할 필요가 있다.
마음 상태가 너무 심각하게 나빠지기 전에, 전문가에게 적절한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 몸의 건강이 소중하듯이, 마음의 건강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유없이 자꾸만 우울하고 무기력해진다면, 분명 마음이 당신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 메시지를 너무 늦게 읽지 않길 바란다.
마음은 외치고 있는 거다. 당신은 이대로 그렇게 참고 지내면 안 된다고, 당신에겐 지금 뭔가가 꼭 필요하다고.
그게 휴식이든, 자유든, 독립이든, 상처받은 마음의 치유이든, 울고 싶은 만큼 울어보는 경험이든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