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불안은 안녕하세요?
1년 전 한 식구가 된 아기고양이가 이젠 자기표현을 잘하는 성묘가 되었다. 작년 이맘때 온몸이 똥범벅이 되어 처음 만났을 때의 어리둥절하던 눈빛은 온 데 간데없고 이젠 여유와 자신감이 서려있다. 스스로 존중받을 수 있게 잘 자라준 고양이가 기특하기만 하다.
사람의 육아를 동물에 비교하는 것이 좀 어색할지도 모르겠지만 개나 고양이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영아에서 사춘기를 거쳐 성견, 성묘가 되는 발달과정을 겪는다. 다만 인간에 비해 6~7배 빠를 뿐이다. 육아에 고양이를 예로 든 이유는 집고양이를 통해서 짧은 시간 동안에 아기 때부터 어른이 된 과정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는 온 정성을 다해서 매일 손에 때를 묻혀가며 돌보는 스타일은 아니다. 아이를 키울 때와 마찬가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식이라고나 할까. 혼자 있고 싶어 할 때 내버려 두고, 싫다는 표현을 했을 때 그 표현을 온전히 받아들여주고, 말을 걸어오면 재미나게 놀아주고, 잘 때와 쉴 때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원하는 영역을 존중해 줬을 뿐 별다른 돌봄을 하지는 않았다.
이 고양이는 자기보다 몸집이 20배나 되는 맹견이 놀러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킬 줄 알고, 낯선 사람들이 만져도 기꺼이 얼굴을 내어주며 '고롱고롱고롱' 좋다는 반응도 잘해준다. 어느 상황에서도 움츠려 들지 않고, 위협을 느낄 때만 조용히 관찰모드로 전환해서 자기를 보호한다. 이 고양이를 만나본 사람들은 말한다. "얘는 무슨 자신감이야? " 그리고 이내 따라붙는 말은 "사람도 이런 성격이면 함께 사는 게 별로 안 힘들겠어." 자신이 충분히 믿을만한 환경에 있음을 아는 녀석인게 분명하다.
사람 아이들에게도 안전하게 믿을 수 있는 구석이 필요하다. 그게 가정의 역할이고 그 가정을 이룬 부모의 존재이다. 그런데 그 믿는 대상이 아이의 세계를 침범해서 자꾸 뭔가를 먼저 해주면 아이들은 오히려 긴장을 하게 되고 부모를 믿기는 커녕 뭔가를 책임져야 된다는 책임 강박이 생긴다. 그 긴장감(텐션)은 공격적으로 발산되기도 하고, 생각에 에너지를 뺏겨 오히려 무기력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이런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라면 최선을 다해 뭔가를 해 줬음에도 아이로부터 기대하는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더 해야 하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뭔가를 해 주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툴 때 자신이 상대를 위해 해 준 것들을 나열하기도 한다. 물론 부모로서는 아이의 생존에 필요한 것들은 꼭 해줘야 한다. 하지만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아이가 구축해 가고자 하는 자기만의 세계를 형성해가고 있을 시기에는 그 세계에 함부로 들어가서 아이에게 부모의 세계를 심어버리면 안 된다.
그렇지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안 하는 것'은 '뭔가를 해주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자녀가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부모가 앞서서 뭔가를 해주는 것은 부모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기 위한 선택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아이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게 왜 그렇게 어렵고 불안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