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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lturing me Jan 11. 2022

이유 있는 언행 불일치  

본인이 생각하는 자기와 남에게 비치는 자기의 간격

인정사정없이 시간이 흘러 새해가 되었다. 어릴 적 공상과학영화의 시간 설정으로 여겨졌을 법한 숫자 2022.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역사, 문화 그리고 주변의 환경 등 거의 모든 게 변해가지만 한 인간의 내면은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정직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엄마는 아이에게 정직함을 최우선으로 교육을 시킨다.  하지만 마트에서 계산되지 않은 초콜릿 하나가 쇼핑백에 담기는 것을 보고도 그냥 넘어간다면 이는 언행의 불일치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 남에게 정직함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신을 충분히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인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을 되돌아보고 교정하는 노력이 없으면, 의식과 무의식의 간격은 점점  벌어지게 된다.  의식과 무의식의 갭이 좁아지면 타인에 대해 지나친 비난이나 평가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폭이 넓기 때문에 타인을 보는 시선도 여유 있고 넓어지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거울을  때의 얼굴과 무의식 중에 남에게 찍힌 사진을 비교해본 경험이 있다면 같은 사람의 전혀 다른 표정을  것이다.


우리는 말을 통해 나오는 생각을 자신의 진실로 믿고 살지만, 그 사람의 본모습은 그것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이다. 그래서 의식과 무의식의 간격이 클수록 언행의 불일치가 생긴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그것이 고쳐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언행불일치는 쉽게 바로잡히지 않는다.  의식과 무의식의 갭이 클수록 본인이 생각하는 자기와 남에게 보이는 자기가 다른데,  안타깝게도 본인은 그것을 알기 어렵다. 그렇다면 그 갭이 얼마나 큰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본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수치심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수치심은 모두에게 있는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수치심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수치심을 회피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수치심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높은 잣대를 들이댐과 동시에 남에게도 높은 기대를 한다. 그래서 그에 미치지 못할 경우 상대를 비난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잠시 자신이 수치심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가짜 생존기술'로는 원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뿐 아니라 불안과 우울 혹은 냉담함이 마음을 지배한다.


그렇다면 도저히 혼자서는 탈출이 불가능한 수치심의 그물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학자들은 수치심을 드러내라고 말한다.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 수치심 앞에서 진실해져야 하고, 진실해지기 위해선 용기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나약한 우리는 자신에게 조차 진실할 용기를 내지 못해서  탓으로 왜곡해서 기억을 저장해버리는데 익숙하다. 느껴지는대로 공감할  있다면 수치스러운 상황에서도 진실해질  있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수치심은 사라질  있다.


만일 공감이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면 자신의 수치심을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진실한 공감은, 자신에게 용감할 때만 따뜻한 변화를 가져다준다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 의식과 무의식이 일치해가는 본연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2022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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