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을 맞춰야 관계가 완성된다.
제발 ‘공감’ 좀 해주세요~.
실컷 얘기했는데, 공감받았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뒷골이 당겨 잠을 못 이룰 때가 있다. “젠장... 괜히 말했어”
제발... 아무한테나 '공감'을 기대하지 말자. 그거야말로 본인이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다.
마음을 속 시원히 털어놓을 상대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만큼 남의 마음을 잘 공감해 준다는 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마음속의 찌꺼기를 쑥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 같은 것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본 적도 있다. 그렇다면 공감받지 못해 슬퍼할 사람도 없을 테니까.
‘사랑 어린 공감' 만큼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는 강력한 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감을 잘 받지 못하면 섭섭한 감정 뒤에 은근히 화가 난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공감을 잘해줘 고맙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본인의 상황에 공감을 못해준다고 섭섭해하기도 한다. 공감을 못해줬던 경우는 상상이 안 되는 상황이라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미안해. 잘 모르겠어.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차라리 공감이 안되면 시끄러운 꽹과리가 되느니 침묵을 선택하자.
‘Empathy'라고 하는 '공감'. 어떻게 하는 걸까?
공감은 맞장구쳐주고 상대의 말에 빈 마음으로 호응을 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상대의 말소리를 들어주는 것이다. 물론, 들어줄 대상이 필요한 사람에겐 가만히 들어주기만 해도 많은 부분 해소가 된다. 하지만, 진정한 공감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상대방의 마음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따라서 공감을 잘 못하는 사람을 둔하다고 표현하기보다 자신의 경험 세계가 제한 적여서 감정이입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삶의 연륜과 경험이 다양한 사람, 교우관계가 넓은 사람, 그리고 마음이 자유롭고 건강한 사람이 공감을 훨씬 잘한다. 공감하는 것이 사람에 따라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이유도 이것이다. 자신이 처해보지 않은 상황을 공감해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우울증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우울이 얼마나 힘든 감정인지 알기 어려운 것과 같다. 그래서 우울증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 우울증의 바닥에 있는 사람에게 긍정적 마인드로 극복해보라고 조언한다면 '공감 제로'인 사람으로 취급받기 쉽다.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은 느낄 수 없기 때문에 공감은 감수성 훈련을 통해서 발달시켜야 한다. 그러나 건강한 방식으로 잘 노는 사람, 삶의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 특히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은 일반 사람보다 공감을 훨씬 잘한다. 이들의 내면은 단절되어 있지 않고 잘 순환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의 마음을 무한히 받아들여 줄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래서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고 슬픈 사람들이 "네 마음도 내 마음처럼 힘드니?”라는 주파수를 보내면 공감을 잘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내 마음인지 남의 마음인지 자신의 경계를 짓지 못하는 사람은 남의 집에 들어가 서랍까지 막 휘젓고 다니는 것처럼 남의 마음을 휘젓는다. 그들은 작은 외부의 변화에도 파장을 일으키며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에 마음에 힘을 꽉 주고 살아간다. 힘이 들어가 있는 마음은 자신과는 다른 처지를 공감해 줄 수 있는 에너지가 없다. 그래서 소화시킬 수 없는 다른 감정이 마음에 들어오면 불편해 견딜 수가 없다. 쨍그랑 쨍그랑 마음속에서 난리가 난다. 그래서 빨리 체한 마음을 토해낼 다른 이를 찾는다. 이것이 공감받으려 털어놓은 말이 이내 소문의 근원지가 되는 이유이다.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마음을 잡는데 에너지를 다 쓰기 때문에 상대방을 공감해줄 힘이 없다. 공감은, 건강한 에너지로 상대와 스텝을 밟으며 탱고를 추는 것과 같다. 인간의 오묘한 마음은 부드럽게 리듬을 타는 순간 활짝 꽃을 피운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실컷 뛰놀며 즐거운 시간을 충분히 보냈다면 그만큼 건강한 성인이 된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우리는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사느라 노는 것을 잊어버린다. 놀 줄 모르는 성인이 되어버린 우리는 어디서 즐거움을 찾고 있나? 술, 컴퓨터 게임, 드라마, 쇼핑, 자녀교육의 집착적 몰입??? 대한민국의 어른들은 정말 놀 줄 모른다. 건강한 놀이를 하며 자기의 창조적 에너지 발현할 줄 모르는 성인이 되었으니 일반적인 관계는 물론이고, 아이들의 마음을 공감해 주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뽀로로’는 부모보다 아이들을 더 밝게 웃을 수 있게 해 준다. 뽀로로는 친구들도 많고 정말 재밌게 논다. 무엇보다도 아이들 마음에 공감을 잘해준다.
오늘은 어릴 적 좋아했던 만화를 보며 동심으로 돌아가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