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의 의미

성숙한 사람은 선을 지킬 줄 안다.

by culturing me

"내일 저녁엔 시간이 안 될 것 같은데?"
"너는 맨날 시간이 없지? 넌 매일 9시면 자는 새나라의 어린이야"
"맨날이라면 1년 365일 이란 말인데, 내가 365일을 9시에 자진 않아. 별일이 없을 땐 대체적으로 일찍 잠자리에 든다는 표현이 맞지 않아?"
"근데 뭐가 그렇게 바빠? "
"내가 바쁜 게 너한테 문제 될 일은 아닌 것 같아. 나한테 화가 난 진짜 이유를 말해 보는 건 어때?"

친구들과 대화 중 친구 하나가 나에 대한 불만을 위와 같이 표현했다. 친구의 불편한 마음은 왜 일어났으며 어째서 저렇게 뿐이 표현하지 못하는 것일까? 사실 그 친구의 불만을 내가 모르지 않는다. 친구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시간을 잘 내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만남을 갖는 시간도 의식적으로 줄였을 뿐 아니라 카톡이나 통화등으로 목적 없는 수다를 내가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겐 명백한 나만의 이유가 있어서 거리를 두고 있는 중이다.


첫째는 나 자신과 가족과 함께 있는 저녁 시간 동안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기로 나와 약속하였고 이 습관으로 인해 질 높은 휴식시간을 경험한 후로는 스마트폰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생활 속에서 아날로그적인 부분이 늘어나다 보니 나에게 스마트폰은 없어도 굳이 필요치 않은 물건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저녁 시간의 카톡이나 전화에 대한 대응은 다음날 아침으로 넘겨 버린다. 가족을 위한 핫라인은 집전화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저녁시간이 되면 방황하는 마음을 자주 나에게 쏟아 놓던 그녀로서는 야속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하지만 흔들리는 상대의 마음을 내가 무슨 수로 잡겠는가? 두 번째 이유는 대화가 원활히 이루어지기보다 상대의 가치 기준에 내가 갇힌다는 느낌이 싫어졌기 때문이다.

상황에 대한 판단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판단은 상황판단보다는 더 어렵고 잘못되었을 경우엔 위험이 뒤따라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화두를 던지면 "너는 xxx 때문에 그런 거야" , " 저 사람은 이래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거고."라고 그 사람을 프레임에 넣어버리듯 판단하고 정의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어주고 있던 어느 날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생각하는 주체의 자유이고 고유한 권리이다.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 머릿속에 넣으려 해서는 안된다. 그 순간 대화의 주인공은 실체 없는 허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슈에 대해 혼자서 생각하고 상대에겐 각자가 생각할 여유를 줘야 하는데 그마저도 자기 생각대로 남의 공백을 마구 침범해 버리는 경우는 그야말로 테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내 모습을 타인에게서 발견하게 되었고, 그것이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닫아 버리는 나쁜 습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대화의 '테러'를 멈췄다. 내 것의 사고만 하면 된다. 타인에게 자신의 사고가 맞는 것이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다.

디베이팅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은 우리는 디베이팅을 논쟁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서로 이기려는 마음이 기저에 깔려있다 보니 목소리를 높이고 우위를 선점하려 한다. 하지만 디베이팅은 상대를 이기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을 궁금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표로 닫아버리는 것이 아닌 나의 생각과 다른 너의 생각을 되묻는 것이다. 종종 토론이 아닌 말싸움으로 변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와 '사이'를 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타인을 코 앞에 두면 코 밖에는 안 보이지만 두 발짝만 떨어져서 보아도 전체를 볼 수 있다.

'사이'라는 단어는 참 중요한 뜻을 갖고 있다. 친구사이, 부부 사이, 우리 사이처럼 인간관계를 칭하는 말에 '사이'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는 의미심장한 것이다. '사이'의 말뜻은 친근하기도 하지만 공간이 있다는 뜻이다. 적정거리를 유지하면 차의 접촉사고를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모든 관계에는 사이가 필요하다. 서로 넘지 말아야 하는 '사이(간격)'를 유지한다면 서로 얼굴을 붉힐 일은 줄어들고 서로를 신뢰하는 관계가 형성됨으로써 편하게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 테니 더욱 친밀한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갑자기 친해지는 관계에서 좌충우돌의 사건이 많은 이유는 너무 좋아 달려가느라 '사이'를 두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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