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테이블은 왜 시끄러울까?

내면의 감정 보따리들의 싸움

by culturing me

우리의 마음에는 다리가 스무 개쯤 있나 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하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자기 맘대로다. 혼자 구석에 처박혀 울기도 하고, 괜히 잘 지내던 상대가 미워지기도 하고, 아침에 눈을 떴을 뿐인데 마음이 축 가라앉아 몸을 일으킬 수도 없다. 다리가 스무 개인 마음을 잡으려고 하면 저만치 도망가 버리니 도대체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다리가 스무 개를 넘어 서른 개, 오십 개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는 테이블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만 해도 시끄럽다.


몇 해 전 "여배우들"이라는 영화가 개봉됐었다. 꽤나 흥미로운 영화였다. 내용보다 출연하는 여배우들이 화려했다.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이름만으로도 굳이 홍보가 필요 없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콘셉트가 더 재미있었다. 탑 여배우 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설정부터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영화는, 여섯 명의 여배우들이 크리스마스이브에 대본 없이 자유롭게 촬영을 준비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그대로 담아냈다. 여배우들의 캐릭터가 드러나는 등장 장면부터 흥미로웠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윤여정은 정확한 시간에 촬영장에 도착했지만 자기가 누군가의 대타라는 소심한 짜증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벗어던지지 못한다, 뭐여도 괜찮은 털털한 성격의 이미숙은 촬영 내내 독특한 위트로 촬영장을 편안하게 이끌고 갔다. 고현정은 출연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압도하듯 아우라를 풍기며 나타났다. 그러나 그 아우라는 갑자기 폭발할 것 같은 불안감을 동반했다. 얼굴도, 몸매도, 인기도, 경제력도, 나이도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었던 최지우는 그저 자기 만족감에 흠뻑 젖어 있었다. 김민희와 김옥빈은 선배 여배우들의 강한 기싸움에 눌려 자신들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선배들을 받혀주고 있었다. 20대부터 60대까지의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모였으니 서로에 대한 견제는 영화 초반부터 팽팽했다.


이들은 각자 자기가 갖고 있는 마음의 불편함 들이 있다. 영화 초반부터 내면의 그림자가 가장 커 보이는 고현정은 자신의 경쟁 상대라고 생각했는지 최지우 주변을 맴돌며 비아냥거리기 시작한다. 괜히 시비도 걸고, 못마땅한 시선으로 최지우를 바라보며 자꾸 찔러댄다. 이는 상대에게 자기의 감정을 떠넘기는 것이다. 여기서 고수라면 상황에 말리지 않고 피해야 하는데, 그 상황을 읽어내지 못한 최지우는 바로 고현정의 공격에 휘말려 마음이 흔들리게 되었다. 곧이어 고현정은 어디서도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보상받으려 최지우에게 더 큰 싸움을 걸기 시작한다. 고현정이 감정 보따리를 풀어놓을 곳은 최지우가 아닌 그 감정의 시작점 이어야 했는데, 시공간을 초월해서 엉뚱하게 걸려든 최지우에게 던져 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싸움은 답도 없고 해결이 불가능하다. 괜한 시비일 뿐이다. 어찌할 바를 모른 최지우는 결국 촬영 중간에 뛰쳐나간다.


이런 일은 우리 주변에서도 비일비재하다. 특히 같은 또래나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다.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보내는 엄마들이 초등학생 멘탈로 돌아가서 아이들 싸움에 끼어드는 것도 이 같은 이유이다. 내면의 감정 보따리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개체나 인격으로서의 만남이 이뤄지기가 어렵다. 마음속의 감정 보따리들끼리 만나게 되고 싸우는 것이다. 상대에게 내 감정을 옮기고, 상대는 나에게 자신의 감정을 옮기는 끝없는 싸움이 되풀이된다.


이럴 땐 상황에 휘말려 기분 나빠하거나 상처 받을 필요가 없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관찰해 보면 된다. 다 이유가 있는 비아냥, 질투, 짜증, 하소연, 원망이다. 참 안타깝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천사의 날개를 펴고 도와주려 달려들지 말자. 도와주려는 노력 또한 인정받고 싶은 나의 감정 보따리일 수 있다. 마음의 다리가 몇십 개씩 되는 상대의 마음을 무슨 방법으로 잡을 수 있겠는가?

그저 " 아, 그렇구나!"로 진심을 담아 반응해 주면 된다. 오히려 그렇게 자신의 경계를 지켜가는 것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지 않을 수 있는 자신과 상대에 대한 예의일 수 있다.


이 길이 쉽고, 현명한 방법 아닐까?


영화 '여배우들'을 감상하며 여자들의 복잡한 심리는 누군가 해결해주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전 04화감각의 예민함과 성격의 예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