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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lturing me Mar 01. 2019

나는 콧구멍도 세모

생긴대로가 가장 아름답다.

좋은 엄마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에겐 사춘기 딸아이가 있다. 온전하지 못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키운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일 것이다.  나는 워킹맘으로 살며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 아이가 어렸을 땐  퇴근길마다 구두 굽이 닳아 없어지도록  뛰어다니느라 정신없이 살았다.  늘 시간에 쫓기며 살다 보니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며 아이를 볶아대지 않기로 삶의 철학을 세웠다.  그렇게 살다 보니 마음 하나는 편하다.

  

아이를 처음 키우는 다른 엄마들처럼 나도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 게 잘 키우는 건지 모른다.  다만,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진 나와 함께 살아야 하니 우리가 함께 즐거울 수 있는 상황을 조율해가며 지내고 있다. 어차피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는데, 무리해 가면서 애를 키운 들 결론은 거기서 거기일  것이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아이도 나도 일상이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학원에 보내지 않기로, 아이는 학원에 가지 않기로 동의했다.  이유는 학원까지 데려다주고 데려오느라 허비하는 시간도 아깝고, 하루의 중간 시간이 반 토막 나는 게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었다.


아이가 일곱 살 될 때부터 학교 엄마들에게  "oo 엄마, 아이를 망칠 작정이야? 왜 학원을 안 보내?" , " 저러다 큰일 나지. 나중에 후회해 봐야 약도 없어" , "도대체 뭘 믿고 그래?"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나는 나를 믿고, 내 딸을 믿는다. 학원을 안 다녔기에  우리는 함께 할 시간이 많았고, 즐거운 다른 것들을 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기도 하고, 지방에 있는 문화 유적지를 순차적으로 가보기도 하고,  전시회나 영화도 많이 보러 다녔다.  그래서 우리는 둘 다 시간을 아주 잘 사용하는 습관이 생겼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도 책임감 있게 해낼 줄 안다. 꼭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우리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면서 사는 거야. 각자 좋아하는 일 하면서 즐겁게 살자" 이렇게 지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우리는 서로가 잘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저녁시간이 되면 하루의 일과에 대해서 참새들처럼 떠들어댄다.  나는 아이에게 하루 일과를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다.  그저 나의  일과에 대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좋은 일, 나쁜 일 가리지 않고 얘기한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는 입을 다물기 마련인  사춘기 아이가 꽤 입을 잘 연다. 내가 기분 나쁜 일을 겪어서 붉으락푸르락 해 있으면 위로도 곧잘 해준다.  나는 아이 앞에서 펑펑 울기도 잘한다.  이는 나뿐 만이 아니다. 사춘기 아이도 이유 없이 엉엉 울며 자기 무드가 엉망이니 이해해 달라고 도움의 손을 내밀기도 한다. 서로의 개인적인 영역에 불쑥 들어가 간섭하지 않고, 각자의 감정을 스스로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또 그것이 잘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뭐든 털어놓게 되었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보름달이 정말 예뻤다. 유난히 달을 좋아하는 아이는 은근슬쩍 나에게  “엄마, 저 달을 보며 담배를 피우면 어떤 기분일까?" 하고 속내를 드러냈다.  아이는 얼마 전부터 담배에 대한 호기심을 표현했던 터라 나는 그 마음을 모른 척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 우리 한 번 피워볼까? " 나는 곧장 편의점으로 가서 제일 예쁜 포장지의 담배와 라이터를 샀다.  그리고 보름달이 잘 보이는 한강공원에서 우리는 담배 한 개비씩 나눠 들었다. 아이는 깜짝 놀랐지만,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좋아했다.  담배를 안 피우는 나도 이 나이에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ㅇㅇ 야, 엄마는 올해 크리스마스이브를 너와 함께 처음 담배 피운 날로 추억할 수 있게 됐어. 엄마에게 큰 선물 해줘 너무 고마워."   아이는 잠시 침묵하는가 싶더니 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 엄마가 내 엄마여서 너무 고마워"라고 했다. 생각지 못한 그 말에 가슴이 찡했다.  


‘아...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 마음에 함께 머물러 있어주기만 해도 되는 거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이에게  "어른이 되기 전까지, 좋은 일은 숨어서 해도 되지만, 불건전한 일은 엄마와 함께 하자."라고 부탁했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감사한 순간이었다.  그것으로 사춘기 소녀의 담배에 대한 호기심과 충동은 해소되었다.  내가 만일 '성인이 되기 전엔 안돼'라고 아이의 호기심을 외면했더라면 과연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담배를 안 피웠을까???

  

우리 가족은 이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소소한 즐거움에 만족하며 산다.  하지만,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글쎄'라는 눈초리를 받을 게 뻔하다. 내 딸은 공부를 잘하는 과목도 있지만 못하는 과목도 있다.  싫어하는 과목이 있는 건 당연한 거니까 잘하는 과목에서 즐거움을 얻으면 그 과목만큼은 더 잘할 수 있게 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거 하나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이 기준은 나의 아빠로부터 왔다.  


나는 학창 시절 공부를 그리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의 아빠는 내 성적표를 보실 때마다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네 등수 위에도 아이들이 많지만 아래도 아이들이 많구나. 참 잘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공부를 못하는 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 본 적도 없다. 나는 콧구멍도 세모다.  자칫 잘못하면 콤플렉스가 되었을 나의 세모 콧구멍을 내 부모님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장 예쁜 콧구멍이라고 해 주신 덕에 지금도 예쁜 줄 알고 살고 있다.  


내가 해 낸 만큼이 가장 잘한 것이라고, 생긴 대로가 가장  귀한 것이라고 해주셨기 때문에 나는 현재도 못하는 게 참 많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이런 내가 싫지도 않고 자신감이 부족하지도 않게 현재 서있는 현실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유난히 돌아가신 아빠가 보고 싶은 날. 나도 내 딸에게 말해 줘야겠다.


 "딸아, 네가 할 수 있는 만큼이 너의 최선이야. 그래서 너는 지금도 네 몫을 다하고 사는 거야. 자랑스러운 내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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