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섭하는 마음 들여다보기
"여보 이쪽으로 오세요. 거기 사람들이 지나다니잖아요. 그리고 걸음 좀 똑바로 걸어요. 허리를 왜 그렇게 구부정하게 숙여요? 똑바로 펴보세요. 허리를 똑바로 펴야 무릎에 무리가 안 간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요. 병나서 또 누구 속을 썩이려고"
"아이고 알았어. 거참!"
산책 중 옆을 지나던 노부부의 대화이다. 산책길에서 가끔 마주치는 부부이다. 할아버지의 행동을 사사건건 통제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자주 봤던 터라 그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쉬지 않고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셨다. 할머니 스스로는 남편을 챙기고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인간 심리에 대한 관심을 가져온 내게는 할머니 자신의 불안을 못 이겨 상대를 통제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즉, 할머니는 남편에게 자신의 감정대로 움직여 달라고 호소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 어떤 사람들은 유난히 상대방의 행동과 감정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 걸까? 가족 중 중독의 행동을 보이는 구성원이 있으면 그를 보호하려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중독자에게 감정을 의존하게 된다. 그들은 중독자가 겪는 문제에 지나치게 신경을 곤두세우며 정신 에너지를 상대의 생활패턴에 밀착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실수를 대신 책임지고 해결해 주려고 한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감정을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혼자서도 잘 찾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방향을 지시하는가 하면 걸음걸이와 자세 하나까지도 통제를 한다.
산책 중 보이는 할머니의 의존도를 보면 일상생활에서도 할아버지의 식단이나, 말투, 옷 입는 스타일, 돈 쓰는 습관 등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간섭하려 들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모든 신경이 쏠려있는 할머니의 마음에는 자유도, 평안도, 안정감도 없을 수 있다. 할머니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타인인 할아버지의 감정에 밀착되어 있고 무의식적으로 자기가 아닌 남의 삶을 대신 살고 있으니 할머니 스스로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행위중독이나 약물중독뿐 아니라 정서가 분리되지 못하는 관계 중독, 사랑 중독같이 더 큰 정서의 그물에 걸려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특히 자녀에게 집착하는 부모들의 경우는 관계/정서 중독이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의 집착을 받고 자란 사람은 아무리 집착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써도 또다시 자녀에게 집착을 보이는 중독의 패턴을 무의식적으로 되풀이한다. 자신의 정서가 불안정하다 보니 아이들의 자율성을 소멸시키고 아이가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들고 그것이 서로의 성장을 막아서고 있는 것도 모른 채 그를 사랑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치맛바람으로 양육된 마마보이나 파파 걸을 생각 하면 된다.
해결되지 않은 애착의 문제가 있으면 정서적으로 홀로 서는 게 쉽지 않다. 진정한 성인이라면 의존하고 있는 대상으로부터 한 발짝 멀어지고 보다 더 자신을 알아야 정서적으로 독립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혼자의 힘으로는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기가 쉽지가 않다. 부딪히고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그 관계의 소용돌이에서 못 빠져나온다거나 자신의 성장은 포기하고 상대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거나 혹은 사사건건 누군가에게 잔소리를 하며 통제하고 있다면 반드시 혼자의 시간을 충분히 갖고 생각해 봐야 한다. 나에게 혹시 정서적으로 분리되지 못한 애착의 문제는 없는가?
의존도가 높은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의 말투, 눈빛,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반응한다. 가장 최악의 상황은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이 없는 관계이다. 무엇인가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의 삶은 병들어 가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이나 주변인들까지도 '동반의 존'이라는 덫에 걸려들게 된다. 괴로워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쳐도 자신의 힘으로는 벗어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전문 상담사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의존하는 사람들은 정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보니 자신의 편협한 기준에 상대방이 맞춰줄 때서야 안정감을 느낀다. 그래서 상대를 판단하고 통제하려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은 상대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잘못이나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주다 보니 불필요한 해결 능력만 발달되어 간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이뤄주기 위해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상대가 변화되기는커녕 점점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니까 자기 통제력을 잃기도 하고 (분노) 중년 이후엔 다양한 이상행동을 나타낸다. 서로 의존하는 사람들을 밖에서 보면 서로 밀착되어 돕는 관계로 보이기 때문에 사랑이 깊은 사이, 정을 나누는 사이 등 좋은 사이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서로에게서 마음을 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맞물려 돌아가는 날카로운 톱니바퀴와 같다.
몸이 건강하면 100미터 달리기가 힘들지 않은 것처럼, 정서가 독립되면 마음이 가볍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야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리고 자기 마음의 안정감을 남이나 물질로부터 찾지 않아도 되니 일상에서의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감을 충만히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