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삶을 산다는 것
방금 구두 수선집을 나온 60대 아저씨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다.
"아 거참! 밑창을 어떻게 수선했길래 이렇게 미끄러운 거예요?"
그는, 구두수선 아저씨한테 냅다 소리를 질렀다. 지나가다 우연히 이 장면을 본 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 광경이 기분을 편치 않게 만든 이유는 육십 평생을 저런 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살았을 모습과 힘들었을 그들이 떠올려졌기 때문이다.
‘책임회피'는 상대에게 피해를 준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우스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순간 나 자신을 돌아보며 '나도 저러고 살고 있나? 만일 그렇다면 보통 큰일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해봤다.
책임을 회피하는 습관은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나아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배우고 본 대로 열심히 살아간다. 누군가로부터 무엇을 배우며 자신의 존재를 세워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타인을 주체 삼아 자기의 책무까지도 남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모든 일의 책임은 자신이 아닌 상대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남에게 의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부모에게 의존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자유함을 선택할 권리는 자신만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특권이다. 이는 자기 삶을 책임지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는 의미이다. 사소한 책임마저도 상대에게 떠넘긴다는 것은 자기 존재를 남에게 넘겨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 좀 책임져 주세요"라고 하는 것은 "나의 주인이 되어 내 마음 좀 잡아 주세요"라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나 열심히 목표를 세우고 미래를 향해 각자의 지도를 그려나간다. 여기서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그린 지도가 잘못됐음을 아는 순간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고통 속에서 궤도를 수정하고 다시 그리기 시작한다. 자기가 그린 지도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지는 것이다. 반면 이상 속에서 지도를 그리는 사람은 보물섬을 찾아서 돌진한다. 그리고 어떤 예기치 않은 상황에 부딪혔을 때 궤도를 수정할 생각도 걸어온 길을 돌아볼 생각도 없다. 왜냐면 누군가 그곳에 보물섬이 있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삶을 사는 것이 아닌 남의 생각을 따라 사는 모습이 된다.
아이들은 선택에서 제한을 갖는다. 어른들에게 허락을 구해야 할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은 무수히 많은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 아이'는 영혼이 성장할 수 있는 선택보다는 익숙함을 따라간다. 자신의 지도를 그리고 수정해 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자유함이 무엇인지 모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유함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삶은 마음의 평안보다 불안감에 더 익숙한 삶이다.
자신의 책임과 권한을 남에게 전가하는 삶은 자유가 한정된 삶이다. 그뿐 아니라 내 뜻대로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두려움과 무력감이 습관처럼 자신을 괴롭힌다. 그 이유는 자기만의 매뉴얼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지도를 그려본 사람은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세상에 대한 불안함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자기 매뉴얼이 있는 사람은 삶의 풍파가 있더라도 자기의 방법대로 대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기의 매뉴얼이 없으면 남과 비교하다 뒤처지면 무능력해지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하다가 과거의 굴속으로 들어가서 남 탓을 하거나 시기 질투를 일삼는다.
"현실에 나를 맞추는 게 맞을까? 나에게 맞는 상황을 찾아가는 게 맞을까?" 참 많이 듣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맞출 것도, 자신에게 맞는 상황을 찾을 필요도 없이 자신의 태도 (attitude 또는 mental frame)를 바꾸면 오히려 문제는 단순해진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진실하게 대하면 자신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그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잘못됐으면 바로잡으면 된다. 하지만 이 과정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유함으로 가는 길을 포기하고 익숙한 구속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간 쌓아온 탑이 무너질까 봐 주저함이 없이 진실에 대해서 눈을 감고 살아간다.
이렇듯 자기의 진실한 선택에 따라오는 책임이 두렵다는 이유로 자유함을 버리고 구속을 택하는 사람들은 어른이 되는 과정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에 길들여진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이 특정 계기로 인해 그런 삶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기도 한다. 늦게라도 진정한 자유함을 누리는 '어른'이 되고 싶어서 고통스럽더라도 인생의 지도를 갈아엎고 궤도를 수정하는 용기를 발휘하는 경우를 간혹 경험한다. 그들을 두고 혹자는 말한다.
"저 나이에 어쩌려고 저러는 거야? 왜 방황을 해? 그냥 참고 정신 차리고 살아야지."
과연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정신을 차리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