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따라 하다 잃어버린 개성

안정감을 쫓는 불안한 마음

by culturing me

”Wow, Beautiful!" 어떤 외국인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외국인의 눈을 사로잡은 곳은 한국 재래시장의 반찬가게 앞이었다. 반찬들의 색감과 그것을 매만지는 할머니의 손길에 한국 사람인 나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재래시장에는 다채로운 인생과 이야기가 있다. 간판이며 집집마다 진열해놓은 먹거리와 상품 들을 보고 있노라면 역사란 하루하루의 시간과 노력이 축적된 결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된다. 영천시장, 금남시장, 통인시장, 연신내시장, 중부시장 등 아직도 강북에는 사람 냄새와 세월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재래시장이 여러 곳 남아있다. 아직까지 지켜지고 있는 게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고유성을 지키려는 열정이 덜한 듯하다. 카페며 식당 혹은 아파트 이름들에 이르기까지 외국어가 홍수를 이룬다. 발음하기 쉽지 않은 이름들을 뽐내며 여기저기 붙어 있다. 심지어 아이들 이름도 외국어로 부른다. 브라이언, 미셸, 카일라 등 듣는 순간 노란 머리 외국인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 들이지만 토종 한국인들이다. 아이의 이름을 붙여준 부모는 hi, ok, how are you. 정도의 영어를 구사하면서 외국 사람이 되어버린 양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제발 그러지 좀 말지... 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리려 할까? 영어가 세계 공용어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바뀌지는 않지 않나. 뭐든 흉내 내는 것은 매력 없다.

젊은 시절 몇 년 간 일하던 외국의 리조트에는 유럽 출신의 동료들이 많았다. 덴마크, 스웨덴, 이태리, 모리셔스 아일랜드, 벨기에, 프랑스, 스위스, 그리스 등 유럽 사람들을 멀리서 보면 외모가 비슷하니 크게 뭉뚱그려 '유럽인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가까이서 경험해보면 각 나라의 독특성은 일상의 작은 행동에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내가 목격한 그들의 공통점은 '강한 개성'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개성이 묻어나는 행동과 행태의 중심에는 '자기'가 확실하게 서있음이 보였다. 그렇다 보니 노는 것도, 사람을 사귀는 것도, 일을 할 때도, 심지어 실수를 한 후에도 뚜렷한 개성이 보인다. 자기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용인되는 환경과 문화에서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화두가 여기저기서 던져지고 있다. 재개발 프로젝트도 천편일률적 방식을 탈피해서 옛 것을 재조명하는 프로젝트들이 진행되는 것은 다행스럽다. 그렇지만 여러 방면에서 개성이 충분히 발휘되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여기서 본 것이 저기에도 있고, 저기서 본 것이 동네 이름만 바뀌어 다른 곳에서도 보인다. 여러 시, 군에서 큰 예산을 들이는 축제와 행사는 이젠 무슨 특색이 있는지를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여기저기 생겨나는 레스토랑들도 비슷하고, 광고도 비슷하고, 옷차림도 비슷하고, 집집마다 인테리어도 비슷하고, 심지어 얼굴들도 비슷해져서 이젠 사람들을 알아보기도 쉽지 않아지고 있다. 지루하고 싫증남은 물론이고 심지어 이제는 짜증까지 난다. 내 아이에게 시켜야 할 방과 후 활동은 옆집 아이가 하는 활동이고 옷 가게에서 첫 번째로 추천하는 상품은 '요즘 제일 많이 나가는 제품'이다. 개개인이 개성을 드러내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개성을 드러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주변과 다를 수 있으려면 불안감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불안감의 원인은 안정감의 결핍에서 기인된 것이다. 국민적 차원의 불안감은 고도의 성장을 이뤄내는 것으로 이어졌지만 그 불안감 때문에 개인의 고유한 개성은 사라져만 갔다.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음으로 수용하고 포용되어야 다양화가 될 수 있다. 또한 비교하지 않아도 될 테니 사는 게 그리 힘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면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융통성 없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사회적 금기가 너무 많다. 기준이 많고 높을수록 오히려 자기를 기준안에 가두게 된다.

머리 좋고 재주는 많은데 자율성이 발현되지 못하니 개성은 피어나지 않는다. 물론 국가가 안정되지 못하면 개인은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지만, 국가 탓만 하고 있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아깝다. 불안함의 해결을 차라리 우리 각자의 몫으로 돌려보자. 안정감을 누구로부터 받으려 하기보다 성인이 되었다면 안정감은 스스로 자신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이 안정되면 덜 불안할 수 있고, 덜 불안해야 부부, 친구, 가족과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선순환이 이뤄져야 개인이 갖고 있는 고유한 개성의 발현이 가능해진다. 남녀가 서로에게서 친밀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다른 대상을 통해 친밀감을 가지려 하지만 본인이 여전히 불안한 상태라면 다른 대상을 만나도 친밀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러한 지속적인 역 순환의 소용돌이에 갇혀 있다면, 그 뿌리 안에는 개개인이 집착하고 있는 무엇이 있을 것이다.

그 소용돌이 속에 갇혀 타인으로부터 안정감을 느끼려고 집착한다면 개성은 발휘되기 힘들다.

keyword
이전 06화어른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