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4살짜리 꼬마 아이와 엄마가 탔다. "내가 누를 거야~ 내가 누를 거야~ " 아이는 다급하게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누르기 위해 까치발을 하고 손을 길게 뻗었다. 그러자 아이의 엄마는 "만지지 마 세균 있어!" 하며 아이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밀쳐 버리고 닫힘 버튼을 꾹 눌렀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었었는지 아이는 실망한 표정으로 마음을 드러냈다. 이렇게 소소한 일에서도 아이들은 좌절감을 경험하고 이는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유아기(2-4세)의 아이는 세상에서 자기가 최고인 시기를 충분히 누려야 한다. 그래서 이 시기의 아이를 둔 부모는 무조건 아이에게 져 줘야 한다. 자기뜻이 받아들여짐을 수시로 경험하면 스스로 선택할 용기를 갖고 자신을 믿게 되어 탄탄한 자신감을 갖는다. 버릇을 가르치겠노라고 유아기 때부터 아이를 무섭게 훈육하거나, 강박적으로 청결과 안전에 몰두한 나머지 아이의 선택과 행동을 사사건건 막는 부모들도 있다. 건강을 지켜주려는 것이 자신감 없는 아이로 키워낼 수 있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과도함의 부작용을 말하려는 것이다. 부모의 성격이 강박적일수록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뭔질 잘 모른다. 유아기에 받아들여짐을 충분히 경험한 아이는 아동기로 넘어갈수록 훈육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남의 말에 동의하지 못하고 꼬투리를 잡거나, 승부욕이 강하고, 토론을 하면서도 유난히 우위를 차지하려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유아기에 자신의 행동이 부모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존재 자체로서 부모에게 충분한 인정을 받았다면 살아가면서 지는 일이 그리 힘들지 않다.
사회적으로 명성 있는 부모를 둔 자녀들이 부모를 뛰어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인데, 사회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높은 위치에 있는 부모들은 유아기 아이들에게도 세상을 가르쳐 주려고 한다. 너무 높이 뜬 달처럼 보이는 부모는 유아기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그때의 이미지 그대로 내면에 남아있다.
목구멍에 걸린 잔가시 하나가 침을 삼킬 때마다 살을 찔러 불편한 것처럼, 오랜 세월이 흘러도 마음속에 콕 박혀있는 작은 조각(부모의 반응) 하나로 인해 사람의 행동은 변형이 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불편함과 거슬리는 마음의 원류는 별것 아닌 '부모의 언어'일 것이다. 가슴에 걸려있던 부모의 언어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늘 거슬리던 일들도 어느새 내 곁을 떠나 사라진다.
지식인들이 시사토론에서 대담을 나누는 것을 보면 싸움판이 따로 없다. 자기 말이 맞다고 구구절절 토론하다 이내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 말이 옳은데 상대가 동의를 안 해 주거나, 타인의 생각에 자신이 동의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싸움이 된다.
그렇다면 타인의 생각에 동의하는 게 왜 어려울까? 절대 진리라고 여겼던 부모의 언어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 속에도 사로잡혀있다. 사고가 넓고 유연하게 자녀를 키우고 싶다면 유아기 때 아이의 행동에 열심히 긍정적으로 반응을 보이고 받아들여줘야 한다. 유아기 때 부모를 충분히 이겨본 경험이 있다면 살면서 사소한 일에서 이기려고 불필요한 힘을 빼지 않아도 된다. 남의 의견을 넉넉히 받아들이면서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