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를까? 유튜브를 볼까?

지혜와 통찰의 시간을 삼켜버린 input의 홍수

by culturing me

사람 사는 세상은 문 밖만 있는 게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빛의 속도'로 연결된 지금, 세상은 'click away'에 있다. 낯선 장소에 가서 와이파이가 연결되지 않으면 불안에 빠지는 사람을 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빛의 속도로 1년을 가는 거리를 1광년이라고 한다는 것을 배운 이후 지금까지도 광년이 거리의 단위인지 시간의 단위인지 혼돈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Click away'를 시간의 단위라고 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거리의 단위라고 해야 맞을까?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커넥트 되어 있는 사람은 혼자 있어도 그다지 외롭지 않아 보인다. 유튜브 같은 미디어 플랫폼에는 콘텐츠가 그야말로 '없는 것 빼고 다' 있으니 코로나 때문에 여행이 불가능한 요즘 같은 때에는 반나절에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세계 100대 명소'를 모조리 다 여행할 수도 있다. 정보가 유통되는 속도가 느릴 시절에는 정보가 자산이고 무기였기에 '정보의 비대칭성'은 불공평을 초래하는 커다란 사회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정보의 비대칭성이 아니라 '정보의 무차별성'이 큰 문제인 듯싶다.


정보의 양이 제한적일 때에는 한정된 정보에 최대한의 분석력과 훈련된 창의력을 더해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해야 했다. 프로세스하고 (processing) 내면화 (internalizing)하기에 따라 정보의 가치는 달라진다. 그런데 정보의 양이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다양한 정보를 꿰뚫는 의미를 찾기보다는 '더 많은' 정보를 쫒아 시간을 낭비하고 정보의 산더미에 매몰되기도 한다. 정보수집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다. 수면시간을 제외한 15~17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SNS와 미디어 플랫폼 등에 넘쳐나는 '타인의 삶'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건 아닌지? 정보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 '사고의 힘'은 소멸되어 가는 건 아닌지? 의식적으로 사유와 성찰의 시간을 늘리지 않으면 우리는 정보에 포위당할 수 밖에 없다. 사유의 시간이 없다는 것은 자신을 잃어 간다는 의미이다.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는다'라는 말이 있다. 사유와 성찰의 시간은'가치'를 찾기 위함이고 정보를 쫒고 소비하는 것은 방법을 찾기 위함이라고 한다면, 나아갈 방향과 가치를 모른 채 방법만을 찾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보를 축적하면 지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식은 지혜를 당할 수가 없다. 지혜는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혜로움이 깊어지면 '통찰'의 힘이 된다. 통찰은 꿰뚫어 보는 능력이니 다른 말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이라고나 할까? 언뜻 보면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의 관계를 꿰뚫어 보는 혜안이 통찰이다.


지혜와 통찰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었을 때 생기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사물, 사건, 정보, 지식에 코를 바싹대고 있기보다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객관화할 수 있다면 전체가 조감되고 여백도 생길 것이다. 이때 뇌신경세포들 간의 소통속도는 다소 느려질지 모르지만 훨씬 많은 수의 뇌신경세포가 동원되는 것이 아닐까?


정보와 흥밋거리 콘텐츠에 대해 조금 초연해지는 변화를 시도해 보자. 사유와 성찰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하고 여백을 만들어 주는 일 -- 이것이 지혜와 통찰에 대한 초대장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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