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를 여행하는 고상한 삶
"어머, 그 아파트엔 바퀴벌레가 많이 나온다던데?, 엘리베이터도 없지 않아?"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온지 10개월 째다. 집을 줄이기로 결심하고 이사 갈 집을 찾느라 여러 곳을 다녔었다. 집 보러 다니는 일은 육체적으로 힘들기는 했지만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설레고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많은 집을 봤다. 깔끔한 새집도 있었고 전망이 아주 좋은 곳도 있었다. 그렇지만 수많은 집들 중에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짜리 아파트의 오래된 나무마룻바닥에 넋이 나가버렸다. 그때 반해버린 마루를 10개월째 즐기며 살고 있는데 40년이 넘은 낡아빠진 마룻바닥은 내게 품위를 말해주고 있다. 마치 나에게 '멋스러움은 세월에서 오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오래된 아파트를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40년이 넘은 아파트 단지에 터줏대감처럼 들어찬 거목들을 지나칠 때면 세월이 만든 아름다움은 쉽게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은 생산하지도 않는 자재들로 지어진 이 아파트는 모든 게 낡았다. 계단과 창문도 그렇고 구조도 옛날 식이다. 낮은 천정은 이 아파트의 나이를 말해준다. 하지만 세월에 의해 헤지고 낡은 모습 한편에서는 품위라는 게 생겨나기도 한다. 오래된 동네엔 흔들리지 않고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의미 있는 감성이 있다. 힘이 빠질대로 빠졌지만 오묘하게 다져진 터의 기운이 마음을 안정시켜 주기도 한다.
이곳으로 이사한 후 대표적으로 변화된 삶의 태도는 검소하고 겸손해졌다는 것이다. 백화점보다는 동네 재래시장에 발길이 닿고,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계단을 오르며 이웃들과 가까운 인사를 건넬 기회가 잦아졌다. 그리고 나지막한 아파트의 아늑함덕에 시원하게 뻥 뚫린 하늘을 집 안에서도 볼 수가 있다. 어디 그뿐인가? 목소리 예쁜 새들이 시도 때도 없이 이 집 저 집의 창가에서 수다를 떤다. 겨울엔 방과 거실의 창을 통해 아파트 키보다 더 큰 나무에 소복이 쌓인 눈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호사까지도 누릴 수 다.
주변에 새 것을 두고 닳아버릴까 봐 아끼려 마음을 쓰는 것보다 오히려 세월이 차곡차곡 만들어 낸 오래된 것이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시간에 만들어질 수 없는 오래된 동네의 풍요로움이 삶 안으로 아름답게 스며들고 있다. 낡음을 없애버리고 새 것을 추구하는 삶이 미래를 향한 진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