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씨와 함께 춤을, 나의 가방

눈치를 봐야 합니다

by 중년의 모험가


20대의 나는 나만의 개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자 했었다. DJ DOC의 ‘함께 춤을’을 들었을 때도 나는 속으로 "나는 이미 남의 시선이나 사회의 편견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내 멋대로 살아가고 있는데, 세상은 아직도 이런 노래 가사가 필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자유라는 건 너무도 당연한 내 몫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의 시간이 지나, 나는 어느덧 40대 후반이 되어 한 팀을 이끄는 직장인이자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 있다. ‘남의 눈치는 보지 않겠다’는 20대 때의 나의 허세는 현실을 살아가는 나에게 이미 희미해진 추억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회사에서는 자연스레 후배들의 시선, 주위 사람들의 평가, 상사의 기분을 신경 쓰게 된다. 문득문득 거울을 볼 때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나’를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나를 남과 구분 짓던 '자유의 선’이 서서히 사라지고 평범해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나에겐 애착 가방이 하나 있다. 적당한 크기에 튼튼하면서도 가벼운 소재, 어디에나 적당히 어울리는 디자인과 색. 처음엔 그저 그 자체로 편하고 좋았다. 평일 출근에도, 주말 나들이에도, 저녁 동네 카페 마실에도 편하게 메고 나갈 수 있는 잘 어울리는 '내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온라인 기사에서 내 가방이 ‘요즘 20대들이 유행처럼 드는 아이템’이고, ‘젊은 층 트렌드를 무리하게 따라 하는 40대 남성’을 희화화할 때 아이콘처럼 사용되는 가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전에는 그런 사실을 몰랐던 나는 그냥 실소가 나왔다. 그러나 그때부터인가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길가 카페 유리창 너머에서, 괜히 다른 이의 시선이 내 가방에 머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속으로 비웃는 듯한 느낌이랄까, 스스로 위축이 되는 느낌이었다.




한동안은 새로운 가방을 찾으려고 인터넷 쇼핑몰을 뒤졌다. "이 정도면 과하지 않지", "설마 이것도 20대들의 유행 아이템인 것 아닌가"라며 수십 개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쓰던 가방만큼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색이 너무 밝거나, 디자인이 화려하거나, 혹은 불편해 보였다. 내가 원하는 건 그저 내 하루와 잘 섞여 드는, 신경 쓰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내 가방’일 뿐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남의 시선을 이렇게 신경 쓰며, 평범해지려고 애쓰는 걸까?




생각해보면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었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의 이면에는 ‘남들 눈에 잘 보이기 위한 절제’가 깔려있었던 적도 많았다. 남은 짐을 버리는 과정에서도, 가끔은 누군가의 평가가 신경 쓰였다. 나는 여전히 ‘자유롭게’ 살고 싶지만, 사실 늘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던 것이다.




문득, 젊은 날의 나를 다시 떠올린다. 그때의 자유라는 것도 꼭 타인의 시선을 완전히 초월한 상태는 아니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내게 어울리는 환경이 나를 덜 불편하게 만들어준 것뿐이었다.




지금은, 내 나이와 취향, 책임과 불안이 더해져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여러 겹의 망설임 속에 숨겨져 있다.




이제는 그렇게 생각한다. 남의 눈치를 본다는 건, 살아가며 자연스레 얻게 되는 감각에 가깝다. 완벽히 신경 쓰지 않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스스로 좋아 하는것들을 너무 미루거나 부정하진 않으려 한다.


아직도 가끔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 가방을 내려다볼 때면 ‘어쩌면 남이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지’라는 생각이 스친다. 그럼에도 오늘은 그냥, 그 가방을 드는 내가 좋았다. 완벽한 해방은 못 얻었지만, 아주 조금씩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지고 싶은 40대의 마음이, 그 안에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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