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아카이빙
디지털 사진이 내 삶의 한 조각으로 자리 잡은 이후, 언제부턴가 매년 연말이면 백업해둔 그해의 사진들을 꺼내어 정리하는 일이 하나의 의식이 되었다.
올해는 특별히 인터넷에 흩어져 있던 모든 계정들을 찾아내고 그곳의 자료도 모으는 작업을 했었다. 덕분에 기억속에서도 잊혀졌던 흩어진 이미지들을 불러모아, 지난 시간을 다시 만나는 시간을 보냈다. 미처 알지 못했던 내 계정들의 기억 창고들을 뒤지며, 잊혀졌던 순간들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20년 전 프랑스의 어느 다리 위에서 햇살에 반짝이던 풍경, 15년 전 출퇴근길에 타던 오래된 차의 마지막 모습, 10년 전 중국 옥룡설산 공원의 어느 소년이 던져준 미소 같은 사진들. 이 작은 사각형 안에 담긴 낯익은 얼굴과 풍경들은 먼 곳으로 흘러간 나의 시간들을 다시 불러왔다. 하지만 동시에, 같은 사진이 여러 폴더에 중복되어 흩어져 있는 현실은 디지털이라는 무형의 공간 속에 또 다른 나의 흔적들이 조용히 중첩되고 있음을 알게 했다.
온라인 저장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줄기 빛 같다. 내가 로그인을 하는 한, 잊혀진 파일도 언제든 깨어나 존재하지만, 그들도 전기를 먹으며 자라나는 도시의 불빛처럼 보이지 않는 대가를 치른다. 오프라인의 파일들은 적어도 내 손 닿는 곳에 있어 유효함을 느끼지만, 그것들 역시 무심코 쌓이다 보면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한다.
며칠간의 사투 끝에 흩어진 사진들을 한데 모았다.
힘들게 모은 자료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화면 속에 모인 300기가 바이트의 기억들, 10% 정도는 과거의 것들이였지만 대부분은 2025년 한 해 동안 찍힌 것이다.
예전엔 메모리 카드도 부족했기에, 꼭 필요한 사진만 골라 남겼다. 하지만 지금은 저장 비용이 너무 싸다. 그래서 무심코 찍고, 또 찍고, 다 남겨 두었다. 그 결과, 정리라는 행위가 점점 더 거대한 노동으로 나를 옥죄는 것 같다.
또한 스마트폰이나 클라우드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선택과 아카이빙을 대신해 준다. 사진 몇 장을 모아 슬라이드쇼를 만들어 주는 친절함 뒤에는 인간의 기억을 기계가 분류한다는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자리한다. 내 삶의 기록을 내가 스스로 다뤄야 한다고 느끼는데, AI가 대신 케어한다는 것은 마치 내 시간을 기계가 훔쳐가는 기분이다.
디지털 세계도 물건과 같아서, 무작정 쌓아둘 수 없다. 소중한 것만 담고 불필요한 것은 덜어내는 일, 그것이 오늘을 사는 나에게 필요한 미니멀리즘이다. 나의 기억과 시간, 그리고 마음 한 귀퉁이에 가벼이 놓일 수 있는 그런 디지털 삶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