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취향을 찾아서
아끼는 치타(Chita) 위스키의 마지막 한잔을 마시며 책장을 정리하던 중, 구석에 꽂혀 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을 발견했다.
위스키와 하루키가 중첩되자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하루키가 아이레(Islay)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턱대고 아이레 위스키를 종류별로 사버렸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잭다니엘을 주로 즐겨 마시며, 내게 위스키는 익숙한 술이라 생각했다. 여러 종류의 위스키를 한두 잔씩 경험해보긴 했지만, 아이레 위스키는 처음이었다. ‘뭐 별 차이가 있겠어?’ 하는 막연한 호기심과 더불어, 유명인의 취향을 따라가면 나도 비슷해질 것이라는 모방심리가 작용해 충동적으로 구매한 것이었다.
처음 라프로익 위스키의 병을 따 잔에 담아 한 모금 마셨을 때, 그 향과 맛의 강렬함에 크게 놀랐다. 하루키가 즐긴다는 빨간 약향의 독특한 훈연 향은 내게는 낯설고 무겁게 느껴졌다. 하루키의 취향과 나의 취향 사이에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사둔 여러 아이레 위스키 병들을 비우는 시간은 즐겁지 않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이 실패가 오히려 더 넓은 위스키 세계로 눈을 뜨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내게 맞는 취향은 무엇일까?’, ‘정말 좋아하는 맛은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과 마주하며, 다양한 위스키를 천천히 음미하고 각자의 섬세한 차이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내 취향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서 인생이나 취향에서 단순히 남을 모방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자기 것이 될 수 없다는 깨달음. 모방은 그저 출발점일 뿐, 진짜는 나만의 경험과 취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어야만 취향이 완성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루키가 좋아하는 아이레 위스키와 내가 선호하는 위스키 사이의 간극은 나를 나답게 만드는 소중한 차이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제 하루키의 책을 읽으며 그가 좋아하는 위스키를 떠올릴 때, 나도 나만의 위스키 잔을 들고 나만의 취향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 시절 충동적으로 구매한 경험과 실패가 오히려 나를 더 깊이 있는 위스키 애호가로, 그리고 성숙한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게 해준 값진 시간이었음을 마음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