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 담긴 역사와 풍미
와인 매장에 들어서면 으레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국가별, 품종별, 그리고 브랜드별로 진열된 각양각색의 와인들 사이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와인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라벨이다. 프랑스 와인은 표기법이 어느 정도 표준화되어 있어, 약간의 독해법만 익히면 그 맛을 유추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반면, 여타 국가의 와인들은 제각각인 라벨링 탓에 선택의 장벽이 높고 선뜻 시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표준화된 라벨링은 역설적으로 술을 고르는 과정에서 다양한 정보를 탐색하게 만들고, 술자리에서 풍성한 담소의 소재를 제공하는 재미가 되기도 한다.
가격 면에서 프랑스 와인은 품질이 검증된 만큼 고가인 경향이 있다. 이에 반해 제3국 와인들은 합리적인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1~2만 원대 와인을 선호한다. 자연스레 유명한 프랑스 와인보다는 칠레나 미국산 와인을 주로 찾게 되었다. 최근에는 코스트코에 들렀을 때 자체 상품인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Chianti Classico Riserva)'가 보이면 주저 없이 몇 병씩 비축해 두곤 한다.
키안티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 지방의 산물이다. 토스카나는 로마와 밀라노 사이, 피렌체 인근을 아우르는 지역이다. 그중에서도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에 위치한 키안티 지역은 산과 구릉이 발달하여 일조량이 풍부하고 일교차가 커, 산지오베제(Sangiovese) 품종이 생육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자랑한다. '산지오베제'라는 명칭은 라틴어 'Sanguis Jovis', 즉 '주피터(제우스)의 피'에서 유래하였다. 포도가 지닌 붉고 진한 색감이 신의 피를 연상시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품종은 풍부한 향과 높은 산미, 그리고 전통적인 양조 방식을 통해 이탈리아 와인 문화의 정수로 자리 잡으며 널리 사랑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와인 특유의 산뜻한 산미와 적절한 쓴맛, 그리고 타닌의 조화를 즐긴다. 피자나 치즈와 같은 간결한 음식에 곁들일 때, 입안을 개운하게 씻어주는 깔끔한 여운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와인 병에 새겨진 수탉 문양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깃들어 있다. 과거 토스카나의 피렌체와 시에나는 영토 분쟁을 겪고 있었다. 두 도시는 각기 아침에 첫 닭이 울 때 기병을 출발시켜, 두 기병대가 만나는 지점을 국경으로 삼기로 합의하였다. 이때 두 도시의 전략은 판이했다. 시에나는 닭을 배불리 먹여 재운 반면, 피렌체는 닭을 어두운 곳에 가두고 굶겨 예민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예민해진 피렌체의 닭이 훨씬 일찍 울었고, 피렌체 기병은 시에나 인근까지 진격하여 시에나 기병과 마주쳤다. 이로 인해 두 도시 사이 영토의 대부분은 피렌체의 소유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키안티 지역 또한 피렌체령이 되었다. 수탉의 울음 덕분에 획득한 영토를 기념하여 키안티 와인 병에 수탉 그림을 새기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운송 중 파손을 막기 위해 병을 짚으로 감싸기도 했으나, 현재는 표준화된 유리병 형태로 유통되고 있다.
이렇듯 와인에 담긴 서사를 탐구하며 즐기는 과정은, 마트 진열대 앞에서의 고민과 집에서의 시음 시간을 하나의 작은 여행으로 변모시킨다. 앞으로도 다양한 와인 한 잔과 함께 그 역사와 풍미를 음미하며 풍성한 미식 경험을 이어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