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정년퇴임을 앞둔 선배 한 분이 정년퇴임을 이미 하신 선배님들과 저녁을 먹을 자리에 함께 가자고 초대해 주셨다.
회사 안에서 임원까지 지내셨던 분도 계셨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한 은퇴 생활을 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골프를 치고 여행을 다니는 여유로운 일상을 상상했다.
그런데 막상 식사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정년퇴임하고 나서, 길어야 1년은 집에서 쉬는 게 좋더라고. 근데 어느 순간부터는, 나라는 사람이 아직 쓸모 있는 존재라는 걸 확인하고 싶어져.”
그분은 요즘 오피스 빌딩 경비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막상 회사 밖에 나와서 일자리를 찾아보면, 예전에 무슨 직급이었는지는 아무 의미가 없어. 그냥 일하는 사람 중 한 명일 뿐이지.”
그 말을 들으면서 문득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할아버지도 정년퇴임 후 10년 넘게 경비 일을 하셨다. 그때는 그저 부지런하신가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 와 곱씹어보면 평생 회사에서 쌓은 직함과 지위는 퇴직과 동시에 효력을 잃었고, 남은 건 이름 모를 60대 경비 아저씨라는 역할뿐이었다.
평범한 회사원이라면, 회사를 나간 뒤 과거의 지위가 얼마나 빨리 의미를 잃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학업을 마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 은퇴를 깊이 고민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가끔 정년퇴임을 상상해 보더라도, 떠오르는 건 은퇴 자금을 얼마나 모아야 하는가 하는 숫자뿐이었다. 정작 은퇴 이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그 삶의 내용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20대 시절, 어른들이 해 주던 조언이 떠오른다.
“나이 들어서도 먹고 살려면 기술을 배워야 한다.”
“공부 열심히 해서 ‘사(士)’ 자 들어가는 직업 가져라.”
나는 둘 다 해내지 못했다. 공부를 썩 잘하지도 못했으니 ‘사’가 붙은 직업을 얻지 못했다. 그렇다고 용기를 내어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지도 않았다.
대신 안정적이고 평범한 직장인을 선택한 이후로, 한동안은 사원·대리·과장·차장으로 승진해 가는 과정이 자랑스러웠다. 어디서든 서슴없이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은 나의 신분증이자 계급장쯤으로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차장을 넘어간 이후부터는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마다 직급 체계가 제각각이고, 같은 직급 이름이라도 실제 회사 안에서의 위치와 권한은 천차만별이었다. 더 이상 내 명함에 적힌 직급이 나를 설명해 주지 못했다.
명함을 주고받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어느 회사의 누구’일 뿐이었다. 그 회사의 대표로 잠시 마주 앉은 사람일 뿐, 나라는 개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마흔을 훌쩍 넘기는 나이가 되어서야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이 명함은 나와 나의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만 통용되는 기호일 뿐, 내 삶이 어떤 사람인지 바깥세상에 알려 주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결국 20대 시절 어른들이 해 주던 조언대로, 나는 나를 기술이나 전문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기업의 어떤 직위'라는 명함 한 장으로 자신을 정의해 온 셈이다. 게다가 지금 나를 설명하는 유일한 도구인 그 명함조차, 내가 회사를 떠나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점점 퇴임이 가까워지는 나이에서, 문득 이런 고민이 들기 시작한다. 회사를 나간 뒤, 나는 어떻게 나라는 사람을 정의할 것인가?
명함이라는 계급장이 떨어지는 날, 비로소 진짜 자기소개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