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1. 회사 밖에는 내 자리가 없다?

“회사에서는 어떤 일을 하세요?”

by 중년의 모험가

“회사에서는 어떤 일을 하세요?”


누군가 이렇게 물어오면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어렵게 입을 떼어 설명하더라도, 단번에 무슨 일인지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회사 밖에서는 써먹을 수 없는 일이다 보니 빗대어 설명할 방법조차 없다.


사회 초년생 시절, 나는 갈림길에 섰었다.
‘급여는 적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과 ‘성장은 더디지만 급여가 높고 안정적인 곳’.
나는 주저 없이 후자를 택했다. 그 후 20여 년, 나는 거대한 기업이라는 기계 속에서 잡음 없이 돌아가는 부품으로 살았다. 시스템이 주는 안락함에 취해, 굳이 내 역량을 따로 갈고닦으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정직했다. 지금 나에게는 ‘전문 기술’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
내가 가진 기술이라고는 고작 ‘회사에서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음을 포장하는 기술’들뿐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보고용 PPT의 글꼴과 줄 간격을 조정하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거창한 단어들을 찾아내는 기술. 혹은 회사 내부 시스템을 능숙하게 다루어 누구보다 빠르게 정보를 찾는 기술, 윗사람의 심기를 눈치껏 파악해 불호령을 피하는 기술들 말이다.


슬프게도 이 ‘기술’들은 회사 정문을 나서는 순간, 휴지 조각보다 못한 것이 된다. 다른 회사에서는, 아니 세상 그 어디에서도 ‘무슨 임원 기분 맞추기 자격증’을 쳐주지 않으니까. 그러다 보니 나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반면, 조금은 불안하고 급여가 적더라도 세일즈나 기술직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친구들은 달랐다. 어렵게 사회 초년생 시절을 보냈지만 본인의 경력을 살려서 몇번의 이직을 하면서 어렵지만 한 단계씩 성장하여 지금은 어엿한 사업체의 사장이거나, 여러 회사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하는 전문가가 되어 있다.


사실 나라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대로 가다간 도태될 거라는 걸 30대 때도 어렴풋이 느꼈다. 하지만 매달 25일, 통장에 찍히는 그 숫자가 주는 안도감은 너무나 달콤했다. 그 돈은 카드값을 메워주고, 아이 학원비를 내주며 나에게 “괜찮아, 아직은 안전해”라고 속삭였다.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도 결국 지금 가진 것을 버리고 나가지 못했다. 몇 번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도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능성보다 지금의 안락한 삶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그렇게 흘려보낸 기회들을 두고두고 후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동료들과 술을 마시며 ‘나도 마음만 먹으면 더 잘할 수 있지만, 회사에 충성하고 있을 뿐’이라는 식으로 농담처럼 떠들었다. 스스로를 속이는 데에만 능숙해지고 있었다


월급은 내 노동의 정당한 대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 야성을 거세하는 가장 강력한 마취제였다. 나는 그 마취제에 취해, 밖이 추운 줄도 모르고 온실 속에서 덩치만 키운 꼴이 되었다.


요즘 40~50대 명예퇴직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남의 일이 아니다. 그 상황에 나를 대입해 보면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회사를 나갔을 때 내 미래를 지켜줄 무기가 나에게는 없다.


회사 안에서는 조직의 리더이자 전문가로 불린다. 하지만 사원증을 반납하고 나가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다.
그렇다. 회사 밖에는, 내 자리가 없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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