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라는 단절의 시간 뒤에 마주한 인터넷 빅뱅
나의 대학 생활은 삐삐와 공중전화, 그리고 PC통신이 주요 소통 수단이었던 시기에 시작되었다. 삐삐 숫자로 '1004'나 '1010235' 같은 암호를 주고받으며 무선의 자유를 느꼈지만, 정작 연락을 확인하려면 공중전화 앞에 길게 줄을 서야 했던 시절이다. 영화 <접속>처럼 온라인으로 인연을 맺는 이야기가 젊은 층의 로망이었고, 나 역시 야후와 다음 메일을 사용하며 막 태동하던 웹 서비스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군대에 갔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내가 군 복무를 하던 시기는 세상이 온통 'WWW'와 '.COM'으로 점철된 닷컴 버블의 절정이었다. 전화선 PC통신은 초고속 인터넷으로 바뀌었고, 직접 정보를 찾아다녀야 했던 웹 환경은 검색어 몇 번으로 사냥개처럼 정보를 물어다 주는 '라이코스'의 시대로 변모해 있었다.
격변의 시기에 나는 컴퓨터와 멀어져 편지와 엽서로 소통하는 완벽한 아날로그적 삶을 살았다. 간간이 나온 휴가에서 마주한 인터넷의 성장은 매번 낯설었고, 나는 세상의 변화에서 동떨어진 관찰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제대 후 돌아온 집에는 여전히 예전에 즐기던 게임이 담긴 낡은 컴퓨터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제대 후 마주한 세상은 또 다른 즐거운 놀이터였다. '아이러브스쿨'을 통해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을 기적처럼 다시 만났고,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도토리로 꾸미며 친구들과 소통하는 문화는 일상의 큰 즐거움이 되었다. '프리챌'이나 '다음 카페'에서의 활동은 우리를 온라인상의 새로운 공동체로 묶어주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 인터넷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나에게 시대를 따라잡아야 하는 노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롯이 우리의 삶과 관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새로운 놀이 도구의 진화였다. 프런티어였던 소년이 관찰자를 거쳐 다시금 그 흐름에 몸을 싣기까지, 그 격변의 시간은 지금의 나를 만든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