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계획 : 합리적 소비

비움과 절제의 미학으로 되찾은 경제적 자존감

by 중년의 모험가


그리 큰돈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목돈을 쓸 일이 생겼을 때였습니다.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여유 자금이 없어 쩔쩔매는 제 모습을 보며 문득 깊은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내 연봉이 얼마인데, 마흔이 넘은 나이에 이 정도의 예비비조차 없는 것일까.’ 그날 이후, 그동안 무관심했던 저의 씀씀이를 하나하나 톺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통장 거래명세를 대면한 순간은 처참했습니다. 월급날 숫자가 잠시 늘어날 뿐, 카드값과 각종 자동이체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면 다음 급여날까지 잔고가 바닥인 상태가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과소비를 한 것도 아닌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싶어 카드 명세표를 자세히 살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씀씀이는 야금야금 커졌으나 소득은 정체되어 있었고, 어느샌가 할부 거래도 한두 건씩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명세표 속에는 대단한 사치품이 없었습니다. 그저 일상의 사소한 소비들이 모여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을 뿐입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커피나 디저트 같은 ‘꼭 필요하지 않은 소비’를 덜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습관적으로 향하던 카페를 두 번 갈 것 한 번으로 줄이고, 꼭 가야 한다면 멤버십 할인을 챙기거나 가성비 좋은 곳을 선택했습니다. 외식 비용도 과감히 다듬었습니다. 미식의 즐거움을 잠시 참아보고, 배달 음식보다는 직접 움직여 포장해 오거나 가능한 한 정갈한 집밥을 해 먹으려 노력했습니다. 의외로 식비에서 줄어드는 금액이 상당한 것을 보며, ‘결국 사람은 먹기 위해 일하는 게 맞구나’라는 사실을 웃픈 마음으로 체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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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으로 깨달은 것은 뜻밖에도 ‘정리 정돈’의 중요성이었습니다. 분명 떨어진 줄 알고 새로 사 온 칫솔이 수납장 깊숙한 곳에서 발견될 때의 그 허망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집안을 정리하다 보니 무려 다섯 개의 십자드라이버와 여섯 개의 형광펜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물건이 흔하고 저렴한 시대라, 찾기보다 새로 사는 것이 편했던 게으른 습관이 낳은 결과였습니다.


물건 뿐 아니라 음식도 동일했습니다. 냉장고 속 재료들을 정확히 파악해 ‘냉장고 파먹기’를 실천하고, 무언가를 사기 전 집에 있는 물건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자 불필요한 지출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몇 달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통장에 조금이나마 여유 자금이 남는 기적을 맞이했습니다.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바꾸자 나타난 정직한 성적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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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1일부터는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예산만큼만 이체해 사용하며 잔고를 수시로 확인하자, 소비하기 전 ‘이것이 정말 필요한가’를 다시 한번 묻는 건강한 긴장감이 생겼습니다. 작은 습관의 변화가 제 지갑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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