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이 설계한 쇼핑몰, 그리고 내가 잃어버린 '우연'에 대하여
어디론가 떠나 구경하는 것을 즐기지만, 돌이켜보면 나의 발길은 늘 '안전한 복제' 안에 머물러 있었다.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쇼핑몰이나 처음 방문한 도시의 중심가. 그곳에는 늘 익숙한 브랜드들이 줄지어 있고, 나는 습관처럼 스타벅스에 앉아 차를 마신다. 낯선 여행지에서조차 내가 마주하는 '진짜'는 기껏해야 재래시장이나 특산품 코너 정도였다.
최근 수원에 갈일이 있어 수원에 들렀다 짬을내어 수원역 앞 상가를 거닌적이 있다. 수원 구장에 야구를 보러 갈 때마다 수원역을 지났지만, 나의 동선은 늘 쇼핑몰이나 지하 상가라는 세련된 박스 안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다 최근, 단 한 번도 발을 들여보지 않았던 수원역 앞 로데오 거리를 걷게 되었다. 세상이 변했다고들 하지만, 구도심 특유의 무질서하고 활기찬 공기는 오히려 나에게 생소하고도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왔다.
문득 디즈니 애니메이션 <월-E(WALL-E)>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쓰레기로 가득 찬 지구를 떠나 우주선 '액시오름'에서 살아가는 인류. 그들은 로봇이 움직여주는 보조기구에 몸을 맡긴 채, 눈앞의 스크린만 응시하며 산다. 그러다 우연한 사고로 스크린이 꺼지는 순간, 그들은 비로소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우주의 풍경과 바로 옆에 있던 수영장을 발견하며 경탄한다.
지금의 내 모습이 바로 그 보조기구에 앉은 지구인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도심의 상권이 유동인구의 발길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생태계'라면, 현대의 쇼핑몰은 자본과 브랜드의 의도에 따라 설계된 '사육장'에 가깝다. 정해진 동선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한다고 제안한 것들'로 나의 취향을 채워 넣는다.
이러한 '제안받은 취향'의 굴레는 온라인에서 더욱 견고해진다. 과거의 이력과 검색 기록을 토대로 한 알고리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척하며 끊임없이 선택지를 들이민다. 편리함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는 어쩌면 스크린 밖의 진짜 세상을 볼 기회를 스스로 반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우리를 장악한 '숏폼(Short-form)' 콘텐츠에서 극에 달한다. 1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영상들을 넘기며 도파민을 폭발시키지만, 그 짜릿함 뒤에 남는 것은 공허함뿐이다.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유행은 순식간에 세상을 점령하고,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장소에 줄을 서며, 똑같은 말을 내뱉는다.
하지만 정작 개성이 사라진 유행의 수명은 지극히 짧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관심이 한순간에 식어버리는 이유는, 그것이 나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취향이 아니라 기업과 브랜드에 의해 '조용히 강요된 취향'이기 때문은 아닐까. 내 것이 아닌 취향을 내 것인 양 소비하다 보니, 우리는 금세 허기를 느끼고 또 다른 자극을 찾아 스크린 속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월-E의 주인공들이 스크린을 끄고서야 서로의 손을 맞잡았듯, 나 역시 이제는 설계된 박스를 걸어 나와 보려 한다. 조금은 무질서하고 불편하더라도, 알고리즘이 예측할 수 없는 어느 좁은 골목길에서 '우연히' 발견할 진짜 나의 모습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