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이직 고민을 털어놓는다.
“정말 고민이야. 이 회사가 맞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어느 순간 내 걱정이 슬며시 끼어든다.
‘아침에 팀장님 표정이 왜 그랬을까?’
‘내일 발표 자료 언제 끝내지?’
“언니? 듣고 있어?”
“어? 어, 이직 말이지?”
친구가 씁쓸하게 웃는다.
“아니야. 됐어. 나중에 얘기하자.”
순간 미안해서 “아니야, 계속 얘기해”라며 붙잡아보지만,
대화는 이미 거기서 멈춰 버린다.
회의실에선 어제 상사의 말을 곱씹고,
가족과 저녁을 먹으며 내일 마감을 걱정한다.
연인과 함께 있어도 머릿속은 딴 데 가 있다.
우리는 하루 중 얼마나 '지금 여기'에 머물까?
엄마와 통화하며 메일을 확인한다.
“응, 응” 대답만 하다가,
“너 지금 뭐 해? 바쁜 거지?”라는 말에 말문이 막힌다.
“….”
“그래, 바쁜 거 아니까. 끊자.”
전화가 끊기고 나서야 깨닫는다.
엄마가 원한 건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함께 있는 10분이었다는 걸.
나는 그 선물을 흘려보냈다.
아이가 “아빠, 이것 봐!” 할 때
“잠깐만”이라 답하는 사이, 눈빛은 이미 사라진다.
친구가 “오늘 진짜 신기한 일이 있었어” 할 때
“어? 뭐라고?” 하는 순간, 그 설렘은 식어버린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금.
우리는 그렇게 쉽게 놓친다.
왜 현재에 머무르기가 이렇게 어려울까?
과거는 늘 아쉬움이다.
‘그때 그렇게 말할걸.’
‘조금만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미래는 늘 불안이다.
‘준비 안 하면 어쩌지?’
‘실패하면 어떡하지?’
그 사이에서 현재는 너무 당연하다.
언제나 곁에 있으니 소중한 줄 모르고 흘려보낸다.
영어로 현재는 present.
선물이란 뜻도 있다.
우리는 그 선물을 뜯어보지도 않고 흘려보낸다.
그리고 지나고 나서야 안다.
그 평범했던 순간들이
가장 특별한 선물이었음을.
가끔은 완전히 ‘여기’에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
친구가 울며 말할 때,
아이가 처음 걸을 때,
부모님의 흰머리를 발견할 때.
그 순간만큼은 어제도, 내일도 없다.
오직 지금만 있다.
얼마 전 동생의 부탁으로
바쁜 일정 중 조카와 함께 연극을 보러 갔다.
연극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아이였는데,
공연이 끝난 뒤 조카가 말했다.
“다음에 연극 또 볼까? 이모랑, 나랑, 엄마랑 같이 오자~”
순간 울컥했다.
나는 이 아이와 얼마나 많은 추억을 나누고 있을까?
이 시간이 지나면 돌아오지 않는 순간인데.
그날 나는 약속했다.
“그래, 앞으로 연극은 꼭 이모랑 같이 가자.”
요즘은 의식적으로 멈춘다.
“내일 일 때문에…” 떠오르면, 멈춤.
“어제 그 일 때문에…” 올라오면, 멈춤.
그리고 다시,
지금, 여기, 이 사람.
완벽하진 않다.
여전히 자주 달아난다.
그래도 조금씩, 선물을 받는 법을 배운다.
“잠깐만”이라 말하기 전에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나중에”라 미루기 전에
나중은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 친구가 다시 연락했다.
“아까 얘기마저 할래?”
노트북을 덮는다.
핸드폰을 뒤집어 놓는다.
“응, 말해봐.”
친구 얼굴이 밝아진다.
아, 이거였구나.
여기 있는 것.
지금 듣는 것.
이 순간을 함께하는 것.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거창한 미래가 아니라
소중한 현재다.
그런 말들, 그런 날들.
온전히 여기 있을 때
비로소 삶이 된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