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라는 말 뒤에 숨은 이야기들
“몇 년차세요?”
“10년 차입니다.”
“와, 대단하시네요.”
숫자를 주고받는 짧은 대화.
그 숫자 하나로 사람을 가늠한다.
그런데 정말 10년이 다 같은 10년일까?
“김 대리는 몇 년차야?”
“5년 차입니다.”
“에이, 5년 차가 그것밖에 몰라?”
순간 움츠러드는 어깨.
한 부서에서 깊이 파온 5년은
순식간에 “그것밖에”로 축소된다.
옆에서 15년 차 과장이 거든다.
“저도 아직 배울 게 많아요.”
배려였지만, 김 대리는 더 작아진다.
“경력이 2년이시네요. 좀 짧은데…”
지원자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신입은 아니고, 경력은 애매하고…”
두 해 동안 밤새워 배운 것들,
실패하며 몸으로 익힌 것들.
그 모든 이야기가 ‘애매하다’는 한마디로 지워진다.
친구 둘이 만났다.
“나 이제 5년 차야.”
“나도 5년 차!”
한 명은 한 회사에서 5년,
한 명은 세 회사를 거쳐 5년.
서로를 부러워한다.
“한 곳에서 전문가가 됐잖아.”
“여러 경험을 했잖아.”
같은 숫자지만, 전혀 다른 시간.
누가 옳고 그른 게 아니라
그저 다른 이야기를 가진 5년이다.
“경력이 짧으시네요.” → 가능성을 의심하는 말
“경험이 부족하시네요.” → 시도조차 막는 말
“오래 계셨네요.” → 때론 정체로 읽히는 말
우리는 숫자로 사람을 재단한다.
숫자 뒤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
“3년 차”라고 답한 그녀,
육아휴직 2년은 빼고 말했다.
“경력단절이라 하면 시선이 달라져요.”
“10년 차”라고 답한 그,
하지만 스스로는 1년 차를 10번 반복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15년 차”라고 답한 그녀,
다섯 회사를 거친 건 말하지 않는다.
“이직이 많으면 불안정해 보인대요.”
숫자가 가린 시간들이 있다.
한 선배가 말했다.
“연차를 묻는 건 사실 다른 걸 알고 싶어서야.
얼마나 믿을 만한지,
얼마나 맡길 수 있는지,
얼마나 대우해야 하는지.”
그런데 정말 숫자가 그걸 말해줄까?
20년 차인데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
2년 차인데도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는 사람.
숫자는 시간의 길이일 뿐,
그 밀도는 말해주지 않는다.
요즘은 조금 다르게 답한다.
“몇 년차세요?”
“숫자로는 10년인데, 아직도 배우는 중이에요.”
“경력이 짧으시네요?”
“짧지만 밀도 있게 일했어요.”
“오래 계셨네요?”
“오래 있었지만, 매년 다른 도전을 했습니다.”
숫자 너머의 이야기를 꺼내면
대화가 달라진다.
“어떤 걸 배우셨어요?”
“어떤 도전이었어요?”
비로소 진짜 대화가 시작된다.
“몇 년차세요?”라는 질문 뒤에는
사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궁금함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누군가 묻는다.
“몇 년차세요?”
나는 이제 숫자 대신 이야기를 꺼낸다.
실패했던 프로젝트,
성장했던 순간들,
배웠던 교훈들.
그런 말들, 그런 날들.
연차를 묻고 답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도,
오해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웠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는 지다.
당신은 몇 년차인가요?
아니,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