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진심으로 “축하해!”라고 말하면서도,
가슴 한쪽이 묘하게 무거워지는 날이 있다.
동료가 새 회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예상치 못한 감정이 찾아왔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동시에, 마음 한편이 묘하게 무거워졌다.
나는 지금 내가 원한 길을 가고 있다.
안정적인 직장을 스스로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다.
다시 기업에서의 역할이든,
스스로 만드는 1인 브랜드든,
모두 내가 선택한 것들이다.
그런데도 문득문득,
주변 지인들이 하나둘씩 새로운 회사에,
새로운 환경에 안착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나는 선택했지만, 저 사람은 선택받았다.”
그날 밤, 혼자 생각했다.
왜 흔들리는 걸까.
나는 내가 원하는 길을 가고 있는데.
곰곰이 돌아보니 알겠더라.
나는 무의식 중에 서열을 만들고 있었다.
‘선택받는 게 더 가치 있는 일, 선택은 차선책.’
머리로는 아니라고 알아도,
마음은 자꾸 속삭인다.
“그래도 저 사람들은 회사가 원해서 뽑은 거잖아.
명확한 승인을 받은 거고. 나는? 아직 증명해야 하는데.”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내가 선택만 한 걸까?
아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수많은 ‘선택받음’의 순간들이 있었다.
이전 직장에서도 선택받았고,
지금의 일에서도 누군가의 선택을 받고 있다.
결국 모든 선택받음은 선택으로 시작된다.
이 둘은 분리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가 흔들리는 이유는
‘확실성’의 차이 때문이었다.
“합격했어요.”는 사회가 승인한 결과다.
반면 “나는 이 길을 선택했어요.”는
아직 증명되지 않은 미래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말끝을 흐린다.
“어쩔 수 없이 선택했어요.”
그 말은 안전하지만,
동시에 내 선택의 가치를 깎아내린다.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는 말은
곧 “이건 내가 진짜 원한 게 아니야”라는 뜻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온전히 몰입할 수 없다.
며칠을 생각했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느냐였다.
“불안정해서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vs
“내가 진짜 원하는 걸 알게 돼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사실은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첫 번째는 ‘떠밀린 사람’의 서사,
두 번째는 ‘주인공’의 서사다.
비교는 나를 작게 만들고,
서사는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요즘도 문득문득 든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안착하는 모습을 볼 때.
‘나도 언제쯤 명확한 확실성을 가질 수 있을까?’
‘지금 이 길이 정말 맞는 걸까?’
흔들린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들도 불안했을 것이다.
합격 통보를 받기 전에도, 받은 후에도.
우리는 모두 선택하고,
선택받으며 살아간다.
단지 그 타이밍과 방식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다르게 말해본다.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나는 선택했다.”
“아직 불안정하다”가 아니라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선택받지 못했다”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선택받고 있다.”
같은 상황이지만,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 사람의 안착이 나의 불안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선택받음이 나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흔들려도 괜찮다.
그 흔들림이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오늘만큼은 스스로에게
조금 더 친절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떨까.
“나는 지금,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