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이 봉준호 감독을 대신해 시상식 무대에 올랐을 때,
〈설국열차〉 속 송강호의 대사를 인용했다.
"오랫동안 닫혀 있어서 벽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라며,
그 장면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시도하는 용기를 주는 메시지로 다가왔다고 했다.
닫힌 세상 속에서도 문을 찾으려 했던 이야기.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나 역시 〈설국열차〉를 볼 때
유독 그 장면에서 오래 머물렀다.
벽이라 믿었던 것을 문으로 바꿔보는 순간,
그 장면이 내 마음속 문 하나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누군가 물었다.
“요즘 뭐 하면서 재미있게 지내세요?”
‘뭐 하면서 지내요?’였다면 주저 없이 대답했을 것이다.
“요즘 일하고, 강의도 하고, 책 준비도 해요.”
그런데 ‘재미있게’라는 단어가 들어가자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재미있게?
그 질문이 이상하리만큼 낯설게 들렸다.
요즘, 나는 재미있게 지내고 있었던가.
일상은 늘 바빴고, 해야 할 일들은 많았다.
하지만 정작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뭐가 있었나 돌아보니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바쁘게 지내요.”
그렇게 얼버무렸다.
집에 돌아와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나는 언제부터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지 않게 됐을까.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며
회사 근처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었다.
멋진 곡 하나쯤은 혼자 완주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집에 피아노도 없고,
일주일에 한 번 가서 쳐보는 정도로는
성취감도 진도도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른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쳤던 사람들이라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나만 건반을 더듬거렸다.
'피아노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피아노 치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였나.'
야심 차게 시작한 마음은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다.
필라테스를 오래 해서
발레 수업도 곧잘 따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첫날, 그건 전혀 다른 세계였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어색했고,
몸이 따라주지 않아 창피했다.
우아하게 춤추고 싶었는데,
정작 내가 원했던 건 '발레 하는 나'의 이미지였는지도 몰랐다.
하고 싶었지만, 결국 구경만 하는 관객이 되었다.
그렇게 또 접었다.
베이킹은 달랐다.
사람들 없이 조용한 스튜디오에서
선생님과 단둘이 하는 수업이었다.
그래서인지 곧잘 만들었고,
수업이 끝나면 빵이 한가득 생겼다.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집에서는 한 번도 만들지 않았다.
아이러니였다. 그래서 알았다.
좋아했던 건 ‘빵을 굽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같은 의미로 여기기 시작했다.
잘하지 못하면 좋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재능이 없으면 시작할 자격이 없다고 믿었다.
누군가보다 못하면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정말 좋아하는 것들 앞에 벽을 쌓았다.
“나는 이걸 잘 못해.”
“나는 이런 재능이 없어.”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정말 그것들을 좋아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돌이켜보면,
참 많은 것들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어.”
“지금도 충분히 바쁜데, 뭘 더 하려고.”
“이미 하고 있는 것도 많은데, 욕심부리지 말자.”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을 접어두고,
‘해야 하는 것’만 했다. 안전했다.
실패할 일도 없었고,
서툰 모습을 보일 일도 없었다.
누구와 비교당할 일도 없었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누군가 좋아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는 모습을 보면
부러웠다.
잘하든 못하든, 서툴든 말든,
그냥 좋아서 하는 사람들.
나는 왜 못할까.
왜 나는 좋아하는 것을 그냥 좋아할 수 없을까.
최근에 깨달았다.
아무도 나를 막고 있지 않았다는 걸.
"이 나이에 그림을 배우면 이상해." 누가 그랬을까?
“경험 없으면 시작하면 안 돼.” 누가 정했을까?
“잘하지 못하면 좋아해서는 안 돼.” 누가 말했을까?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 혼자 그렇게 믿고 있었다.
나 혼자 벽을 쌓고, 문을 잠그고,
안에서 “나는 못해”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문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열어줄 수 없다는 걸.
문고리는 언제나 안쪽에 있었다.
악기는 아직 손도 못 댔다.
춤도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못해”라는 말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대신 이렇게 생각한다.
‘못하지만, 좋아할 수는 있잖아.’
‘서툴지만, 해볼 수는 있잖아.’
‘경험이 없지만, 지금 시작하면 되잖아.’
그러던 중, 문득 깨달았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건 '무언가를 만들어 건네는 일'이었다는 걸.
빵이든, 말이든, 글이든.
그리고 나도 모르게,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브런치에, 내 단상들을.
처음엔 그저 좋아서였다.
누가 읽어주지 않아도, 그 자체로 좋았다.
그러다 보니 쓰고 싶은 게 계속 생겼다.
하나를 쓰면 그다음이 떠오르고, 또 그다음이 이어졌다.
처음 몇 편은 차마 다시 보기 민망한 일기 같았지만,
잘해서가 아니라 좋아서 하다 보니
조금씩 나아지는 걸 느꼈다.
문을 열고 나와 계속 걷다 보니,
다음 길이, 그다음 길이 생겼다.
그리고 깨달았다.
진짜 좋아하는 것과,
좋아 보이는 것은 다르다는 걸.
진짜 좋아하는 일은 내가 잘하든 못하든, 그냥 하게 된다.
결과보다 과정이 즐겁고,
서툼조차 괜찮다.
그런데 진짜 좋아서가 아니라
남들이 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서 시작한 일이라면,
조금만 어려워져도 멈춰버린다.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그 일이 나의 '진짜 좋아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것이 사실은 문이었다는, 그 말.
이제는 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들 앞에 세운 벽은
결국 내가 만든 것이었다는 걸.
불편했던 경험이든,
경험이 없어서든,
잘할 자신이 없어서든.
그 이유들은 벽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 그것을 벽으로 만든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벽은,
내가 안에서 문을 열지 않는 한,
영원히 벽으로 남는다는 걸.
문득 궁금해집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포기한 '좋아하는 것'이 있나요?
혹시 그것은 정말 벽일까요,
아니면 한 번도 밀어보지 않은 문일까요?
문고리는 여전히 안쪽에 있습니다.
당신의 손이 닿는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