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AI, 독서, Upstage
연말연초가 되면 ‘회고’라는 단어가 자꾸 떠오른다.
매번 작성하는 회고는 성과를 나열하는 글이라기보다, 내가 무엇을 믿고 움직였는지 점검하는 시간에 가깝다.상반기에도 한 번 정리했지만, 다시 돌아보니 반복되는 질문들이 있다. 아마 그게 내가 아직 답을 찾는 중인 주제일 것이다. 2025년을 돌아보다 보면, 적어도 2026년엔 뭘 해볼지는 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2024년 퇴사 이후 나는 창업에 도전했다.
시작할 때는 늘 핑곗거리가 생긴다. 문제 정의가 뾰족하지 않아서, 경험이 부족해서, 팀이 완벽하지 않아서,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라서. 안 될 이유를 찾는 건 쉽고, 그러다 보면 시작은 계속 미뤄진다.
2025년을 지나며 확신하게 된 건 무엇이든 머릿속에서만 생각하는 것과, 필드에 있는 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현장에 들어가면, 내가 정의한 문제와 고객이 말하는 문제가 다르기도 하고, 스스로 세운 가설이 생각보다 낙관적이었음을 데이터로 확인하기도 한다. 그때부터 비로소 개선이 시작된다.
결국 중요한 건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힘과 크고작은 실패를 거듭해도 견딜 수 있는 체력, 그리고 다시 시도하는 관성이었다.
나는 기술과 이를 활용해서 제품을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철학’은 내 일과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돌아보면, 2025년의 내가 어떤 걸 길게 파지 못했던 순간들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왜 이걸 하는지' 내 안에서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철학은 궁극적으로 달성하고 싶은 가치가 무엇이고, 왜 그걸 해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갖추는 것. 이게 분명해지면 외부의 잡음이나 흔들리는 순간이 와도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아직 나는 내 가치관을 깔끔한 문장으로 정리하지 못한다. 하지만 2025년은 ‘철학이 있어야 길게 간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2025년은 책을 정말 많이 못 읽었다. 2023년에 포항에서 1년을 지내며 30권 가까이 읽던 때와 비교하면 독서의 관성이 많이 약해졌다.
하지만 AI와 일하면서 오히려 책의 필요성을 더 강하게 느꼈다.
AI는 언제나 답을 내놓는다. 자료를 모아 그럴듯한 결론까지 만들어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게 정말 답인가? 이 판단을 내가 책임질 수 있나?
AI의 발전이 빨라질수록 인간에게 남는 일은 ‘결정’과 ‘책임’에 더 가까워진다. 결국 필요한 건 답을 찾는 능력만이 아니라, 답을 검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나는 독서가 그 힘을 키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판단력은 결국 한 분야를 깊게 아는 전문성과, 다른 관점을 받아들이는 다양성에서 나오니까, 2026년엔 그 두 가지를 같이 쌓을 수 있도록 독서를 다시 습관으로 만들고 싶다.
2025년 6월 말부터 업스테이지에서 AI Education PM으로 AI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다.
처음엔 솔직히 낯설었다. 나는 제품을 직접 빌딩하는 일을 좋아했고, 운영과 프로젝트 매니징이 메인인 역할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게 맞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몇 달 지나면서 그 의문이 조금씩 정리됐다. 코드를 짜든, 프로세스를 짜든 결국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문제를 푸는 일이라는 점은 같았다. 그리고 창업을 해보니 더 명확해졌다. 원하는 일만 골라 할 수는 없고, 행정, 운영, CX, 마케팅 등 여러 업무를 이해하고, 직접 할 수 있어야 비즈니스가 움직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누구도 각자의 업무에 AI를 어떻게 도입해야 하는지 정답을 모르는 시기다. 국내에서 AI를 선도하는 기업에서 AI 교육을 함께 고민하고 설계하는 경험은, 앞으로 무엇을 하든 강한 기반이 될 거라 느낀다.
목표라고 적으면 지켜야 할 것 같은 책임이 생기니, 내가 2026년을 보내고 싶은 방향을 적어본다.
1) AI를 의식적으로 더 많이 쓰기
클로드 코드나 커서 등 빠르게 발전하는 툴을 써보고 ‘이게 되네’ 하면서 감탄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실제 업무와 사고 흐름에 계속 넣어보고 싶다. '이걸 AI와 함께하면 어떻게 달라질까?'를 습관처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2) 새로운 경험은 cost가 아니라 investment로 보기
새로운 경험에 드는 돈과 시간을 아까운 지출로만 보지 않겠다. 경험은 판단력을 바꾸고, 다음 선택의 질을 바꾸니까.
3) 독서의 관성을 되찾기
AI 시대일수록 더 중요해진 ‘판단력’을 위해, 다시 책을 읽는 습관을 만들고 싶다. 요약된 정보만 소비하다 보면 생각이 얕아지는 느낌이 있었고, 그걸 보완해줄 수 있는 게 결국 독서라고 느꼈다. 2026년엔 조금이라도 매일 읽는 것을 목표로, 업무와 연결되는 책과 시야를 넓혀주는 책을 의식적으로 섞어서 읽어보려 한다.
4) 내 철학을 더 분명하게 만들기
나는 무엇을 위해 내 시간을 기꺼이 쓸 수 있는지, 그 방향만큼은 더 명확해지고 싶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연결되는 일에 시간을 더 쓰려 한다.
어제는 안 되던 것들이 오늘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AI 시대는 그런 장면을 매일 보여준다. 그래서 두렵기보다 흥미롭다. 이 파도 위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게 감사하기도 하다. 2025년은 일단 해보면서 감탄하고 배우는 해였다면, 2026년에는 감탄에서 멈추지 않고 배운 걸 실제로 더 많이 적용해보고 싶다.
2025년 함께해준 모든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회고를 마무리한다.
시간 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