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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o Nov 17. 2019

'We choose to be lonely.'

엄마도 성장하는 시간 '한 달 살이'

초등 고학년 두 아이의 엄마인 글로리아는 어학원 같은 반 클래스 메이트이다. 우리는 시카고에서 오랜 시간 상담사로 일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인도계 말레이시안 자넷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수업은 대개 교재 내용과 함께 각자 전 날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어학 수업 이후에도 곧 중학교에 진학하는 아이의 숙제를 봐줘야 하는 글로리아 보다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의 삶을 현실 세상에서 구현 중 인 아들과 사는 내 일상의 에피소드가 많은 편이었다.

등원 전 몽키아라의 아침 시간

수업을 함께 하다 보면 서로의 영어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글로리아는 조금 느려도 정확한 문법과 문장을 구현한다. 그해 반해 나는 주워들은 잔 지식은 많아서 어휘력은 좋은 편이지만 정확한 문장 구사 능력이 부족하다. 좀 더 가까워진 후 알게 된 사실은 그녀는 나와 나이가 같았고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으며 출산 전, 정식 교사는 아니지만  방과 후 아이들을 가르쳤던 영어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정작 수업 시간엔 문법을 엉망진창으로 말할지언정 주로 내가 이야기하는 비중이 많아 나는 그녀가 영어 수준도 높은데 왜 말하기를 주저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던 중 자넷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글로리아에게 영어를 잘 하는 native speaker인데 왜 말하기를 두려워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글로리아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너무 오랜 시간 집에서 아이들의 엄마로만 살았다. 미코(내 영어 이름이 Miko이다)는 보다 많은 시간을 사회에서 경험하고 쌓아 용기와 자신감이 있는 것 같아 부럽다. 이곳에 아이들 때문에 왔지만 이렇게 해외에서 어학 교육을 받는 것이 즐겁고 유익하나 말문이 여전히 떨어지지 않는다. 이이 엄마로만 지낸 긴 시간 동안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신감이 부족 해 졌다.라고 이야기를 마쳤다.  

아마도 글로리아는 수업을 마친 후 식당과 카페에서 늘 주문을 도맡아 하는 내 허기짐을, 자꾸만 행선지를 빙빙 도는 택시 기사의 태도가 괘씸해 끝까지 잔돈을 다 받아내는 모습을 자신감으로 오인한 것 같다.

그러던 중, 평소 두 아이와의 저녁은 거의 집에서 만들어 먹던 글로리아가 내가 추천한 'Go Noodle’이라는 국숫집을 아이들과 함께 가기 위해 '미드밸리'를 찾았으나 너무 큰 규모의 쇼핑몰이라 길을 헤매었다고 한다. 수줍음 많은 글로리아도 지치고 아이들도 같이 있는 상황이라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길을 묻기 시작했고 마침 싱가포르에서 온 관광객이 같은 곳을 가던 길 이라며 동행하여 무사히 도착해 맛있는 '판미'를 먹었다고 수업시간에 즐겁게 이야기하였다. 그다음 시간엔 이곳 몽키아라 콘도들은 모두 출입 보안 카드를 지니고 다녀야 하는데 글로리아가 출입 카드를 분실하면서 콘도 매니지먼트와 부딕힌 이야기, KLCC에서 Grab기사와 엇갈리던 경험 등 나날이 그녀의 에피소드는 늘어갔고, 수업 초기 뛰어난 영어 실력에도 말이 없던 그녀는 수업 3주 차에 접어들자 미드에 나오는 미국 아줌마 못지않게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쏟아내었고 우리들의 영어 수업은 한층 더 재미있어졌다.

태어날 때부터 그놈의 자신감 이란 게 신체 일부처럼 자동으로 장착되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다. 글로리아는 내가 직장 생활을 오래 한 이유가 자신감의 일부인 것 같다고 말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회사는 그 사람의 인성을 포함 한 모든 걸 평가하는 곳이 아니라 주어진 업무에 대한 성과 평가만 하는 곳이다. 회사라는 공간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중엔 자존감에 스크레치를 내려는 이들도 많다. 본인의 삶의 질과 자존감이 낮을수록 타인을 삶을 궁금해하고 깎아 내려 자신을 위안하는데 직장생활을 조금이라도 경험 해 본 이들은 알 것이다. 이런 류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말이다. 또 어딜 가도 적절한 비율로 존재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직장생활은 업무적 스트레스와 함께 심적 여유를 찾을 수 없게 만든다.

나만의 'Querencia' 12살 노견 김구찌와

자신감을 어딘가에 속해서 혹은 누가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기르는 것이다. 글로리아 눈에 비친 자신감이 넘치는 나는 자신감 이라기보다 요즘 말로 '정신승리'를 잘하는 편이다. 타인의 시선을 크게 개의치 않고 어려운 상황을 빨리 털어내는 편이다. 누구나 각자의 방식대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마음의 평정심을 찾는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딱히 표현하기 어려웠는데 작년에 적절한 단어를 김난도 교수가 매 년 출간하는 트렌드 코리아 책에서 찾게 되었다. 'Querencia'스페인어로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라는 뜻인데,  농담으로 늘 나 자신에 대해 스몰 a형이라고 말할 만큼 소심하여 스스로 스트레스를 키우는 편이었던 나는 30대 초반까진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낭비한 시간이 고3 때 잠든 시간보다 많을 것이다. 이런 한심한 시간을 보내던 중 특별한 계기는 아니고 자연스례 나이가 들어 생긴 취미가 독서와 사우나인데 이 두 가지는 오롯이 혼자 즐기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반려견 구찌와 보내는 시간이다. 이 세 가지가 나만의 'Querencia'인데 이것들로 스스로를 편하게 만들고 소소한 행복감을 채워 충전이 된 모습이 글로리아 눈엔 자신감으로 보인 것 같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 없는 이곳에선 아이와 소아과도 가야 했고 집에 새는 물도 고쳐야 했기에 좀 더 용감 해 진 것 같다.

지난 수업 시간에 자넷이 한 달 살기에 대해 우리에게 질문을 하였고 우린 각자의 이유와 목적을 대답했다. 수업이 끝날 무렵 자넷이 칠판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We choose to be lonely.' 바로 지금, 글로리아와 미코 모두 즐거운 여행이겠지만 동시에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라는 목적으로 편하고 익숙한 곳을 벗어나 스스로가 선택한 외로움의 길을 걷고 있고 이 시간은 인생에서 또 한 번 성장할 수 있는 기회란 걸 알기 바란다는 짧지만 와 닿는 문장을 끝으로 수업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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