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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o Nov 21. 2019

말레이시아의 한국사람... 그 씁쓸함에 대하여

'같은 한국사람이라 좋네'라는 말에 혐오가 생겼다.

나와 아이가 지내는 숙소는 여느 쿠알라룸푸르의 콘도들처럼 공영 수영장이 있다. 아이가 있는 집들은 같은 숙소에 사는 이들과 수영장에서 마주치는데 또래의 아이라도 있으면 좀 더 편히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스모커네도 그랬다. (지금부터 언급할 한국 가족의 남편이 길에서 담배를 줄창 피워대 그들을 스모커 네로 칭하겠다)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 혹은 나와 같이 아이와 좀 더 긴 기간을 해외에서 지내다 가는 것이 겨울방학 트렌드처럼 번지고 있는 지금, 한국에서 이곳으로 혹은 다른 어딘가로 떠나는 부모들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쿠알라룸푸르에 오는 주된 이유가 새로운 경험과 함께 아이의 어학실력 향상에 있다. 스모커네 가족도 그랬다. 아이가 영어와 중국어를 잘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들은 유학원에서 연결해 준 에이전트를 통해 왔다며 대화의 물꼬를 튼 이후 그들이 방문 한 국제학교들에 대해 쉼 없이 말했다. 아이와 저녁에 그림책을 사기로 해 먼저 가겠다고 하니 그들은 대뜸 어떻게 이동을 하냐고 물었다. 기본적으로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방문 시 Grab은 기본으로 스마트폰에 탑재해야 하는 App 중 하나이다. 특히나 말레이시아의 경우 차량 렌트 피는 저렴하지만, 오랜 영국 식민지 영향으로 운전 방향도 반대이고 말레이시아 자체 브랜드의 저렴한 차량으로 자 차 보급율도 높은 편이다. 하여 출퇴근 시간은 트래픽이 어마어마하다. 좀 더 외곽지역에 거주하거나 부부 중 한 명이 이곳에서 주재원으로 일정기간을 머무르는 가족 외엔 대부분의 한 달 살기 엄마들을 비롯한 여행자들이 편리한 그랩을 통해 이동하고 있고 금액을 사전에 정해 놓고 운행하기에 택시보다 선호한다. 이용 방법도 간단하며 중1 수준의 영어 실력이면 이용에 무리가 없다. 그런데 스모커 네는 그 App자체를 모른다고 했다. 아이와 서둘러 나서는 나를 붙잡고 'Grab App'설치법부터 이용 방법들을 자꾸만 '이걸로 해봐요. 해봐요' 하며 자신들의 폰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하는 그 한마디


'역시 한국사람이라 좋네'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그간 이곳에서 알게 된 교민들과 주재원 엄마, 국제 학교 엄마들은 모두 따듯했다. 어디가 맛있는 식당이고 아이와 어디를 가면 좋은지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자신들이 살며 터득한 장단점을 아낌없이 나눠주었다. 대개의 이곳에 오는 한 달 살이 가족들에 비해 한 참 어린 우리 아이 덕에 그들로 하여금 더 많은 친절을 베풀게 했고 나 역시 한국인은 어딜 가나 정이 많다고 생각했다. 나도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내가 받은 것처럼 똑같이 나누리라 생각했다. 스모커네 가족 역시 아이가 있었고, 이곳 생활에 필수인 Grab 조차 모른다고 했을 때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노인 대학 '스마트폰으로 손자에게 문자 보내기' 수업 못지않게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스모커네 부부는 영어가 전혀 안 되는 이들이었다. 모국어도 아닌 영어를 매우 잘할 수는 없고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나의 남편 역시 한국식 영어 교육의 한계로 높은 토익 점수에도 회화는 그렇지 못하다. 나 또한 앞서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듯 영어를 잘하고 싶은 게 꿈인 사람이다. 내가 그리 뛰어난 수준의 영어를 구사한다면 왜 어학원을 등록해 수업을 받고 있겠는가 말이다. 내가 스모커네 가족에게 놀랐던 가장 큰 이유는 단기 거주를 넘어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인재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이곳의 국제학교에 등록을 진행 중이며 그들의 아이가 의사소통이 전혀 안돼 '프리스쿨'이라 불리는 과정도 입학이 어려워 우선 유치원에 보낸 것이다. 4,5세 밖에 안된 아이는 그럴 수 있다. 유학원을 통한 입학 준비는 실제 많은 부모들이 행하는 방식이고 개인이 준비하다 발생하는 서류 누락 등의 실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 어찌 보면 맞는 방법이다. 문제는 입학 후, 아이가 학교 생활을 잘하는지 선생님과 대화를 영어로 나눠야 하고, 아이들끼리 분쟁 시 상대방 부모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잘하라는 말이 아니다. 누구나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의사소통은 100% 완벽하지 않다. 다만, 아이가 아프면 어디가 아픈지, 열이 있는지 정도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의사가 존재하지만 좀 더 큰 병원으로 갈 경우는 어떡할 것인가? 무엇보다 당황스러운 건 스모커네 가족의 가장 스모커였다. 스모커는 아이에게 운동, 영어, 악기 끝. 이라며 자신의 아이에 대한 계획을 자랑스러워했지만 그는 유치원 준비물 하나 똑바로 챙기질 못해 늦은 심야 시간에 질문을 해대며 당황스럽게 했다.


단 한 번 수영장에서 마주쳐 Grab을 깔아준 게 전부인 사람들인 것을... 스모커네 가족의 무례는 내가 지겨운 질문에 답을 한 이틀 후, 카톡을 차단하기까지 계속되었다. 그 이틀간 나는 처음으로 이곳에 와서 인상을 구겼다. 그들에게 보인 내 호의를 원망했고, 메신저 차단을 끝으로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  '같은 한국사람이라 좋네'라는 말에 혐오가 생겼다.

내가 겪은 스모커 가족의 일화는 그리 일반적이진 않을 것이다. 내가 이곳에 오는 가족들에게 먼저 온 사람으로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과 이곳으로의 긴 여정을 결정했다면, 아주 기본적인 언어와 이곳에 필요한 정보는 공부하라는 것이며, 정말로 영어가 도무지 안 된다면 번역기를 써서라도 어떻게든 구사하라는  것이다. '매 번 한국 사람이시죠? 저 좀 도와주세요.' 하면서 한 달을 보낼 수 없지 않나? 아직도 남아있을 한 달 살기 카페 글 중 이런 글이 있었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인종 차별당했어요' 내용인 즉, 스타벅스 직원에게 본인은 정확히 아메리카노,라고 말하고 카드를 내밀었는데 계속 컵과 펜을 들고 영어를 하더란다. 한참을 말하더니 난색을 표하고 커피를 내어줬는데 이게 인종 차별이지 모겠냐는 정말이지 읽는 내내 부끄러운 글이었다. 우리나라는 주문 번호로 호명하여 예외적일 수 있으나 스타벅스가 사랑받은 요인 중 하나는 고객의 이름을 적고, 호명하고 또 단골의 이름을 외워서다. 이곳 역시 주문 후 아주 쉬운 your name? 단 한 마디 묻는다. 우리가 잘 하진 않더라고 적어도 이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라면 중 1, 1학기 영어 시간에 배우는 'What is your name?'은 알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 말이다. 다수의 엄마들이 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묻는 질문이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 비용'과 '한 달 살기 숙소의 렌트 피'이다. 아무도 엄마의 영어 문제 혹은 이곳에 주의해야 할 문화에 대해 묻는 이가 없었다. '한 달 살기' 비용은 집집마다 모두 다르다. 각종 카페에 올라온 한 달 살기 비용은 그 집 사정이다. 숙소는 천차만별이고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그러니 이런 남의 집 생활비에 대한 질문을 할 시간에 충분히 검색하고 가장 큰 비용이 드는 항공권과 숙소, 교육비 확정 후 각자의 버짓에 맞게 준비하는 것이 맞다. 그 집 아이가 저렴한 현지식을 잘 먹었다고 내 아이도 그럴 거란 보장이 없지 않나.

그리고 한 달 살기의 여정이 교육의 목적이 크더라도 해외여행이니만큼 신나고 설레는 마음 충분히 이해하지만, 어느 나라에 가서도 대접 못 받을 식당과 카페 내 소란, 이슬람 국가의 수영장 내 음주 행위와 '우리 애 먹일 거라며'싸오는 수영장 음식물 반입 행위 등 정해진 규칙이 있다면 지키고, 상식에 맞는 매너를 지참해야 한다. '몽키아라'를 한인 타운으로 언급하는 이들이 많으나 실제는 일본인과 호주 등 다른 민족의 비중이 높다. 부끄러운 건 수영장 주의사항은 한글로만 적혀 있다는 점이다.


이곳엔 잠시 머물다가는 우리와 달리 오랜 기간 이곳 국제 학교에서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의 가족과 삶의 터전을 이곳으로 옮긴 교민들이 있다. 그들의 입장에선 일부 단기 거주 가족이 일으킨 문제의 임팩트를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


곧 한국의 겨울 방학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당신이 한국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고, 당신의 아이가 얼마나 이쁜지는 다른 이들에게 관심 밖의 이야기이다. 모두 소중한 시간과 기회비용을 들여 이곳에 올 것이다. 누군가 또 다른 한국인이 먼저 온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스모커네 가족을 겪은 이후라 돕기는 해도 이전과는 온도차가 있을 것이다. 같은 일을 두 번 겪고 싶지 않다. 다시 '같은 한국사람이라 좋네'라는 말이 듣기 싫은 말이 아니라 반갑고 살가운 말로 들리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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